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자연파괴와 인간착취는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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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자연파괴와 인간착취는 닮았다
  • 충북인뉴스
  • 승인 2013.05.22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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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형식 빌어 쓴 <수달 타카의 일생>과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조광복 노무사

지금은 기억도 가물가물한 두 권의 책에 관한 얘기를 쓰겠다. 하나는 <수달 타카의 일생>이고 또 하나는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다. 모두 소설의 형식을 빌려 왔다. <수달 타카의 일생>은 20세기 초 영국의 한 지방을 배경으로 ‘타카’로 이름붙인 수달의 짧은 생을 그린 작품이다.

어미 뱃속에 들었을 때부터 ‘타카’는 인간과 사냥개로부터 쫓기는 삶을 살아야 했다. 수달을 쫓는 인간은 모피가 필요해서 혹은 단지 수달을 몇 마리 잡았는지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 사냥개를 앞세워 수달을 포획했고 포획한 그 자리에서 수달의 껍질을 벗겼다.

이 소설은 수달의 생존 방식과 수달을 둘러싼 올빼미, 왜가리, 물범, 오소리, 여우, 족제비 등 자연 생태에 대한 묘사가 너무 생생하다. 인간과 사냥개에 쫓기는 수달 ‘타카’에게도 짧은 순간의 행복이 있고 추억이 있다.

하지만 짧은 순간의 행복은 인간의 포획을 견디기에는 너무 아슬아슬하다. 연인을 만났지만 그 연인 역시 사냥개에게 잡히고 만다. 결국 바닷가까지 추격당한 ‘타카’의 마지막 생은 자신을 미친 듯이 쫓던 사냥개의 우두머리 데드락을 죽이고 나서야 끝맺는다. 소설의 마지막 구절이다.

“사람들은 강에서 데드락을 끌어내어 둑으로 가져가 풀위에 뉘이면서 슬픔과 놀라움으로 죽은 사냥개를 바라보았다. 이들이 조용히 그곳에 서 있는 동안, 커다란 공기 방울 하나가 깊은 물 속에서 떠오르더니 이내 터져버렸고,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는 동안 또 다른 공기 방울이 떠올랐다가 터졌다. 바다로 밀려가는 물에서 세 번째 공기 방울이 떠올랐지만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었다. 바닷물이 모든 것을 씻어 가버렸다.”

소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인디언 소년의 성장기다. 실제 인디언 출신이었던 저자의 성장기이기도 하고 소설 속 아이의 이름이 ‘작은 나무’인데 또한 저자의 어릴 적 이름이었다고 한다. ‘작은 나무’는 한없이 지혜롭고 순박한 할아버지 그리고 할머니와 외따로 살아간다. 인디언인 할아버지가 얼마나 지혜로운지는 다음의 말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꿀벌인 티비들만 자기들이 쓸 것보다 더 많은 꿀을 저장해두지…그러니 곰한테도 뺏기고 너구리한테도 뺏기고…우리 체로키한테 뺏기기도 하지. 그놈들은 언제나 자기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쌓아두고 싶어 하는 사람들하고 똑같아. 뒤룩뒤룩 살찐 사람들 말이야. 그런 사람들은 그러고도 또 남의 걸 빼앗아오고 싶어하지. 그러니 전쟁이 일어나고…그러고 나면 또 길고 긴 협상이 시작되지.

조금이라도 자기 몫을 더 늘리려고 말이다. 그들은 자기가 먼저 깃발을 꽂았기 때문에 그럴 권리가 있다고 하지…그러니 사람들은 그놈의 말과 깃발 때문에 서서히 죽어가는 셈이야… 하지만 그들도 자연의 이치를 바꿀 수는 없어.”

서로 닮은 두 소설

그러나 ‘작은 나무’에게도 행복은 계속 되지 않았다. 너무나 잘 알려진 것처럼 백인은 원주민인 인디언을 한편으론 학살하면서 또 한편으론 그들의 공동체를 파괴하고 백인의 생활방식에 집어넣으려는 정책을 펼친다. 결국 ‘작은 나무’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품을 떠나 교회가 운영하는 숙소에 강제로 떠맡겨진다. 한번은 수업 중에 선생이 사슴들이 시냇가를 건너는 사진을 보여주며 뭘 하고 있는 건지 말해보라 했다.

한 아이는 무언가에 쫓기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작은 나무’가 손을 들었다. ‘작은 나무’는 수사슴이 암사슴의 엉덩이 위로 뛰어오른 걸 보면 그들이 짝짓기 하는 중인 게 틀림없다고 했다. 거기다 주위 풀이나 나무 모습을 보더라도 짝짓기 철이라고 말했다. ‘작은 나무’는 목사에게로 끌려갔다. 목사는 막대기를 집어들었다.

“너는 악의 씨를 받아서 태어났어. 그러니 애초에 너한테 회개 같은 게 통할 리 없다는 건 알고 있어. 그렇지만… 울게 만들 수는 있지!” “그래도 울지는 않았다. 할머니가 예전에 가르쳐주신 적이 있다… 인디언이 고통을 참는 방법을… 인디언들은 몸의 마음을 잠재우고, 대신 몸 바깥으로 빠져나간 영혼의 마음으로 고통을 느끼지 않고 고통을 바라본다… 대부분의 피는 다리를 타고 흘러내려 그대로 신발 속으로 들어갔다.”

‘작은 나무’는 결국 백인들의 교회를 빠져나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돌아간다. 소설은 말하지 않았지만 인디언 마을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백인들이 강제 이주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수달 타카의 일생>과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을 동시에 떠올렸던 것은 두 소설이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하나는 인간이 자연 생명을 어떻게 파괴하고 착취했는지에 관한 기록이고 하나는 인간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고 착취했는지에 관한 기록이다. 나는 언제부턴가 인간이 자연을 착취(파괴)하는 것과 인간이 인간을 착취(파괴)하는 것은 본래가 한 뿌리에서 시작된 것이라 믿게 되었다. 지금 우리의 모습도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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