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언어를 옹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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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언어를 옹호함
  • 충북인뉴스
  • 승인 2007.0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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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순 원 시인, 청주대 강사
   
언어에는 불변성과 가변성이 있다. 공시적으로는 불변이지만, 통시적으로는 가변적이다. 언어를 사회적 약속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변화하지 않지만, 역사적 측면에서 보면 조금씩 조금씩 바뀌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같은 말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살지만, 세종대왕께서 우리글을 창조하실 때까지만 거슬러 올라가도 공부를 해야 우리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많이 올라가지 않고 1930년대 문헌만 보더라도 지금 우리가 쉽게 알 수 없는 어휘가 자주 나온다.

언어는 불변성과 가변성에 의해 정체성을 유지해 나가면서 모습을 조금씩 바꾼다. 우리는 조선시대나 고려시대의 우리말을 잘 알아듣지는 못 하겠지만, 중국어나 일본어 등과는 쉽게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머리를 깎거나, 옷을 바꿔 입어도 다른 사람들이 나를 쉽게 알아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내 모습이 많이 변했더라도 어렸을 때 친구들이 나를 알아보는 것과도 마찬가지이다.

언어의 변화는 넓게는 시대의 변화를 따른다. 그런데 같은 시대의 언어라도 매체에 따라 그 모습은 그때그때 달라진다. 그리고 새로운 매체의 출현에 따라 언어가 격변하기도 한다. 똑같은 사실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과정에서도 신문기사와 방송은 다른 방식으로 언어를 구사한다. 맨 처음 신문이라는 매체가 생겨났을 때에도, 그 이전에 사건과 사실을 전달하는 방식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세종대왕께서 우리말을 기록할 수 있는 ‘훈민정음’을 창제하셨을 때, 입으로 하는 말과 기록된 말은 확연한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그 당시 ‘기록된 말’은 새로운 매체의 탄생이라 할 수 있고, 이는 말뿐만 아니라 생활과 의식의 많은 부분을 함께 변화시켰다.

이즈음에는 주로 10대 20대들이 쓰는 인터넷 언어가 우리말을 파괴하고 오염시킨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자주 접할 수 있다. 인터넷과 핸드폰은 우리의 언어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활 전반에 격변을 가져온 매체이다. 청소년을 중심으로 사용되는 인터넷 언어는 우리가 겪고 있는 격변 중의 일부분이다. 그리고 또 이는 우리말과 글이 인터넷과 문자 메시지라는 새로운 환경에 탁월하게 적응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우리의 청소년들은 인터넷과 문자 메시지를 다루고 활용하는 측면에서 전세계에서 가장 앞서 있는 집단이다. 우리의 어느 세대보다, 전 세계 어떤 나라의 청소년보다 컴퓨터와 핸드폰을 능숙하게 많은 시간 다루고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용도로 활용한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한글은 어떤 문자보다도 표음성이 뛰어나고, 자모음의 다양한 조합에 의해 만들어내고 적을 수 있는 글자의 수가 상당히 많은 편에 속하는 문자이다.

우리말과 글의 잠재력과 우리 청소년들의 창조력이 만나 인터넷과 문자 메시지라는 매체를 통해 다양한 실험을 전개하고 있다. 이들보다 앞선 세대들이 이러한 실험에 대해 우리말 파괴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우려하는 저변에는 그들의 불편함과 당혹감 또는 소외감이 깔려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청소년들에게 끊임없이 창조력을 강요하지만, 막상 창조력을 발휘하는 방법과 방향은 미리 정해 놓고 강요하는 것 아닌가 하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시를 쓰는 것이 단지 말을 예쁘게 만드는 것이 아니듯, 우리말과 글을 다듬고 가꾼다는 것은 단지 우리말을 예쁘고 곱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말과 글의 다양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실험하여 표현 능력을 확장시키고, 새롭고 다양한 매체에 가장 적절한 표현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다.

우리 청소년들은 인터넷과 핸드폰을 가지고 열심히 놀아서 우리가 인터넷과 핸드폰 분야에서 가장 앞선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또 그 가장 앞선 분야에서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우리말과 한글을 다양한 형태로 실험하고 있다. 그들에 의해 많은 말들이 태어나고, 사라지고, 살아남고, 또 다시 태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 공간에서 발휘된 창조력은 우리 사회의 다른 분야로도 전이되어, 보다 발랄하고 활기찬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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