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사진] 양민을 보호했던 해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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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사진] 양민을 보호했던 해병대
  • 충청리뷰
  • 승인 2002.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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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두 (고엽제전우회 충북지부장)

부산 수산대롤 졸업하고 귀신도 잡는다는 해병대 소위로 임관, 청룡부대 소대장으로 전방에서 근무하던 나는 1965년 10월 월남에 파병됐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처럼 슬픈 역사를 지닌 베트남에 첫발을 내디뎠지만 처음부터 전장터를 누비진 않았다. 미군과 달리 한국군은 참전초기에는 다리와 도로를 닦고 양민을 보호하는 등 선무작업에 치중, 베트남인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월남에 도착하자마자 남베트남의 중부지역인 투이호아에 배치됐는데, 소대장이었던 나의 임무는 ‘전략촌’을 맡는 것이었다. 전략촌이란 말그대로 베트콩으로부터 양민을 보호하기 위해 한국군이 전략적으로 조성한 마을이었다.
나는 지리도 익히고 정보도 습득할 겸 틈만 나면 자전거를 타고 전략촌을 구석구석 누볐는데, 이름을 알 수 없는 9-10세 남짓한 간소복차림의 소녀와 평화롭게 찍은 한 장의 사진이 불쑥불쑥 36년전 이국에서의 푸른제복 시절로 기억을 이끈다.
그땐 몰랐지만 국제역학속에서 젊은이들이 월남에 파병돼 고귀한 피를 흘렸는데 최근 한국군에 의한 양민학살 등을 다룬 일부 언론의 보도를 접할때면 살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을 느낀다. 충북에서만 7년여 동안 2만3000여명이 참전했는데 이중 1300명이 월남정글에 뿌려진 고엽제로 지금까지 고통을 겪고 있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상두 (고엽제전우회 충북지부장)
△청원 문의면 출생(1942)
△문의초, 대성중, 청주고, 부산 수산대
△학사장교 해병소위 임관(1965)
△월남전 참전(1965년 10월-1966년 10월까지 1년간)
△해외참전전우회 청원·청주시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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