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칼럼] 뱃속의 아기도 인권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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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칼럼] 뱃속의 아기도 인권은 있습니다
  • 경철수 기자
  • 승인 2007.11.21 16: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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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성 모태안 여성병원장
   
 
  최재성 모태안여성병원장  
 
최근에 누구나 한번쯤은 인권분만, 혹은 르봐이예 분만이나 가족분만에 대해서 들어봤을 것으로 생각된다. 인권분만은 아이가 태어날 때 최대한 태아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분만이며 그 중 대표되는 분만이 르봐이예 분만법이다.

르봐이예 분만의 대략은 이렇다. 자연스런 출산을 위해 진통 중에 산모의 운동을 제한하지 않고, 편안한 분위기 조성을 위해 분만실을 가급적 집과 같은 환경으로 꾸미며, 어두운 자궁 안에 있던 아기가 갑자기 밝은 빛에 노출돼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분만 중 아기의 머리가 보이고 의학적으로 위험이 없다고 판단되면 조명을 최대한 줄인다. 또한 아기를 거꾸로 들거나 엉덩이를 때리는 등의 심한 자극을 주지 않고, 아기가 엄마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안정할 수 있도록 탄생하는 즉시 엄마의 가슴에 엎어준다. 아기가 자연스럽게 폐호흡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탯줄은 맥동이 멈춘 후에 과격하지 않게 서서히 자르며, 탯줄을 자른 후 37도의 물에 넣어 양수로 돌아온 느낌을 가지게 해준다는 것이다.

최근에 고령임신과 다 태아 임신이 늘어나면서 갈수록 늘어가는 의학적 사고 위험의 노출에도 불구하고 의학적 사고에 대한 대책이나 중재 환경이 갈수록 열악해지면서 그저 ‘안전 분만’ 만을 생각했던 고정관념 속의 인권분만은 너무나도 큰 충격과 신선함을 주기에 충분했고 분만의 과정을 새롭게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이런 인권분만은 산모들에게도 상당한 반향을 일으켜서 최근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산전부터 태아의 입장에서 태교도 하고, 인권분만도 적극적으로 하길 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듯 분만의 과정조차도 태어나는 아기의 입장을 생각하면서도 기형을 가진 태아의 인권에 관한 문제는 소홀한 것이 사실이다. 그저 ‘의학적인 눈’으로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현재 우리사회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태아 기형의 세부전공을 통해 더 많은 경험을 하게 되는 나로서는 정상 신생아의 인권과 기형 태아의 인권에 이렇게까지 큰 차이가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하지만 더욱 슬픈 현실은 이것이 단지 기형태아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산모의 뱃속에서 아직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태아의 인권은 무시되고 부모의 권리만 남는 경우를 아직도 어렵지 않게 경험한다.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기형 태아를 갖는 산모의 입장이 너무도 확고하고 당당하다. 이 태아가 당연히 태어나야 할 권리가 있으며 태어나면 이 아이를 국가와 부모가 책임질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사회가 이런 아이를 책임지며 다른 정상 아이와 똑같은 시선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태어날 때까지 성별을 알려줄 수 없는 우리사회의 너무나도 황당한 현실, 아직도 장애인들이 사회에서 힘들게 지낼 수밖에 없는 사회의 시선과 국가 보조의 부실 등이 우리사회에서 태아의 인권이 무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권분만을 경험하면서 우리 사회도 태아의 인권에 대해 좀 더 성숙 한 사회가 될 것이란 기대는 아직도 버리지 않았다. 최근의 설문조사에서 자녀의 성별에 개의치 않는다는 부부가 거의 반수에 달하고, 장애아들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한결 성숙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국가의 지원도 조금씩 늘고 있어 인권분만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태아를 바라보는 산모와 아빠의 마음가짐도 확실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모쪼록 이 인권분만이 좀 더 빨리 우리사회가 태아의 인권까지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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