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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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밥
  • 정명숙
  • 승인 2004.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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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렇게 익기 시작하는 오월의 보리밭 사잇길을 걸어가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어쩌다 만날수있는 먼 그리움이 되어버린 봄의 황금 물결이다.

유년의 빈궁했던 봄날, 보릿고개와 꽁보리밥, 보리개떡, 아이들의 개구리배,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돋기 시작하는 들판의 각종나무들은 겨우네 김치와 무우씨래기국에 덤덤해진 입맛을 돋구는데도 한몫을 하였지만 허기진 배를 채워 힘든 논밭일을 할수있게도 했다. 이것은 사계절중 유독 봄에만 심하게 겪는 빈한한 생활 모습이었다.

요즈음은 흰쌀밥대신 웰빙 바람으로 온갖 잡곡을 썪어 밥을하고 육식보다는 무공해 야채가 좋다고 산나물과 들판의 야생나물들이 수난을 겪지만 지난날 배고픔과 고됨으로 넘던 보릿고개는 길고 지루한 여정이었고 보리밥은 그리 반가운 음식이 아니었다.

며칠전 오랜 친구들과의 모임이 있었다. 모두 지천명을 훌쩍 넘겼으니 예전같으면 할머니라 불리었을것이다. 간혹 만나면 점심을 무얼 먹을까 의견이 분분하였는데 어느때부터인지 보리밥 아니면 칼국수로 지정이 되어버렸다. 나이듦에 옛것에 대한 그리움이어서 일까?

우리뿐인가, 경로당에 점심을 해드릴 기회가 있어서 여러가지 나물과 함께 보리밥을 해드렸더니 너무도 좋아하시고 잘 잡수신다. 별미로 드시니 맛도 새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고달픈 인생여정이었지만 다시 갈수없는 젊은날에 대한 아쉬움이 보리밥속에 담겨져있어 추억에 젖어 드시는듯도 했다.

햇빛이 따갑게 시작하는 들녘에 서서 노랗게 물들어가는 보리가 바람에 일렁이는 모습을 보며 배고프던 시절의 보릿고개와 꽁보리밥, 그리고 웰빙 바람으로 너도나도 다시 찾는 보리밥을 생각하면서 세상 흐름에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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