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한에…고삐 풀린 ‘정치 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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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한에…고삐 풀린 ‘정치 현수막’
  • 이재표 기자
  • 승인 2023.03.15 1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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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도청 주변‧석교 육거리 등 ‘플래카드 핫플레이스’
지난해 말 광고물법 개정…수량‧규격‧장소 제한 없어
청주시 전용게시대 15곳 만들었지만 이용실적 ‘전무’

프롤로그: 청주 T자형 도로-길 위의 보고서

정치 현수막 공해가 점입가경이다. 지난해 말 옥외광고물법을 개정하면서 정당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과 관련해서는 수량이나 규격, 게시 장소에 대한 제한 없이 현수막을 설치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전까지는 각급 선거운동 기간에만 거리 현수막을 제한 없이 걸 수 있었다.

그러니 선거철도 아닌데 왜 이렇게 정치인들 현수막이 내걸리냐?”, “지역 얘기는 하나도 없고 서로를 헐뜯는 문구는 똑같은데 게시 주체만 다르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311, 청주의 구도심 간선도로 T자형 구간 10km를 걸으면서 현수막 실태를 파악했다. 남북축은 석교 육거리에서 상당공원을 거쳐 내덕 칠거리, 동서축은 상당공원을 출발해 사창 사거리를 거쳐 공단 오거리까지였다. 지선도로나 건물, 공식 게시대에 걸린 현수막은 빼고, 도로나 인도 가드레일, 교통표지판 등에 걸린 현수막만 파악했다.


당일 T자형 도로에 걸린 현수막은 모두 쉰여섯 개였는데 남북축이 마흔한 개로 월등히 많았고, 동서축은 열다섯 개로 상대적으로 적었다. 현수막 핫플레이스는 단연 육거리시장 앞과 도청 인근으로 각각 열 개씩이 걸렸다. 이어 상당공원 주변이 일곱 개였고, 공단 오거리도 다섯 개에 달했다.

남북축 T자 도로에 현수막이 많다고 서원구, 흥덕구 정치인들이 현수막을 적게 거는 것은 아니다. 도종환 의원실 관계자는 구도심 중심인 남북축과 달리 서원구나 흥덕구에는 새로 형성된 부심이 많다흥덕구만 하더라도 신봉동, 봉명동, 오송 등의 큰 사거리에 비슷한 물량의 현수막을 걸었다고 귀띔했다.

이 현수막 중에 정당이나 정치인이 건 현수막은 37.5%인 스물한 개다. 민주당 여덟 개, 국민의힘 일곱 개, 진보당 네 개, 녹색당과 우리공화당 각각 한 개씩이다.

충북의 출산육아수당을 홍보하며 아이 낳기 좋은 도라고 선전하는 현수막도 여덟 장 걸렸고, 도청 주변에는 충북도가 대학지원 사업에 선정된 것을 축하하는 현수막도 여섯 장 걸렸다. 나머지는 청주시의회 보궐선거와 코로나 방역 수칙, 교통규칙 또는 주차질서 준수 등을 안내하는 공공 현수막이다. 개인이 건 현수막은 1999년에 실종된 송 모 씨를 찾는 현수막 두 장이 전부였다.


권고 사안은 모두 귓등으로

행정안전부와 청주시는 지난해 말 2400만 원을 들여 청주시내 15곳에 정치 현수막 우선 게시대를 만들었으나 이용실적은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공단 오거리 우선 게시대는 비어있고, 그 위에 정당 현수막이 걸려있다.
행정안전부와 청주시는 지난해 말 2400만 원을 들여 청주시내 15곳에 정치 현수막 우선 게시대를 만들었으나 이용실적은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공단 오거리 우선 게시대는 비어있고, 그 위에 정당 현수막이 걸려있다.

일부 지자체는 정당 현수막과 관련해 세부 기준을 마련해 달라는 시행령 개정을 행정안전부에 요구하고 있다. 울산시와 경남 창원시, 대전시 등이다. 충북시장군수협의회도 정당 현수막의 설치·관리 기준에 관한 위임 근거를 신설해 달라는 내용의 건의안을 채택해 행안부에 전달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고삐 풀린 망아지를 붙들어 매기 위해 몇 가지 권고 수준의 장치를 운영하고 있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만도 못 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첫째는 현수막 게시일은 15일로 한정하고, 현수막에 게시 기한과 게시 주체(정당정치인), 시공업체 연락처 등을 현수막 본 글씨의 101 크기로 써넣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규정을 제대로 지킨 현수막은 단 한 장도 없었다. 11T자 도로를 취재한 결과 대부분 현수막이 시공업체 연락처 등을 적었으나 작고, 흐린 글씨라서 가까이 가서야 확인할 수 있는 정도였다. 또 일부 현수막은 제시 주체 외의 기재사항을 빼먹기도 했다.

둘째는 정치 현수막 우선 게시대를 만들고 웬만하면 이곳에 정치 현수막을 걸도록 권고한 것이다. 하지만 권고를 듣는 정치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바뀐 옥외광고물법 개정에 대한 대안으로 정치 현수막 우선 게시대를 만들도록 했다. 청주시의 경우 행안부로부터 2400만 원을 지원받아 모두 15개의 게시대를 시공했다.

정희영 청주시 광고물디자인팀장은 규격에 맞는 현수막을 제작해 관리업체로 전달하면 업체에서 1주 또는 2주의 관리비를 받고 시공과 철거를 해주기로 했으나 지난주에 문의한 결과 두 달여 동안 이 게시대를 이용한 실적은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정희영 팀장은 우선 게시대에 걸어 달라는 것은 권고 사항이고, 정당들의 현재 게시 형태가 불법은 아니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다행안부에서 정당들에게 계속 협조 요청을 하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진보당 충북도당 관계자는 정치 현수막 우선 게시대는 십여 장을 나란히 거는 기존의 지정 게시대와 달리 한 장소에 현수막 한 장을 바닥에서 무릎 높이로 거는 특이한 구조라서 노출도가 많이 떨어진다면서 게시 효과를 볼 수 있는 장소는 뻔하기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앞으로도 이용할 계획이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가리고 걸리고공공 현수막이 공공의 적

횡단보도 인근 인도에 걸다 보니 목 걸림 사고 빈발

진천서 중학생 뛰다가인천서 대학생 킥보드 타다가

차량 진출입로 부근 현수막 시야 가려 교통사고 유발

 

청주시 청원구 내덕 칠거리에 걸린 경찰과 청원구청의 안전홍보 현수막 두 장도 우회전 건널목 주변에 낮은 높이로 걸려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청주시 청원구 내덕 칠거리에 걸린 경찰과 청원구청의 안전홍보 현수막 두 장도 우회전 건널목 주변에 낮은 높이로 걸려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지난해 81일 충북 진천군 덕산읍 혁신도시 내 건널목에서 중학생 A군이 도로변에 설치된 공공 현수막에 걸려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현수막은 교차로 우회전 통행 방법 변경을 안내하기 위해 경찰이 설치한 것이었다.

사고는 오후 7시를 넘어 어둑어둑해지는 시간에 발생했고, A군은 보행 신호가 깜빡거리자 뛰어서 건너려다가 1.5m 높이의 현수막 줄에 목이 걸려 넘어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구급대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A군 머리에서 많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긴급 이송된 A군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퇴원했다.

진천 경찰은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홍보하기 위해 관내 일곱 군데에 현수막을 설치한 상황이었다. 교차로 우회전 통행 방법을 설명하는 현수막은 교차로 우회전 지점에 거는 것이 경찰의 방식이다. 실제로 충청리뷰가 취재에 나선 311, 청주시 청원구 내덕 칠거리에 걸린 경찰과 청원구청의 안전홍보 현수막 두 장도 우회전 건널목 주변에 낮은 높이로 걸려있었다.


동사무소 현수막에 걸려 사망도

접수되지 않을 뿐 현수막 줄에 걸리는 사고는 빈번하게 발생한다. 올해 들어 213일 오후 9시쯤, 인천 연수구 송도5동 행정복지센터 사거리 앞에서는 전동킥보드를 타던 대학생 B씨가 정당 현수막 끈에 목이 걸려 넘어졌다.

B씨는 다행히 인도 쪽으로 쓰러져 차량과 부딪히는 2차 사고는 없었지만, 목에 2~3정도의 찰과상을 입었다. 사람 키보다 낮게 걸린 현수막 끈은 어둡거나 달리는 상황에서는 눈에 띄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믿기지 않겠지만 현수막 끈에 걸린 중학생이 뇌출혈로 숨진 사건도 있다. 20063, 서울시 서대문구 홍은동에서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C군이 건널목을 건너다가 1m12cm로 설치된 현수막 끈에 걸려 넘어지면서 머리를 다쳐 숨졌다. 당시 현수막은 동사무소(주민센터)가 걸었는데 내 집, 점포 앞 스스로 청소합시다라는 내용이었다.

차량 운전자의 시야를 가리는 것도 문제다. 교차로에서 우회전하거나, 지선도로에서 간선도로로 진입할 때 인도 펜스에 걸린 현수막은 운전자의 시야를 좁게 만든다. 왼쪽에 걸린 현수막은 후방에서 오는 차를 볼 수 없게 만들고 오른쪽에 걸린 현수막은 건널목을 건너는 보행자를 가린다.

그러다 보니 사고가 발생하면 더 높은 치사율로 이어진다는 통계거 있다. 도로교통공단이 2021년에 직전 2년간 발생한 차 대 사람의 교통사고를 분석한 결과 우회전 교통사고의 치사율은 전체교통 사고 평균보다 1.6배 높은 100건당 2.4명이었다.


불법 상업 현수막은 사라져

현행법상 현수막을 비롯한 옥외광고물은 지자체에 허가(신고) 신청한 뒤에 정해진 게시대에 거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지난해 전면 허용한 정당 및 선거 현수막이 아니더라도 게시대를 이용하지 않아도 되는 예외도 있다.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8조가 허가나 신고, 금지나 제한 등의 적용에 예외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관혼상제에 관한 설치 학교행사나 종교의식을 위한 설치 시설물 보호·관리를 위한 설치 적법한 정치활동이나 노동운동을 위한 행사 또는 집회 등에 사용하기 위한 설치 안전사고 예방, 교통 안내, 미아 찾기, 교통사고 목격자 찾기 등을 위한 설치 선거관리위원회법에 따른 선거, 투표에 관한 계도 및 홍보를 위한 설치 등이다.

예외 조항은 있다지만 공익적 목적으로 제한하기 때문에 상업적 현수막이 난무하는 시대는 지났다. 청주시 상당구만 하더라도 지난해 불법 현수막 쉰일곱 건을 단속해 과태료 1346만 원을 부과했다. 채희상 청주시 상당구 광고물팀장은 불법 현수막은 1장당 과태료 25만 원을 부과하게 되어있지만, 계도를 하다가 악성인 경우에만 부과한다평일에는 공무원들이, 휴일에는 용역을 준 업체에서 불법 현수막 철거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치적홍보 대리 현수막 불법

단체장 치적을 홍보하는 현수막은 예외조항에 들지 않는 불법 현수막이다. 3월 8일 청주 상당구 단속반이 ‘아이낳기 좋은 도’ 현수막을 철거했다.
단체장 치적을 홍보하는 현수막은 예외조항에 들지 않는 불법 현수막이다. 3월 8일 청주 상당구 단속반이 ‘아이낳기 좋은 도’ 현수막을 철거했다.

공익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단체장의 중점 정책을 홍보하거나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현수막은 위 광고물법의 예외 조항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명백한 불법이다. 이런 현수막은 대개 각종 기관단체, 심지어는 유령단체 명의로 내걸린다. 이시종 전 지사 시절 도청 주변을 도배했던 광역철도 청주 도심 통과 요구현수막이나 김영환 지사 취임 후에 폭풍 게시된 충북 레이크파크 르네상스 지지현수막이 같은 예다.

최근에는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1등도 충북현수막이 대거 걸렸다. 311일 취재 과정에서도 이 현수막은 T자형 도로에서만 여덟 장이 발견됐다. 충청북도 새마을회나 충청북도 체육회, 충청북도 여성단체협의회, 대한건설협회 충북도회 명의였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도에서 함께 홍보할 것을 바라는 메시지를 줬지만, 공문으로 받은 것은 아니었다면서 출생률 증가는 국가적으로 필요한 과제고 출생아가 늘어나면 유치원, 어린이집도 지어야 하니까 우리랑 전혀 관련이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채희상 상당구 광고물팀장은 도청 주변에 아이 낳기 좋은 도현수막이 도배돼있다는 민원이 있어 38일에만 열여섯 장을 철거했다고 밝혔다. 불법 현수막은 뽑고 돌아서면 다시 올라오는 풀과 같다.


에필로그: 한풀이 해서 좋습디까?

당신들은 마음껏 붙이지만

우린 어디에다 하소연할까?

그는 현역 국회의원이다. 그는 정당 현수막을 마음껏 붙일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선거에 떨어져 원외 위원장을 지낼 때, 현역 국회의원이 붙인 현수막은 잘 안 떼고 원외가 붙인 현수막은 마구 떼더란다. 그때 한이 맺혀서 현역이든 원외든 평등하게 겨룰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단다. 마침내 마음의 응어리를 풀었단다. 그의 이름을 차마 밝히지는 않겠다. 그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렇게 개인이나 주변의 한풀이나 하는 의원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응어리는 누가 풀어줄 것인가? 당신들은 현수막이라도 붙이지만 우린 어디에다 하소연하란 얘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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