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럽게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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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산다는 것
  • 충북인뉴스
  • 승인 2006.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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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명 현 도안공동체 대표
   
나는 아직도 폼생폼사로 농촌에서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더욱더 그렇게 되었죠. 품을 팔아 먹고 사는데 익숙하지 않는 나의 손과 발은 퉁퉁붓고 뼈다디가 쑤시고 아파서 품을 팔래야 팔수가 없습니다. 그대신 이렇게 폼을 잡고 입으로만 살게 되었습니다.

머리로 생각한 만큼 살고싶은 열정은 많은데 도시에서 이렇게 뼛골 빠지게 품을 팔아본 적이 없는 나의 몸은 여기저기서 반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시골살이를 준비하면서 나름대로 궁리도 많이 했었습니다. 그래서 집을 짓고 이사를 하고 매일매일 집을 가꾸고 텃밭을 만들고 나름대로 열심히 공을 들여 품을 팔았는데, 몸도 반란을 일으키지만 우리의 적절치 않는 돌봄은 밭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김장을 하려고 뿌린 배추는 들어찰 생각은 커녕 잎도 무성하게 자라지도 않고, 무는 여린 잎만 한뼘정도 자라고는 성장을 멈춘 것인지. 우리가 알고 있는 책에 쓰여 있는 글들은 글일뿐이고 지형에 따라 비와 바람과 햇볕의 양과 질에 따라 보살핌도 달라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 모르는데서 오는 결과겠지요?

요즈음 한해의 결실을 거두어 들이느라 일손이 바쁩니다. 두달여 오지 않는 비는 속이 들어차야 할 배추밭을 타들어가게 하고 농부들의 마음도 그만큼 타들어 가게 만들었습니다. 농촌으로 들어와서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자연스럽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배웠죠. 글자로 배울때는 쉬웠는데 자연스럽게 산다는 것은 참으로 많은 댓가를 치르고 느끼게 된 고귀한 말이었습니다.

무엇이 자연스럽게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일까요? 열매를 보면 일년의 살림살이를 알게 됩니다. 곡식들도 비, 바람, 땡볕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야만이 알알이 들어차게 되어있습니다. 비, 바람, 땡볕이 싫어 그늘에 몸을 피하면 가을에 열매가 없는 법입니다.

우리동네에 총각 둘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올가을 추수가 끝나면 외국인 아내를 맞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아직도 국산을 고집하고 있구요. 글쎄 어느것이 자연스럽게 열매를 맺는 것일까요? 노인들만이 마을을 지키고, 남아 있는 젊은 총각은 외국인을 아내로 맞이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 며느리와 살아야하는 어머니는 무슨 낙으로 살게 될까요? 파란눈의 젊은 아내는 노인만 20명 남짓한 동네에서 누구와 말을 통하며 살게 될까요?

자판기 처럼, 공장에서 제품을 찍어 내듯이 결과가 쉽게, 빨리 나오지 않는 농사일들은 자연과 더불어 한해를 기다려야 결실을 맺게 되어 있습니다. 그 시간과 때를 기다리기 힘들고 맞추어 보살필줄 모르다보니 자연스럽게 시집가고 장가드는 일이 없어지게 된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산업화가 되고 경제가 발전하면서무엇보다도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우리는 답을 빨리 찾아내고 얻어내게 되었습니다. 모르는 지식도 단어만 치면 내용을 알아서 순간에 찾아주고, 모르는 길도 주소만 알려주면 집앞에까지 데려다주는 네비게이션이라는 기계도 있지 않은가요?

씨앗을 뿌리고 싹을 틔우고 잘 보듬어 키우면서 열매을 맺는 그날을 기다리기에는 가슴조이고 하늘을 열두번도 더 쳐다보면서 장마에, 가뭄에, 속이 타들어가는 시간을 보내야만 되니 누가 그렇게 산다고 제발로 걸어들어오겠는가 말입니다.
나는 이곳에 와서 자연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작은 씨앗에서 싹이 트고 잎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을 때까지 비, 바람, 땡볕을 지나야 만이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그 사실을 말입니다.

자판기에 돈을 넣고 내가 원하는 것을 누르면 몇 초 안에 완제품이 눈앞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루하리만큼 긴 시간을 기다리고 가슴을 조이고 하늘을 열두 번도 더 쳐다보며 열매를 기다려야만이 된다는 사실을 품을 팔아 먹고 살기 어려워진 내 몸뚱이의 반란을 보며 알게 되었습니다.

열매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리고 익은 벼가 고개숙이는 이치처럼 자연을 닮은 사람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이제야 보이기 시작하네요. 참으로 감사한 한해였습니다.
내년에는 나의 품도 자연스럽게 천천히 적응하면서 팔아보도록 노력하면서 온몸으로 배움의 길의 떠나도록 이 가을에 내 삶의 열매를 거두어 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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