은종섭과 조선의 핵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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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종섭과 조선의 핵실험
  • 충북인뉴스
  • 승인 2006.10.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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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환(충북대 교수)

   
지난해 여름 평양 인민대학습당에서의 일이다. 2005년 7월 20일(수) 오후 3시로 예정되어 있던 남북작가회의가 협상과 토의를 거듭하면서 7시가 되어서야 열린 우여곡절과 파란만장(波瀾萬丈)의 끝이었다. 우연인가 모르지만 내 옆자리에는 김일성 대학의 은종섭 교수가 앉아 있었다. 처음에는 누구인 줄 모르고 조심스럽게 서로를 바라보던 분단의 무게는 육중했다.

통일(統一)의 술이 한 순배 돌 무렵 그가 바로 김일성대학의 은종섭 교수인 것을 알고 무릎을 쳤다. 그는 조선[북한]을 대표하는 문학평론가이면서 저명한 학자로 알려져 있고 또 내가 만나보고 싶어 했던 분이기 때문이다. 은종섭 교수와는 몇 년 전 벽초 홍명희 문제로 연락을 취하려던 것이나, 김윤식 선생님과 함께 만나고자 했던 이야기 등 그간 얽힌 과거사가 적지 않았다.

주로 문학에 관한 이러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 그는 갑자기 '김교수, 아니 남쪽에서는 우리 북쪽 때문에 불안해한다고 하는데 사실이오?'라고 채근하듯 물었다. 즉각 대답하기가 머쓱했지만 나는 조심스럽게 '그렇다'라고 답했다. 다소 격앙된 심사를 감추지 않은 은종섭 교수는 '한국과 미국이 동맹하여 우리를 공격하고 위협하기 때문에 공화국의 인민들이 모두 죽게 생겼는데, 아니 거꾸로 우리가 남쪽을 불안하게 한다니 그런 엉터리가 어디 있소?'

나는 은종섭 교수의 항의하듯 억울해 하는 이 말에 대해서 논평할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아니 자격이 없다. 분명한 것은 모든 조선 사람들은 미국의 공격적 패권주의에 대해서 무척 불안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말이 전조(前兆)였던가, 2006년 10월 9일 조선의 핵실험이 전지구를 강타했다. 그러니까 은종섭식의 설명에 의하면 조선인민의 불안이 만든 최후의, 그리고 달리 택할 방법이 없는 최고의 무기가 핵폭탄이다. 물론 나는 거리에서 반핵반전평화를 외쳤으므로 조선의 핵실험에 대해서 반대한다.

또한 조선의 극좌모험주의에 책임이 있음도 명기(明記)해 둔다. 핵실험이 북한 체제의 유지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민중적 관점에서 보면 비판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핵(核)은 생태환경적 관점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며 인류를 멸망케 할 수 있는 대량살상무기라는 점에서 그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은종섭 교수의 상기된 분노가 가슴을 때린다. 아마도 은종섭 교수가 주장하는 것은 미국의 위협에 저항하기 위하여 핵을 개발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일 것이다. 달리 말하면 한반도 비핵화와는 달리 한반도 핵균형이라는 전술적 개념이 아니겠는가? 이런 각도에서 보면 북한의 핵실험은 미국의 강경일변도가 빚은 역작용이다. 실제로 부시 행정부는 강력하게 패권을 행사하면서 2002년 '악의 축(axis of evil)'이라는 용어로 조선을 자극했다.

6자회담 복귀를 압박하면서도 정작 미국은 합의를 무시한 경우도 있었다. 미국의 대북한 봉쇄정책은 푸에블로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후 조선은 고난의 행군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결과가 오늘의 핵실험이다. 이 대목에서 '1970년대까지는 조선도 살만 했지요'라던 폴란드 바르샤바대학의 오가렉최 선생이 떠오른다. 그가 살아있다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미국은 반드시 조선과 대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만 같다.

한국의 수구파나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조선의 핵실험을 기회로 삼고 있다. 조선을 적대시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한반도 내에서 팽팽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핵을 가진 조선을 섣부르게 자극할 수도 없고, 조선 또한 체제유지에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선의 급작스런 붕괴와 같은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 확률이 높아졌다.

한국으로서는 어떻게 하든 북한이 세계체제에 연착륙을 하도록 도와주면서 통일민족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핵실험으로 더욱 곤궁(困窮)해지기는 했지만 한국정부는 통일비용 삼아서 북한을 도와주지 않을 도리가 없고, 수구파로부터는 적화야욕을 지원하는 좌파 정부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정말 딱한 처지의 한국정부는 포용정책과 경색완화만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반대로 미국은 동북아시아에서 행사하는 패권의 정당한 이유를 강화시키면서 적절한 긴장을 통하여 군수산업을 유지하는 한편 최대의 적인 중국에 대한 견제도 가능하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미국의 강경파나 한국의 극우파 그리고 겉으로는 격앙된 척 하는 일본이나 중화주의 세계체제를 목표로 하는 중국 등, 모두가 다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계산하고 있다. 이 얼마나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아슬아슬한 상황인가. 하지만 이 얼마나 절묘한 균형인가. 이 균형이 유지되는 한, 한반도와 동아시아는 아이러니하게도 안정을 취할 수 있는 것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필연적으로 핵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은종섭 교수는 지금 파란 하늘을 바라보면서 깊은 고뇌에 잠겼음에 분명하다. 그는 인간을 생각하는 문학전공의 섬세한 예술가이므로 그런 식의 반민중적 해법을 무조건 찬동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득 드는 생각, 훗날 그를 보고 물어볼 날이 있을까? 과연 조선의 핵실험이 민족의 긍지가 될 수 있는 것이냐고 말이다. 또한 무척 명석했던 인상의 은종섭 그에게 다음과 같이 물어볼 날이 올 것으로 믿는다. 민족적 감정과 인류의 보편적 이성 중 어느 것이 우선해야 하는가? 나의 폐혈관(肺血管)을 쪼아대는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묻는다, '과연 우리 민족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가을 하늘엔 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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