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학’과 한국영화
상태바
‘천년학’과 한국영화
  • 충북인뉴스
  • 승인 2007.04.1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 진 국 서원대교수, 정치학
   
거의 매주 영화관을 찾을 정도로 영화를 좋아한다. 자주 있는 경우는 아니지만 마음에 속 드는 영화를 본 날이면 그날 하루 종일 기분이 흐뭇하다. 하지만 아마추어 영화 애호가 수준을 결코 넘지 못하고 영화에 관한 책 한 권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필자가 이런 거창한 제목의 글을 쓰려고 시도한다는 것은 스스로 생각해도 무모하기 짝이 없다. 주제파악을 제대로 못한다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자책하면서도 굳이 이 제목을 달고 한마디 하려는 데는 나름의 안타까운 마음 때문이다. 영화 ‘천년학’은 한국 영화계의 거장인 임권택 감독이 자신의 100번째 제작을 기념해 만든 작품이다. 솔직히 임권택 감독과 그의 영화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 하지만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서편제’에 대한 감동은 거의 15년이 지난 지금도 내 가슴에 너무나 진하게 남아 있다.

그 당시에도 지금 못지않게 자주 영화관을 찾았지만 한국 영화는 나의 관심 밖이었다. 작품성과 오락성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외국 영화에 비해 한국 영화의 수준은 적어도 한 두 차원 아래라고 생각했었다.

어쩌다 ‘혹시’ 하고 한국 영화를 보러 갔다가 영화관을 나올 때는 ‘역시’ 하며 후회했고, 그럴 때마다 ‘다시는 한국 영화를 보지 않으리라’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곤 했었다. ‘서편제’에 엄청난 관객이 몰려 한국 영화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는 보도가 연일 계속될 때도 나는 ‘또 속을 수는 없다’며 그 같은 흥행 성공의 의미를 애써 평가절하 했다.

그러나 온 가족이 함께 보러가자는 제의를 거절할 수 없어 ‘할 수 없이’ 보게 된 ‘서편제’는 이전의 한국 영화는 물론 웬만큼 뛰어난 외국 영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한국적 소재와 뛰어난 작품성을 갖춘 수작이라는 것이 당시 내가 주저하지 않고 내린 평가였다.

단일 영화로 천만 관객을 동원하고 세계 유명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할 정도로 장족의 발전을 이룬 현재의 한국 영화 수준은 ‘서편제’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천년학’은 바로 그러한 기념비적인 영화를 만든 임권택 감독이 ‘서편제’의 후편 격으로 제작한 영화이니 어찌 예사롭게 볼 수 있겠는가?

한국 영화사에서 이처럼 큰 의미를 갖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찾는 관객의 수가 실망스러울 정도로 적다는 점이 내가 주제넘게 이 글을 쓰는 두 번째 이유다. 토요일 오후 시간대면 영화 관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이른바 황금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고작 20~30명 정도의 관객만이 객석 일부를 채우고 있었다.

티켓박스에 장사진을 이루고 있던 그 많은 인파는 다 어디로 간 것인가? 하긴 관객 몰이에 성공하려면 요즘 영화의 주 고객층인 학생들에게 어필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폭력이 난무하는 ‘조폭’ 세계를 소재로 하거나 아니면 인기 절정의 스타급 배우를 캐스팅해 부담 없이 실컷 웃을 수 있는 코미디물을 만드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이 같은 분위기가 지배하는 한국 영화 시장에서 한국의 전통적 한(恨)을 판소리를 통해 표현하려한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기는 애초부! 터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천년학’이 투자자를 유치하지 못해 하마터면 촬영에 들어가지도 못할 뻔 했던 것도 이 같은 상황이 어느 정도 예견되었기 때문이리라.

한국 영화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이 시대에 풍요속의 빈곤처럼 한국적 정서가 듬뿍 담긴 이 같은 수준 높은 예술 영화가 관객으로부터 외면 받는 것은 결코 단순하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이런 현상이 지속될 경우 언제 다시 한국 영화가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지도 모를 뿐만 아니라 우리 문화 자체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스크린쿼터가 해제되고 한미 FTA가 발효를 앞두고 있는 등 결코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이 문제에 대해 영화계 차원을 넘어 국가적인 차원에서 시급히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