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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간과 도심재생] 버려진 공간에 문화 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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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간과 도심재생] 버려진 공간에 문화 심기
  • 박소영 기자
  • 승인 2007.12.06 1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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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클레스-백화점 건물, 작가들의 아뜰리에로 변신
베타니엔-세계 최초 국제레지던스 프로그램 운영
   
 
  독일 베를린 타클레스는 스쿠트 운동으로 인해 아뜰리에를 형성했다. 이곳에선 작가들이 직접 아트샵을 운영하기도 했다.  
 
글 싣는 순서
1.지역문화공간을 둘러싼 변화
2. 충북문화공간의 새지도
① 랜드마크 만들기
② 유럽 ‘아트팩토리’ 사례
3. 예술가 점거가 이뤄낸 실험공간
4. 지역민의 일상과 손잡다

예술가들의 점거운동인 스쿠트(sqart)는 처음에는 자기 방식대로의 공간점유였다. 서유럽에서 시작된 이 스쿠트sqart)는 단순히 빈 집이나 건물에 들어가 생활과 작업을 병행하다가, 점차 운동으로서 자리를 잡는다. 예술가들이 공간의 문화적 재구성에 목표를 두기 시작한 것이다. 창작공간에 목말랐던 예술가들에게 스쿠트는 점차 ‘점거 아틀리에(작업실)’로 자리를 잡아간다.

독일에서의 점거운동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거주 지역의 버려진 건물을 중심으로 펼쳐졌다. 우파파블릭, 베타니엔, 타클레스, 쿨투어 브라우니 등 모두 ‘점거’를 통해 문화공간을 만들어낸 곳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04년 오아시스 프로젝트팀이 수년째 방치된 목동 예술인 회관 건물을 점거하면서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작업실을 허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한국사회에서 과연 예술 점거가 가능한가’란 도발적인 물음을 던졌지만, 결국 답을 찾지 못한 채 끝나 버렸다. 비단 서울과 유럽뿐만 아니라, 청주에서도 2004년 스쿠트 운동이 가시화됐지만, 실행에 옮기는 데는 실패했다. 당시 빈 도지사 관사가 점거 대상지였다. 청주도 이제 도심 공동화로 인한 빈 공간들이 많다. 이러한 버려진 공간들이 예술가들의 점거를 통해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기를 상상해본다.

■ 그래피티 천국 ‘타클레스’
사실 처음엔 화장실 낙서인지, 그래피티인지 구분이 잘 안갔다. 온통 물감으로 낙서를 해 놓은 듯한 모습.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며 도심의 흉물처럼 서 있는 이 건물은 바로 ‘타클레스’였다. 타클레스는 과거엔 베를린에서 손꼽히는 백화점이었다고 한다. 타클레스에는 현재 30개의 스튜디오, 2개의 갤러리, 블루 살롱(옛날 갤러리), 영화 상영장, 연극 공연장 등이 있다. 1층엔 각양각색의 상점들과 함께 작은 댄스 교습소가 있다고. 또한 여기에는 26개국 60여명의 작가가 거주하고 있는데 회화, 음악, 조각, 설치, 의상 등 장르가 다양하다. 한국인 작가도 2명 입주해 있다.

   
 
  타클레스 건물 전경. 음산한 분위기에 갖가지 그래피티가 자유로운 예술정신을 말해준다.  
 
   
 
  타클레스 내부 전시실. 어느 벽하나 그래피티가 없는 곳이 없다. 누가 그리고 갔는지도 모른다고. 그림을 보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타클레스 운영담당자인 칼레드 케하우(Khaled KehaWi)씨는 “공산정권이 무너지고 아주 잠깐 정부가 없던 시절이 있었다. 이 때 동 베를린 예술가들과 다른 나라 예술가들이 모여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고 설명했다. 이 때 모여있던 예술가들이 ‘모든 걸 털어내 버리다’는 히브리어에서 뜻을 따와 ‘타클레스’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90년 2월, 타클레스가 태동했을때는 음악그룹이 주축이 됐다.

사실 타클레스 건물은 합법화되기까지 많은 굴곡이 있었다. 건물 자체는 베를린 연방정부 소속이고, 통일 이후 운영권은 별도의 재정담당기관이 가져갔다. 이 기관은 민간이나 개인자본가에게 건물을 되팔았기 때문에 타클레스 주인은 따로 있다.

하지만 정부의 강제 철거명령에 예술가들은 불응했고, 결국 정부가 점거활동을 인정해 10년간의 비공식적인 임대를 해줬다는 것.

타클레스의 운영주최는 입주 작가들의 연합회‘타클레스 E.V’다. 이들은 타클레스만의 운영 질서를 만들어냈다. 현재 입주작가들의 임대료는 1평방미터당 4유로, 일반 스튜디오의 경우 150~200유로를 낸다. 하지만 타클레스 내에 속해 있는 극장, 레스토랑은 더 많은 임대료를 낸다고.

1990년 타클레스가 만들어지기 전 거리에는 카페, 레스토랑이 전무했다. 그러니까 이 거리에 처음으로 들어선 문화공간은 타클레스였던 셈이다. 타클레스 건물은 24시간, 스튜디오는 밤 8시까지 개방하고 있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여전히 많다고 한다.

■ 베타니엔, 작가들의 창작 실험실

   
 
  베타니엔 건물 전경. 두개의 뽀쪽한 철탑이 인상적이다.  
 
쿤스틀러 하우스 베타니엔은 1850년대 옛날 병원 건물을 리모델링했다. 이 건물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프리드리히 빌레헴 4세가 만들었는데, 악마로부터 나라를 보호해줄 것이라 믿음 아래 2개의 철탑을 세웠다고 한다. ‘베타니엔’도 성경에서 따온 말. 예수님이 이스라엘 베타니엔 지방에서 사람들을 치료했다는 내용이 근거가 됐다. 그 이름을 따서 병원이 세워진 셈이다. 병실은 지금 전시장으로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베타니엔 역시 점거를 통해 만들어진 문화공간이다. 1968년 이 병원이 문을 닫자, 빈 병원건물에 100여명의 젊은이들이 점거를 시작했다. 이들은 좌파 지지자였고, 반전운동과 더불어 예술점거 운동을 벌였다고 한다. 경찰은 진압에 나섰지만 몇 년이 지난 후 베를린시에서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이렇게 1975년 문을 연 쿤스틀러 하우스 베타니엔은 최초의 국제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는 전세계 예술가 창작스튜디오에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베타니엔의 후원자였던 헬렐 박사가 냈다고 한다.

따라서 베타니엔은 시작부터 베를린 작가 지원이 아닌 국제교류를 지향했다. 국제교류운영 책임자인 크리스토퍼 타냐트씨는 “국제적인 작가를 베를린으로 모으는 것이 목표다. 베를린은 집값이 싼편이라 이동하는 예술가들이 많다. 현재 베를린 시에만 6000명의 예술가가 있고, 이를 통해 베를린은 에너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베타니엔에는 25개의 스튜디오가 있다. 현재 이곳에 있는 작가는 총 17명이다. 타냐트씨는 “베나티엔은 작가의 생각을 발전시키는 ‘제작소’와 같은 공간이다. 따라서 베타니엔 초대작가는 거주하는 1년 동안 예술시장에 소개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병원 건물의 바닥재며 내부 구조물들을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병실이 전시장으로 변신한 셈이다.  
 
루마니아에서 온 작가는 전시장에 보드카를 끓이는 장치를 설치해 전시기간동안 관객들에게 실제로 보드카를 권했다. 또 이곳에서‘스타디움’의 광고를 찍었는데, 바퀴벌레 경주에 돈을 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줬다. 창작 실험실과 극도의 상업적인 광고의 결합은 기막힌 반전이다. 이처럼 베타니엔은 일반적이지 않는 사고를 지원한다.
또한 베타니엔 입주작가는 한달에 1200유로(한화 150만원 정도)를 지원받는다. 베타니엔 입주작가의 조건은 까다로운 편이다. 7년 이상 전문적인 예술활동을 한 사람, 비엔날레 경험이 있는 작가, 작품성을 인정받은 사람 등이다. 후원기관을 통해 작가들이 입주하기도 하지만, 베타니엔이 직접 선정하기도 한다.

베타니엔에는 지금까지 총 850여명의 예술가들이 다녀갔다. 초청된 예술가들은 오로지 ‘미술’분야였다. 노만비스키(Norbert Biskys)는 이곳을 거쳐간 후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했다. 우리나라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기관으로 등록돼 있으며, 3명의 작가가 이곳을 거쳐갔다. 현재는 이문주씨가 입주작가로 있다.

또한 베타니엔 프로그램이 특별한 점은 예술가와 큐레이터가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각 예술가들은 3명의 기술자로부터 전적인 기술지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 베를린=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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