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음을 모릅니다. 아직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삶의 자리에서 내가 말할 수 있는 죽음의 성격은 두 가지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그것이 절망이라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의 끝이라는 단편적인 이해입니다.
그런 내게 지금 떠오르는 한 마디의 오래 묵은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만해의 시 한 구절로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된다'는 것, 오래 전부터 나를 따라다니며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인지를 묻게 한 말입니다. 비교적 최근에 나는 그 구절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는데, 극단적 선택으로 수많은 사람의 가슴을 울린 그분이 남긴 말, '삶과 죽음이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이 만해의 시 구절과 같은 뜻을 지닌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지금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오늘의 상황 앞에서 나처럼 부끄러워도 하고 슬퍼도 한다는 것, 지금 우리는 틀림없이 이 부끄러움의 현장을 피할 수 없이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 그 부끄러운 자리는 극소수의 이익을 위해서 절대다수의 국민이 선거 때 표나 찍는 기계로 전락하고, 선거가 끝나면 그 절대다수의 국민은 벼랑끝으로 내몰리는 상황, 그러면서 정치인들끼리는 이리저리 몰려다니고 국민들에게는 재갈을 물리거나 속이는 정치적 행태들과 연관이 적지 않다는 것.
여기서 나는 오늘의 상황을 보면서 또 하나의 꿈을 꿉니다. 패권주의에서 나오는 집단의 광기가 번뜩이는 이 삭막하고 위태로운 마당에서 새로운 정치상황이 열리는, 그래서 정치인은 국민의 착한 심부름꾼이고 그 정치를 통해 높은 것은 눌러 낮추고 주저물러 앉는 것은 보듬고 일으켜 세워 화합과 상생을 이루는 세상, 그리고 지금의 이 상황이 저기서 여기로 나아가는 길목이 된다면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된다'는 만해의 노래가 구체적 현실로 쉽게 이해될 수 있겠다는.
지금은 부끄러워할 때, 지금은 슬퍼할 때, 그러나 이것이 단지 그렇기만 할 일은 아니고, 이것을 승화시켜 밝고 고운 미래를 여는 문고리로 삼는 슬기가 우리에게 또한 필요할 때라는 것을 헤아리며 어제 졌던 해가 다시 떠오르는 동쪽 하늘을 내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