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음으로 그녀와 간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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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음으로 그녀와 간음하였다
  • 이재표 기자
  • 승인 2012.06.07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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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는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 가운데 마음으로 짓는 죄, 즉 의업(意業)을 가장 경계한다. 마음으로 짓는 죄가 어찌 몸과 입으로 짓는 죄만큼 무거울 수 있겠냐마는 모든 업이 결국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기독교도 다르지 않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누구든지 정욕의 눈으로 여자를 바라보는 사람은 이미 마음으로 그녀와 간음하였다’고 단정한다.

‘거룩한 종교의 세계’는 그렇다 치고 ‘더러운 정치판’에서도 생각으로 짓는 죄에 대해서 단죄할 수 있을까? 19대 국회 개원에 즈음해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이석기, 김재연 의원을 제명해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들이 과거 주체사상을 신봉했고, 이석기 의원의 경우에는 민혁당 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전력까지 있다는 것이다.

보수언론과 보수인사들은 이들에게 ‘아직도 주사파냐’고 묻고 있는데 여기에 시원하게 답하지 않자 ‘아직도 사상전향을 하지 않았다’며 이를 종북(從北)의 증거로 간주하고 있다. 이들이 진정 종북이라 하더라도 이것만으로는 현행법(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볼 수 없으니 정치적으로라도 처벌하겠다는 것이 제명의 논리다.

그런데 종북이 이처럼 금배지를 달고 뗄 정도로 중대한 판단의 근거가 된다면 종북과 그의 아류로 볼 수 있는 친북(親北)의 정확한 경계는 어디쯤일까? 북한을 남북통일의 한 주체로 인정하고 박정희-김일성의 7.4공동선명과 김대중-김정일의 6.15 공동선언이 실현되기를 바라는 나는 종북인가, 친북인가? 아니면 또 다른 ‘○북’일까?

국회의원이니까 무조건 답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꽤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만 그렇다면 300명 전원에게 물어야한다. 이석기 의원이 현행법에 의해 처벌을 받았던 사상범이었다지만 과거의 전력 때문에 그를 찍어서 ‘너만 사상을 자백하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양심의 자유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평소에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주장을 펼쳐 관철시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사실은 그녀가 아니라 그녀들

몇 명만 찍어서 검증을 하자고해도 통합진보당의 지역구 당선자들은 물론이고 민주통합당, 심지어는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도 상당수가 그 대상이 될 것이다. 친절한 보수언론은 19대 국회의원 중 29명이 반공법 또는 국가보안법 위반전력이 있다고 알려주고 있다.

MB의 남자 이재오 의원은 시국사건으로 5차례나 구속됐고 지하조직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의원의 사상만 검증하겠다는 것은 절차와 내용의 민주주의에 반(反)한다.

잠시 제명의 역사를 돌아보자. “아나운서가 되려면 다 줘야한다”면서 국회의 권위를 추락시키는 구업을 지어 윤리위에 제소됐던 강용석 전 의원은 제명안이 부결돼 면죄부를 받았다. 이를 포함해 제헌의회부터 18대 국회까지 제명안이 상정됐던 것은 4건에 불과하다.

이 중 제명안이 통과돼 의원직을 잃은 경우는 1979년 10월 경호권을 발동해 여당의원만 참석한 가운데 ‘신민당 김영삼 의원 제명징계안’을 통과시킨 것이 유일하다.

제명은 아니지만 유사한 사례로, 1986년 10월 민정당이 ‘통일민주당 유성환 의원 체포동의안’을 가결시킨 전례가 있다. 유 의원은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에서 “대한민국 국시는 반공보다 통일이 돼야한다”고 일종의 커밍아웃을 했다가 철창신세를 졌다.

나를 대입시켜 상황을 정리해 본다. 생각은 찰나에도 수없이 일어나고 스러진다. 나는 마음으로 그녀와 간음한 적이 있다. 그녀가 누군지 밝힐 수 없는 것은 사실 단수가 아닐뿐더러 지금은 그녀들에게 의업을 짓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또 다른 상대에게 의업을 짓게 될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나의 의업이 설제 구업과 신업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도대체 어디까지 고백해야한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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