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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 신건식 선생,상해 임정 수립 견인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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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 신건식 선생,상해 임정 수립 견인차
  • 경철수
  • 승인 2008.11.11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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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권희목 선생 3.1운동 포고문 배포하다 옥고 치러

대한 의사회가 이달 15일 창립 100주년을 맞는다.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 속에 많은 영향을 미친 대한 의사회는 국내외 주요인사를 초청하는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준비 중에 있다. 특히 100년의 역사를 빛낸 의사회원 100명을 선정해 '한국의사 100년 기장'을 수여할 예정이다. 아쉽게도 충북 출신 의사는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단일 직종에서 가장 많은 의사출신 독립운동가를 배출했던 점을 고려해 충북의사회와 공동기획으로 독립운동가로 활약했던 충북출신 의료인을 찾아 역사를 빛낸 충북의료인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역사를 빛낸 충북의료인
<상>독립운동가로 활약한 충북출신 의료인
<중>충북 최초의 서양식 의료기관은?
<하>충북 의료계 산증인을 찾아서

   
▲ 1931년 남경에서 중앙군관학교 군의관 시절 신건식(왼쪽)과 박찬익(사돈). 1919년 6월 경성 고법에서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받고 복역할 당시 권희목 선생(오른쪽).
국 근·현대사의 굴곡 속에서 의사 출신의 독립운동가의 활약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근대 전환기 세계는 제국주의와 식민지 국가로 양분되어 식민지 해방운동은 반침략 해방운동과 근대국가수립운동으로 전개됐다. 국내에서도 당시 일제 침략과 민족말살정책을 이겨내고 고유의 문화를 지켜 내기 위한 활발한 운동이 전개됐다.

현재 65명의 의사출신 독립운동가가 3.1운동, 국내외 항일운동과 친일파 제거, 대한민국 임시정부 활동, 광복군, 학생운동, 군자금모집, 애국부인회 활동, 한족회, 대한독립단 활동으로 대통령 표창과 애족장, 건국포장을 상훈하기도 했다. 그리고 만주와 러시아, 중국, 국·내외에서 민족독립을 위해 활약한 79명의 의사출신 독립운동가가 상훈을 기다리고 있다.

충북의 대표적인 의사출신 독립운동가로는 청원군 가덕면에서 태어난 삼강(三岡)신건식 선생(申健植 1889∼1963)이 있다. 그는 YMCA에서 운영하는 외국어학교를 졸업하고 상해로 망명해 1912년 4월 중국 절강성 성립 항주 의약전문학교를 졸업했다. 한 때에 중국 정규군 장교가 되어 황푸군관학교에 근무하면서 대종교(大倧敎)를 신봉했다.

그는 상해지역 독립운동의 교두보를 만들어낸 신규식 선생의 동생으로 형인 신규식, 사돈인 박찬익, 신채호 선생 등과 함께 상해지역 최초의 독립운동 조직인 동제사를 결성했다. 이는 상해를 독립운동 기지로 건설하는 첫 작업이었다. 또한 3·1운동 직후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상해에 수립되는 터전을 마련했다. 1921년에는 특수사명을 띠고 국내에 잠입, 군자금을 모집해 가지고 돌아가다가 압록강에서 일본 헌병에게 잡혀 모진 고문을 받고 불구의 몸이 되었다.

1922년 병보석으로 신의주 감옥에서 나온 후 다시 상해로 탈출, 임시정부에 참여했다. 1939년에는 임시정부 재무차관(財務次官), 의정원(議政院) 충청도 대의원(국회의원) 등을 역임하고 광복 후 주중대표(駐中代表)로 있다가 귀국했다. 1944년 3월에는 한국독립당을 조직해 감찰위원에 선임되기도 했다. 신건식 선생은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유족으론 독립운동가로 활약했던 딸 신순호 여사가 생존해 있다.

또 다른 충북 출신 독립운동가로 의사 권희목 선생(權熙穆 1891∼1930)이 있다. 충북 제천 출생으로 1913년 경성제일고보를 졸업한 권희목 선생은 경성의전에 입학, 1917년에 경성의전 부속병원에서 수습과정을 마쳤다. 그는 3.1운동 준비와 시위과정에 참가했다. 1919년 2월20일 서울 안국동 125번지 천도교인 박이근의 집에서 허익환과 같이 조선민국 임시정부 포고문과 도령부령 제 1·2호 2000여장을 비밀리에 인쇄해 서울 시내에 배표하다 일본군에 검거됐다.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월형을 받고 항소했으나 그해 8월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6월형이 확정됐다. 하지만 또 다시 상고한 선생은 그해 10월9일 고등법원 상고심이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권희목 선생은 1986년 대통령 표창 추서후 훈격이 격상되어 지난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현재 선생은 후손이 없어 독립유공자 등록이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큰아버지인 신규식 선생 도와 독립운동 헌신"
독립운동가 신순호 여사가 기억하는 아버지 신건식 선생

   
▲ 신건식 선생의 유일한 유족 딸 신순호(여성 독립운동가) 여사.
의사출신 독립운동가 신건식 선생에겐 유족으로 딸이 하나 있다. 5살 어린 나이에 어머니 손에 이끌려 중국으로 망명한 아버지를 찾아간 후 일본이 패망해 조국으로 돌아오기까지 20년 가까운 고난의 세월을 살아온 여성 독립운동가 신순호 여사가 주인공이다.

신 여사는 독립운동가 집안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당시를 회상했다. 큰아버지 신정식, 둘째 큰 아버지 신규식, 아버지 신건식, 작은 아버지 신동식 선생 모두가 독립운동가였다. 동생들 때문에 밤낮 없이 주재소에 불려 다닌 큰 아버지(신정식)에 대한 기억과 구한말 육군 참위로 복무하다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세상에 알리려 음독순절 하려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둘째 큰아버지 신규식 선생을 기억했다.

또 중국으로 망명해 일선(逸仙) 손문 등 중국의 혁명가들과 교류하며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활동하다 1922년 43세의 나이로 순직했던 큰 아버지 신규식과 그를 도와 독립운동을 한 아버지 신건식을 회상했다. 신 여사는 “아버지는 1912년 중국 항주 의약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중국군에 복무하며 우리 동포들을 지원하고 임정의 활동을 도왔다”고 말했다.

신 여사는 7살에 일선(逸仙) 소학교에 입학해 공부를 하면서 윤봉길 의사 추도식을 참관했다. 당시 신 여사는 “수억 중국인이 못했던 일을 2천의 한국 사람이 했다”는 교장 선생의 추도사를 전했다. 사실 신 여사는 1904년 관립 상공학교 재학 중에 국권회복 운동을 하다 퇴학을 당하고 신민회 활동을 했던 박찬익 선생의 며느리다. 

본인도 1940년 9월17일 한국광복군 성립전례식 때에 오광심, 김정숙, 조순옥 등과 함께 여군으로 참가한 바 있다. 신 여사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독립 운동가들이 남의 나라 땅에서 수십 년 동안 풍찬노숙하시며 후손들에게 바른 나라를 물려주려 한 뜻을 깊이 되 새겨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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