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의사평가제’가 있게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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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의사평가제’가 있게 된다면
  • 충북인뉴스
  • 승인 2006.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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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우 충청북도 교육위원
   
때 아닌 겨울비가 밤늦도록 거리를 적시던 날. 한 송년모임에서 의사인 후배와 ‘교원평갗를 화제로 취중담화를 이어간 적이 있다.
필자도 지금은 교직을 떠나있지만 교사출신 교육위원으로서 그에 대한 입장이 없을 수 없는 터에, 미상불, 그것을 염두에 둔 듯 말길을 터준 후배의 질문이 화제의 단초였다.

그 후배는 학창시절을 떠올려 봐도 교원평가는 필요한 것 같다고 했다. 교사답지 못한 교사들이 없지 않은데, 그들을 평가의 무풍지대에 안주케 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당연한 기대요 바람이었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 한다’는 상식에 비추어서도 무리한 요구가 아니리라. 나도 동의를 표했다. 다만, 점검해 봐야할 부분이 있어 역지사지를 제안했다. ―만약 ‘의사(|?)평가제’를 실시하자면 어떨까.

아직 우리 사회에서 그것이 거론된 바는 없다. 아무리 ‘경쟁만능의 시대’, ‘평가지상주의’에 성역이 없다 해도 평가의 칼날을 아무데나 들이대고 난도질하는 것이 대수는 아닐 것이다. 하기에, 이른바 ‘3대 성직’이라는 곳에 그런 상황을 같이 가정해 보자는 의미였다. 교원들을 페스탈로치가 되도록 하는 데 교원평가제가 유용하다면, 모든 의사들을 슈바이처가 되도록 ‘의사평가제’도 나올 만하지 않을까. 모든 신부·목사가 성인이 되게끔 ‘성직자평가제’도 거론될 만하지 않은가.

나는 의사 후배 앞에서 마치 의사가 문진하듯이 반문을 이어갔다. 환자나 보호자 대상의 설문조사로 의사를 평가한다면 의사의 질이 가려지고 의술도 발전할까. 근무시수나 진료실적 등으로 의사의 등급을 매기고 그에 따라 급료도 차등을 두면, 의사들의 사명감과 의욕도 높아져 그것이 의료개혁의 묘방이 될 수 있을까. 만약 아니라면…, 혹시 의사평가제로 명의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돌팔이처방’은 아닐까.

오가는 잔술 따라 차오르는 주흥이 섞여 차츰 서로 누구의 말인지도 모르게,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는 평가의 위험성을 두고 우려가 모아져 갔다.
교육과 의료는 공히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고도의 전문 작업이다. 의료는 생명을 지켜주고 교육은 생명을 성장시킨다. 그 결과들은 공히 단순 측정으로는 평가하기 어려운 복잡한 조건들을 가지고 있다. 특히 교육은 의료보다도 더욱 평가가 어렵다. 의료보다 결과가 더디, 그리고 막연히 나타나기 때문이다. 참된 교육의 진가는 오히려 훗날에 더욱 빛을 발하기도 한다.

평가의 저울대 위에서 모든 자질은 발가벗겨져 한줄 눈금위에 계량화된다. 권위조차 발가벗겨지는 저울대 위에 존경이나 신뢰가 싹틀 자리는 없다. 생명을 다루는 자질들이 그렇게 거칠고 둔한 저울눈에 겨냥당해도 되는 것인가. 권위와 존경을 잃은 교사와 의사는 지식상인, 의료기술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일은 교육과 의료가 아니라 지식의 거래, 의술 서비스에 머물고 만다.

의학용어에 ‘플라시보(위약)효과’라는 게 있다. 환자가 의사를 믿으면, 설혹 의사가 가짜약을 주더라도 명약 효과를 낸다는 말이다. 하기에, 명의의 권위는 그가 가진 그 어떤 의술보다 ‘의료적’인 것이다. 그의 권위가 저울 위에서 증발해버리고 나면 그곳에는 의사도 의료도 없어지고 앙상한 의술만 남는다.

교육과 교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교사에게도 권위는 그가 가진 그 어떤 자질보다 ‘교육적’인 것이다. 교사가 평가의 저울 위에서 아이들 앞에 발가벗겨지는 자리, 그곳을 우리는 교육의 폐허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옥석구분’이란 말이 있다. 옥돌 캐는 산에 불이 나면 옥과 돌이 다 탄다는 말이다. 부적격교원 대책으로 나왔다는 교원평가제가 존경과 사랑과 신뢰가 생명인 교단에 눈먼 경쟁의 화염을 몰아치는 회오리가 되지 않기를, 함께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의 취중담화는 마무리되었다.

일어서면 잊어버린다는 야심한 술자리 잡담의 공허감을 넘어 무언가 뿌듯함을 추스르며 나선 겨울 밤거리. 방향감을 어지럽히는 안개비가 여전히 흩날리는데, 이 비가 긋고 나면 모든 행길들이 미끄덩길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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