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자 '목숨 내놓고' 다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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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자 '목숨 내놓고' 다녀야 한다
  • 홍강희 기자
  • 승인 2009.02.04 0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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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충로·국보로·남들로 인도, 이미 주차장화
풍선형 광고탑·입간판·적치물들이 보행 방해

우리나라 상가 이면도로는 불법주차 천국이다. 대로변에서 조금만 들어가도 이를 금방 확인할 수 있다. 기자는 지난 1월 틈나는대로 청주시내 상가 이면도로를 걸어보았다. 보행환경 실태조사를 위한 목적으로 둘러보자 거의 모든 도로가 문제였다. 도로는 예외없이 자동차들로 빼곡하고 사람들은 자동차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곡예하듯 걷고 있었다.

   
▲ 국보로의 한 마트에서 인도에 내놓은 물건들. 선물셋트와 생필품들을 차곡차곡 쌓아 놓았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차도로 다닌다.
그리고 도로변 주차 차량들과 길 가운데로 걸을 수밖에 없는 보행자 때문에 자동차는 어쩔 수 없이 중앙선을 넘는다. 자전거 타는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위험천만하게 중앙선을 넘기 일쑤다. 상가 이면도로가 이렇게 주차장화된 것은 많은 자동차들이 대로변 상가지역의 불법주차 감시카메라를 피해 주택가로 숨어 들었기 때문이다.

상가를 차지해버린 상인들
청주시내 상가 이면도로는 거의 이같은 상황이지만 그 중 심한 북문로2가 삼충로의 한국산업연수원~학천탕~청주중, 사직동 국보로의 국보사거리~모충동 후생사, 그리고 수곡동 남들로의 구법원 사거리~무심서로를 취재대상으로 삼았다.

   
▲ 수곡동 대로변에 내놓은 풍선형 광고탑으로 인해 보행인들은 방해를 받는다.
최효승 도시·건축·에코뮤지엄연구소장(청주대 건축학과 명예교수)은 “다른 곳도 마찬가지지만, 위 세 곳의 보행환경이 특히 열악하다. 비교적 시내에 위치해 있어 사람들의 통행량이 많은데다 대로변에 가까이 있어 불법주차 차량 또한 상당히 많다. 이 도로들은 인도가 아예 없거나 있어도 매우 좁다. 인도는 거의 자동차들 차지가 돼버렸고 상가에서 입간판이나 풍선형 광고탑을 내놓아 그마저도 걸을 수 없게 돼있다”며 “상가 문 조차도 밖으로 열도록 돼있는 곳이 많아 행인들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그 원인을 공공의 공간은 내 것으로 써도 큰 잘못이 아니라는 의식과 그 정도의 위법은 단속이나 계도대상으로 생각지 않는 단속기관의 너그러움, 그리고 일상적인 불편함에 대해 시정요구를 하지 않는 시민의식의 복합적인 현상때문이라고 진단했다.

   
▲ 삼충로 산업연수원 앞길. 일방통행로이나 청주시에서 양쪽에 공영주차장을 설치, 매우 복잡하고 여유가 없다.
지난 1월 30일 사직동 국보사거리~모충동 후생사길. 도로 양쪽에는 노란선으로 표시된 인도가 있었으나 배달용 오토바이와 자동차들이 점령했거나 인근 상가에서 내놓은 물건들이 쌓여 있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알아서 다녀야 했다. 이 길에는 ㄱ마트, ㄷ마트, ㅌ유통마트 등 3개의 중소마트가 있다.

그런데 ㄱ마트는 상가 좌우 인도에 아예 또 하나의 점포를 차려 놓았다. 아이스크림통과 과자, 화장지, 세제 등을 진열해놓고 그 앞에 설맞이 선물용 셋트와 과일상자들을 차곡차곡 올려 놓았다.

설이 지나 선물셋트를 치운다고 해도 작은 점포는 그대로 유지해 사람들은 차도로 다닐 수밖에 없다. 나머지 두 곳의 마트도 사정은 마찬가지. 배달용 트럭과 각종 생필품들이 인도를 차지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또 인근의 금은방과 해장국집, 옷수선집 등에서도 입간판을 인도에 내놓아 통행을 방해하고 있었다.

   
▲ 삼충로 거리에 내놓은 풍선형 광고탑. 인도가 있기는 하지만 광고탑과 의자, 기타 쓰레기 등으로 보행인들이 걷기 힘들다.
일본에 크게 뒤떨어지는 한국
같은 날 수곡동 구법원사거리에서 무심서로쪽 상가 이면도로. 이 곳은 아예 인도가 없는데 불법주차된 차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구법원사거리~꽃다리 대로변 인도 역시 상가에서 내놓은 불법 광고물들이 버티고 있었다. 한 횟집에서 내놓은 풍선형 광고탑이 대표적이다.

청주시의 한 관계자는 “도로폭이 12m 이상일 때 인도를 설치한다. 다만 통학로처럼 민원이 있을 때는 12m 이하이더라도 한쪽에 인도를 설치하는 경우가 있다. 노란선으로 그린 노측선이 이런 것“이라면서 “구청에서 불법주차 및 불법 적치물 단속을 하지만, 단속반원들이 청주시내를 모두 단속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단속할 때만 피했다가 끝나면 다시 나타나 근본적인 해결이 안된다”고 말했다.

   
▲ 구 중앙극장 앞 길은 도로공사를 한 뒤 인도를 넓혀 그나마 보행하기 좋다.
지난 1월 24일 걸어본 학천탕 앞길도 자동차 천국이었다. 이 곳은 일방통행로인데 청주시에서 양쪽에 공영주차장을 설치해 보행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최 소장은 “일방통행로로 한 것은 잘한 일이나 양쪽에 공영주차장을 만든 것은 통학하는 학생들과 상가를 찾는 이용객들 모두에게 큰 불편을 준다. 이럴 때는 한 쪽에만 공영주차장을 설치하는 게 보행환경면에서는 훨씬 낫다”며 반대쪽은 보행자·자전거 도로를 만드는 것이 상가 활성화에도 더 보탬이 된다고 강조했다. 실제 이 곳은 여간 복잡하지 않다. 인근 거의 모든 골목이 일방통행로인데 시내 중심가와 가까워 주차장이나 마찬가지다. 경화반점~청주공고나 중앙동 주민자치센터 앞 도로는 보행자들이 차도로 다녀야 한다. 인도는 아예 없다.

   
▲ 차도에서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 모습이 불안하기만 하다. 수동성당길에서 방아다리 나가는 지점.
이어 최 소장은 “선진국에는 생활도로라는 게 있다. 학생들의 통학로이자 동네사람들과 만나 얘기할 수 있는 곳, 아이들이 공놀이를 하며 즐겁게 놀기도 하는 곳이고 자동차는 사람이 걷는 속도 이하로 느리게 가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개념 자체가 없다. 작은 도로가 모두 주차장화됐기 때문이다. 학천탕 앞 길도 학생들의 통학로 구실을 하기 때문에 ‘생활도로’처럼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은 64년 올림픽경기를 끝내고 차고지증명제를 도입, 불법주차를 못하게 할뿐 아니라 생활도로를 대폭 개선해 시민들이 편하게 통행할 수 있게 했다는 최 소장의 말은 우리의 후진성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했다. 최 소장은 또 “더욱이 일본은 생활도로를 독일에서 벤치마킹하면서 10km 이하로 다니도록 해 사람우선주의를 실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언제쯤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을까. 우리나라도 하루빨리 사람우선정책을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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