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를 만나기 전 생각하는 100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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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를 만나기 전 생각하는 100가지
  • 충청리뷰
  • 승인 2021.03.11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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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현 작가
신이현 작가

 

“우리 어떤 스타일의 양조장을 지을까?” 양조장을 짓겠다고 계획하면서 우리는 무엇보다 레돔의 고향인 프랑스 알자스 건축 스타일로 짓고 싶었다. 벽에다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흙을 채우는 콜롬바쥬 방식은 튼튼하면서도 정감이 가서 누구라도 이 집에 들어오면 알자스 시골에 온 듯한 느낌이 들 것 같았다. 그러나 집이란 것이 그렇게 꿈꾸는 대로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한국에서도 콜롬바쥬 건축 기법으로 지어진 집들이 꽤 많은데 가장 흔한 것이 독일 호프집들이었다. 실제로 벽 안에 통나무를 넣어서 만든 것이 아닌, 벽에 나무를 덧댄 무늬만 콜롬바쥬인 집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호프집들을 보면 알자스 집들이 가진 정겨움보다는 왠지 싸구려 상가처럼 여겨졌다. 무엇보다 한국 땅에 독일 호프집을 연상케 하는 알자스 스타일의 집을 짓는 것이 주변의 풍경과 어울릴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다른 집들은 대체 어떻게 지어졌나, 차를 타고 가면서 도로에 늘어선 집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구두를 사러 갈 때 남의 구두만 눈에 들어오는 것과 같다. 그러나 집은 맘에 안 든다고 버릴 수 있는 신발과는 차원이 다르다.

골목길에는 벗어던지지 못해 그냥 있는 집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별 생각 없이 지어올린 집들, 너무 예쁘게 지으려다 실패한 집들, 실수를 만회하려고 뭔가를 끝없이 덧댄 집들, 이웃한 집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집들, 그중에 제일 괴로운 것이 패널로 지은 집들이었다. 풍경을 허접해 보이게 하는 그런 건물들은 도시를 산책하면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다 빼앗아 가버린다. 그런 건물을 짓는데도 다 이유가 있다는 말로 이해하기에는 참고 봐야 하는 수명이 너무 길다.

하늘을 찌르며 줄지어 선 아파트들도 마찬가지다. 그 안에서는 가족들이 모여서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하는 따뜻한 가정이지만, 밖에 나와서 내가 사는 집을 보면서 아름다움에 취하긴 어렵다. 집을 지을 때 우리는 실용적인 측면만 생각한다. 안에서 편하게 살면 되지 바깥에 보이는 게 무엇이 그리 중하냐고 한다. 예쁜 옷을 입고 외출하기를 좋아하면서 왜 건축물의 외관은 생각하지 않는지 불만이다. 한 도시가 좋아질 때 무엇보다 골목길을 걸어가면서 남의 집 대문이나 벽이나 창이나 지붕을 보면서 주인장의 작은 미적 감각에 감탄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은데 그런 곳을 찾기 어렵다.

멀리 보이는 언덕 위에 독특한 스타일의 집들이 있어 가보기로 했다. 건축비는 엄청 들어갔을 법한데 별로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그냥 ‘나 좀 있어요.’ 하는 잘난 체 하는 집들이 늘어선 동네도 정이 가지 않는다. 건축가의 개성이 너무 드러난 것도 밉살스럽다. 문학은 얼마든지 독특해도 상관없다. 그냥 책장에 꽂아서 사장시켜 버리면 되니까.

그러나 건축가가 설계할 때는 오고가면서 봐야하는 행인도 좀 생각해주면 좋겠다. 설계자의 개성이 너무 드러나서 주변 환경과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집들은 처치곤란이다. “그렇게 까다로워서 집을 지을 수 있겠어? 한번 지어봐라, 맘대로 되는가.” 누군가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다.

“이 작고 옹기종기한 동네에 어울리는 집은 어떤 것일까.” 우리는 양조장 지을 자리에 앉아서 늘 같은 생각을 하지만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우리가 짓고 싶은 집과 이 야트막한 언덕에 어울리는 집의 조합을 어떻게 찾아야할지 고민이 되었다. 거기다 양조장이라는 기능적인 측면을 모두 충족시켜줘야 했다. 작은 양조장이지만 작업하기에 꼭 알맞고 술이 잘 발효되고 저장하기에 좋은 정도의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실현해야 했다. 한 편의 대하드라마를 쓰겠다고 책상 앞에 앉았지만 등장인물도 플롯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고 있는 느낌이었다. 뒤죽박죽 실마리는 풀리지 않고, 과연 이 책을 완성할 수 있을지 자신이 서지 않았다.

“건축가를 만나야 하는 것 아니야? 건축가를 만나면 이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줄 거야.” 이렇게 해서 우리는 건축가를 찾아 나섰다. 찾아 나섰다고 하니까 무림의 고수를 찾아 멀고먼 여행을 시작한 것 같지만 그럴 형편이 되지 못했다. 우리는 가장 편한 방식으로 이웃 분에게 충주에 아는 건축가를 소개해 달라고 했다. “음, 이 사람 젊은 남자인데 무지 착하다”고 말씀하신다. 건축가가 갖춰야 할 덕목 중에 ‘착하다’는 필요조건인가? 두고 보면 알 일이다.

/신이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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