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고기 의심 없이 먹어준 가상한 우정에 축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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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고기 의심 없이 먹어준 가상한 우정에 축복을!
  • 충북인뉴스
  • 승인 2008.06.26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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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달 양계농민

   
“아직도 담배피우세요?” “네 요즘 도리어 더 피웁니다. 닭 키우고 있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힘내세요” 얼마 전 장날 만난 지인과의 대화 내용이다. 연초에 양계인들에게 모처에서 올해 양계전망에 대한 설문조사가 있었다.

90%이상의 대답이 사상 유래 없는 어려움을 답했다. 지속적인 국제 곡물가의 상승으로 사료 값은 이미 천정부지로 뛰고 있었고 한미 FTA뿐 아니라 EU-FTA나 한일 FTA까지 대기하고 있는 최악의 상황에서 거의 살아남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으로 한해를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철새의 유입과 이동이 원인이라는 주로 겨울철에 발생한다는 조류인플루엔자도, 가장 위험하다는 시기를 무사히 넘기고 이제 따뜻한 날씨로 인해 조금 안심해도 되겠다하던 시기에 갑자기 터졌다.

꼬리를 무는 추가발생으로 전국적으로는 800만 마리가 넘는 닭과 오리가 살 처분 되었고 방송에서는 연일 친절하게도 매장광경을 여과 없이 상세하게 내보냈다.
야생너구리 한 마리가 덫에 걸려 피를 흘려도 모자이크 처리를 하여 방송에 내보내는 요즘 자루에 담겨 미처 죽지도 못한 닭과 오리를 생매장 하는 모습은 정말 끔찍한 광경이었다.

자식 돌보듯 알에서 갓 깨어난 어린것들을 키워온 농가인데, 내다묻어야 하는 심정이나, 발생농장도 아닌데 주변 3km이내라는 이유로 무작정 살 처분당하는 아픔이 정말 내 일 인 듯 절실히 와 닿았다.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발생현황인데도 TV에 보도되는 순간엔 늘 채널을 돌려버리는 정도였다. 거기에다 현장에 투입되었던 사병의 ‘AI의심환자 분류’보도는 드러난 상처에 소금을 끼얹기 충분한 일이었다.
나중에 결국 일반적인 감기로 판명나긴 했어도 이미 그때는 우리 모두에게 막연한 불안감이 확산돼 ‘먹으면 죽는다’는 인식이 자리 잡은 후였다.

‘75℃이상 5분이면 사멸’, ‘음식으로 걸린 사례 한건도 없음’, ‘의심 닭 외부유출 절대 불가능’ 아무리 떠들어대도, 말하는 당사자도 듣는 사람들도 그저 말뿐인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 무렵 우리 농장에는 입추 20여일된 어린 닭들이 자라고 있었다. 혹여 우리농장에서 먼저 발생해서 주변 농장에 피해를 주지 않을까, 주변농장에서 먼저 감염소식이 들려 우리농장도 살 처분 되는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닌가 정말 하루하루 긴 시간이었다. 방송보도대로 하면 사실 감염 0순위인 우리 농가입장에서는 나중엔 아예 이래도, 이래도 우린 건재하지 않느냐는 오기 비슷한 심정이 생길 정도였다.

온 나라를 휘몰아치던 AI광풍도 이젠 잠잠해졌습니다. 긴 터널을 지나온 듯, 마치 오랜 걱정이 해결되었어도 정작 그 고통의 분량이 너무 커서 사태를 진작하지 못하듯 아직 실감이 나질 않는다. 여전히 불안하고 조심스럽다. 하루빨리 피해농가의 상흔이 아물어 다시금 삶의 활력을 되찾게 되기를 간절히 바랄뿐이다.

미처 죽임을 당하지도 못하고 순장을 치러야했던 닭과 오리에게 명복을! 35년 만에 만난 초등학교 동창친구들, 숯불에 구워준 닭고기를 맛있게 먹어주던 가상한 우정에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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