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전 대통령 추모비 3년째 창고 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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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 추모비 3년째 창고 신세
  • 박소영 기자
  • 승인 2012.05.23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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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보수 갈등 이미지 과도하게 덧 입혀져
청남대 설치 ‘눈 앞’…역대 대통령 유물로 해석

“관심이 없는 거예요. 이젠 다 귀찮아 진거지. 누구 하나 책임지려는 주체도 없고.” 충북추모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노무현 대통령 추모비(표지석)는 지금도 청원군 마동분교에 그대로 방치돼 있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지 3년을 넘겼지만 노 전 대통령의 추모비는 아직도 안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간 2m도 채 되지 않는 노 전 대통령의 추모비에는 진보와 보수가 갈등이 덧입혀졌다. 또한 진보단체 끼리도 의견이 갈리면서 이를 해결하는 데 뜻을 하나로 모으지 못했다. 민선 5기 민주당 출신 단체장들이  당선됐어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결국 3년이 지났다. 갈등을 풀지 못하고, 누구도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 모양새는 노 전 대통령의 추모비 사건에도 반복됐다. 이것이 지역사회의 안타까운 현주소다.

떠돌이 신세 된 추모비

보수단체들은 청주시와 충북도에 상당공원이나 청남대에 추모비를 설치할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 망실하겠다”는 엄포를 놨고 실제 공문까지 보냈다. 이를 근거로 청주시와 충북도는 한발 뒤로 뺐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당시 시민추모위원회는 상당공원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조의를 표했다. 장례가 끝난 후 부의를 정산하고 남은 돈으로 추모비가 만들어졌다. 당시에도 후에 갈등을 예상해 추모비를 만들지 말자는 의견이 있었다. 논란 끝에 만들어진 추모비의 실제 제작비용은 200만원 남짓이었다. 김준권 판화가가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을 그리고, 최희석 조각가가 조각했다.

시민추모위원회는 상당공원에 추모비를 세워 시민들의 상당공원에서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는 것을 남기고 싶어했다. 하지만 의견이 엇갈렸다. 추모비를 두고 김연찬 서원대교수(시민추모위원장)를 비롯한 몇몇은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한시적 조직인 추모위원회에 균열이 갔다. 그러는 사이 노 전 대통령의 추모비는 수동성당→오창 농가→수동성당→마동분교로 2년간 떠돌이 신세가 된다. 도둑장가 가듯이 옮겨 다녔다.

지사와 시장 결단 못 내려

2009년 7월 수동성당에 처음 놓였다가 청원군 농장으로 옮겨진지 2년 만에 2011년 다시 수동성당에 추모비가 출연했다. 성당 측은 갑작스런 추모비 등장에 불편해했고, 급기야 추모비를 천으로 덮어씌워버리기까지 했다. 이러한 촌극이 벌어진 뒤 추모비는 한 때 시민추모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이 모 씨가 지난해 4월 20일 새벽에 추모비를 청원군 마동 분교로 옮겨 놓았다. 그 후론 아직까지 마동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청주시장은 노 전 대통령 시절 행정안전부 차관보에 임명된 인연이 있고, 이시종 지사는 서거 당시 민주당 충북도당 위원장으로 상주노릇을 했지만 정치적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청주시는 남상우 시절 여론조사 결과(설치반대가 많았다)와 보수단체 반발을 이유로 상당공원 설치를 공식적으로 불허했다. 그러자 충북도는 “청주시가 불허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면 청남대에 설치하도록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지난해 6월 내놓았다.

또 지난해 5월 발족된 충북추모위는 충북도와 파트너십을 유지하면서 청남대에 노 전 대통령 추모비 문제를 매듭져야 하지만 몇몇이 충북도 관계자와 비공식적인 채널을 만들었을 뿐이다. 그러는 사이 또 1년이 흘렀다.

“지사가 직접 지시했다”

백상진 충북도 보좌관은 “대통령 역사문화관이 올해 안에 완공되면 노 전 대통령의 추모비를 이곳에 놓은 예정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추모비를 역대 대통령의 ‘유물’로 해석하고 전시하는 것이다. 여기에 정치적인 것이 덧씌워지면 진보와 보수와의 갈등만 초래돼 입장이 곤란해진다. 조용히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고 답했다. 또 “대통령 전시관 완공이 늦어지게 될 수 있어 우선 빠른 시일 안에 청남대로 옮겨온 뒤 적당한 장소를 찾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제 노 전 대통령의 추모비는 역대 대통령  ‘유물’로 기록되게 된다. 다른 역대 대통령의 유물은 충북도와 연관 있는 것들을 찾아 전시할 예정이다.

이 지사는 최근 청남대 관리사업소를 직접 방문해 노 전 대통령 추모비 문제를 실무자에게 해결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충북도 관계자 모 씨는 “일이 이상하게 꼬여버렸다. 지난해 6월 이후 청남대 관리소장에게 설치를 검토하라고 지시했지만 지병 때문에 갑자기 그만두게 됐다. 인수인계가 되지 않아 설치 건이 붕 떠버리게 됐다. 지사가 의지가 없다는 것은 오해다”고 강조했다.

충북도는 앞으로 기부물품위원회를 소집해 승인 절차가 나면 충북추모위로부터 노 전 대통령의 추모비를 이양해야 한다. 현재 마동분교에 있는 것을 운반·설치하는 비용은 이번 추경에 예산을 세워 확보할 방침이다.

충북추모위의 이 모 씨는 “서거 3주기가 다가올수록 마음이 다급했지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충북도가 해결해 줄때까지 기다리는 상황이다”고 답했다.

그런데 지난 5월 이후 충북추모위가 발족한 이후 공식적으로 다시 모이지는 못했다. 반드시 문제를 해결하겠다던 이들은 왜 행동에 나서지 못했을까.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다. 송재봉 충북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노사모, 시민광장 등이 이 문제에 주축이 되다보니 시민사회연대회의가 공식적으로 나서지 못한 상황도 있었다. 시민사회가 최근 힘이 빠진 것 같다”고 에둘러 답했다.

송재봉 사무처장은 “해결을 못한다면 추모비를 차라리 봉화마을로 보내는 게 낫다. 진보와 보수의 상징기념물로 과도하게 상징화된 게 안타깝다. 전직 대통령의 기념물로 생각하면 쉽게 끝날 문제였다”라고 말했다. 

충북추모위 조직은 사실상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충북추모위 안에서도 일부가 노무현재단 충북준비위원회를 꾸리고 있고, 이번에 5월 19일 철당간에서 서거 3주기 추모제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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