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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서른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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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서른살!
  • 박소영 기자
  • 승인 2007.01.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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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소 영 문화부 기자
2007년 난 서른살이 됐다. ‘30’이라는 숫자를 떠올려보니 최영미의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에서 그 예민한 정서와 故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엷가 번뜩 떠오른다. 바로 계란 한 판의 나이, 서른이다.

최근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재밌는 기사가 떴다. 논어 위정(爲政)편에 나오는 삼십이립(三十而立)은 이제 중국사회에서 옛말이 돼가고 있다는 중국신문주간의 보도였다. 적어도 사십이립(四十而立)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

서른나이에 ‘입(立)’ 하는 사람은 드물고 대부분 불혹(不惑)의 나이에 겨우 자립하게 된다는 것.
이 신문은 ‘입(立)’은 본래 입언(立言), 입덕(立德), 입신(立身)을 뜻하는데 이를 현대식으로 해석하면 직장이나 사업이 어느 정도 안정돼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가정을 꾸려 ‘어른’이 되는 나이라고 풀이했다.

또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베이징의 한 컨설팅 업체가 올해 상담한 고객들을 상대로 조사한 데이터를 공개했다. 실제 응답자 대다수가 35세가 되어서야 이런 목표에 도달할 수 있었고, 40세에 겨우 가능했다고 답변했다는 것.

사실 따끈따끈한 나의 ‘서른살’도 ‘입(立)’자를 세우는데 있어서는 주저주저하게 된다. 물론 공자님 말씀이야 여건이 아니라 개인의 의지의 면을 강조하는 것이겠지만. 여하튼 보편적인 잣대를 감안해볼때 나는 아직 독립된 가정을 꾸리지 못했고, 경제적인 독립 또한 이루지 못했음을 시인한다. 또한 때때로 ‘어른’보다 ‘아이’로 돌아가고픈 ‘피터팬’의 감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개인적인 잣대를 들이대봐도 ‘자립’의 문제는 평생 안고 가야할 화두일 것만 같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생물학적 나이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해보이지만, 어쨌든 이러한 신자유주의 논리가 우리들의 자립 시기를 늦추는 한 요인이라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고보니 신자유주의시대에 중국에서 벌어진 일도, 남의 나라일처럼 쉽게 치부해 버릴 수 없지 않은가.

현대인은 누구나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고 있다. 또한 이시대를 살고 있는 젊은 예술가들도 이러한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젊은 예술가들은 보통 30~40대를 지칭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젊은 예술가들을 현장에서 찾기가 쉽지 않다. 한 예로 10개 협회로 구성된 지역의 한 예술단체에 30대 사무국장은 단 두 명뿐이다.

오늘날 공자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먼저 집을 세워야 하고, 가정을 꾸려야 하는 현실들이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여기에 선배들은 이미 예술의 터를 공고히 했지만, 젊은 예술가들의 ‘예술의 자립’이 과연 성공할지는 불투명하다.

시대마다 예술가들에게 주어진 책무는 아마 ‘삶이 곧 예술’이라는 명제를 실천하는 것이 아닐까. 30대에 들어선 나와 그리고 예술가들이여, 부디 올해 우리가 실천가능한 ‘입(立)’을 세워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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