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재적 선호’가 섬뜩해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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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재적 선호’가 섬뜩해질 때
  • 충북인뉴스
  • 승인 2007.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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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우 충청북도 교육위원
‘학생생활기록부’에 담임교사가 적는 ‘종합의견’난이 있다. 학생들의 행동특성 등에 대한 총평을 누가(7?)기록하여 뒤에 지도할 교사들이 참고토록 하는 난이다.

그런데 그곳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있다면 어떨까?

“붙임성이 있고 인사성이 바름. 그런데 나는 그게 싫음.”

믿기지 않지만 교사들 사이에 전해지는 실제 사례라고 한다. 이를 처음 들었을 때 필자도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당연히 뒤의 구절 때문이었다. ‘나는 그게 싫음’이라니! -이토록 순진할 만큼 솔직하면서도 황당하도록 유치한 표현이 교사의 손에 의해 남겨졌다니, 어찌 쓴웃음이 나지 않으리.

무슨 뜻을 담으려 했는지 어렴풋 짐작이 가기도 한다. ‘친화력이 있고 예의도 바르지만 왠지(가식적인 면이 있어?) 마음이 안 가는 아이’ 정도의 의미 아닐까. 그런 의미쯤 담으려 했던 것이 표현력 부족으로 그 지경이 된 것도 같다. 햇병아리 교사의 미숙한 흔적이려니….

그러다가, 필자는 금세 웃음이 싹 가시고 말았다. “나는 그게 싫다”는 그 단호한 ‘못 박음’이, 그 사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런 류의 편견과, 그것들에서 비롯되는 날선 강제가 우리 교육현장 곳곳에 어디 거기뿐인가.

‘나는 그게 싫음’이라…. 그러니 어쩌란 말인가. 당연히 ‘나’에게 맞추라는 것이다. 내가 기준이니까. 내 생각이, 내 취향이, 내 기준이 옳으니, 옳지 않은 네가 내게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사들이 흔히들 입에 담는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란, 사실은 ‘버릇이 자기 기준과 다른 녀석’을 이르는 말이다. 정말 그 아이에게 버릇이 ‘없는’ 것인가. 없다니! 단지 자기와 ‘다를’ 뿐인 것을.

‘못됐다, 나쁘다, 틀렸다’도 마찬가지다. 그것도 실은 자신과 ‘다른’ 것을 용인하지 못하는 협량(挾量)과 자시지벽(自是之癖)의 못 박음은 아닐까.
경제학 용어에 ‘외재적 선호’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그 말이 이 상황에 적절할는지는 모르겠으나, 자기 선호를 표현하고 드러내는 것을 넘어 선호의 노골화와 자신의 취향을 공격적으로 표현하는 것, 자기의 기호(?)를 남에게까지 강요하는 것, 자신의 호오( ?)를 남을 재는 잣대로 삼는 것…들까지도 포괄하는 개념이라면, 이 상황에 결부지어 봄 직할 것도 같다.

‘교복과 빡빡머리’를 학생다운 용모단정의 절대기준으로 여기는 교사는, 눈에 흙이 들어가도 자율복장과 노랑머리, 파마머리, 무쓰머리를 용납하지 못한다. 그에게 그것의 허용은 곧 교육의 포기이기 때문이다. ‘온순 착실’을 모범생의 표본으로 삼는 교사에게, 고분고분하지 않고 자기주장께나 하는 학생은 바로 ‘싸가지 없는 놈’ 부류에 해당한다.

그런 시각은, 학생들뿐 아니라 동료나 단체에게도 그대로 이어진다.

“교사가 정장(양복)이 아닌 웬 스님복장(개량한복)을?…”
“품위 없이 청바지에 티셔츠라니! 양아치마냥 수염에 터벅머리에 꽁지머리는 또 웬 꼴불견? 저러니 애들이 보고 뭘 배울꼬? 쯧쯧….”
“교사들이 어찌 노동자들처럼 종주먹을 부르쥐고 팔뚝질을 해?…”

자기 기준이 아닌 것은 곧장 눈에 거슬리고, 취향이 다른 것은(요즘말로 ‘내 타입이 아니야’하고 말면 될 것도) 바로 품위가 ‘없는’ 것으로 규정해 버리고 바꿀 것을 요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바로 타기의 대상이 되고 아예 다른 점들까지 표적으로 삼는다.

“인간이 미우니 하는 짓까지 다 꼴 보기 싫어지네. 그 녀석 웃는 모습조차 왜 그리 밉상인지…”
“좋은 일도 하필 그 녀석이 하니 가치가 떨어져 보이지 뭔갉.”

‘미운 며느리 발뒤꿈치가 계란 같다고 나무란다’는 속담처럼, 편견에서 유발되는 이러한 ‘미움의 연쇄’는 상대에 따른 이중 잣대로까지 이어진다. 딴 단체에서 하면 아무런 문제가 안 되던 일들도 특정단체에서 하면 갑자기 시빗거리가 되고 심지어는 징계의 꼬투리가 되기까지 한다.

의식의 수준인 ‘외재적 선호’가 공격성을 띠면서, 제도의 틈에 뇌관을 박아 ‘구조의 폭력’을 장착하는 순간이다. 취향의 차이가 살벌한 차별을 낳는 섬뜩한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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