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음속에 이순신이 살아있다
상태바
우리 마음속에 이순신이 살아있다
  • 충북인뉴스
  • 승인 2013.06.07 13: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훈의 <칼의 노래>와 이순신의 <난중일기>
정효경
정효경성형외과 원장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꽃피는 숲에 저녁노을이 비치어, 구름처럼 부풀어오른 섬들은 바다에 결박된 사슬을 풀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듯싶었다. 뭍으로 건너온 새들이 저무는 섬으로 돌아갈 때, 물위에 깔린 노을은 수평선 쪽으로 몰려가서 소멸했다. 저녁이면 먼 섬들이 박모(薄暮) 속으로 불려가고, 아침에 떠오르는 해가 먼 섬부터 다시 세상에 돌려보내는 것이어서, 바다에서는 늘 먼 섬이 먼저 소멸하고 먼 섬이 먼저 떠올랐다.” 김훈의 <칼의 노래> 첫 구절이다. 시작부터 가슴이 저미도록 아름다운 글이면서도 비장한 결의와 위대한 종말을 느끼게 한다.

소설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한국인으로서 한글로 써진 이 글을 음미할 수 있는 것이 감사하다. 누군가 <칼의 노래>를 외국어로 번역한다면 과연 유려한 글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전해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2001년도 생각의 나무에서 출판된 <칼의 노래>가 품절이어서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우리 출판계의 척박함을 무척 아쉬워했었다. 그러나 다행히 올해 문학동네에서 개정판이 나왔다.

김훈은 <칼의 노래>의 일러두기에서 이 글은 오직 소설로서 읽혀지기를 바라며 일부 소설과 사실의 차이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칼의 노래>가 소설가 김훈이 본 이순신이라면 <난중일기>는 이순신이 쓴 이순신이다. <난중일기>는 충무공이 전라 좌수사가 된 다음 해, 곧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임진년(1592년) 1월 1일부터 마지막 적탄에 맞아 전사하기 전전날인 무술년(1598년) 11월 17일까지 7년간의 일기이다. 사료적 가치뿐 아니라 인간 이순신의 정신세계와 생활을 알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과 지속적인 대화를 나누면서도 그것이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충무공은 <난중일기>를 통해 자신에게 끊임없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두려움이 아닌 믿음을 가지고 적을 이기고, 방향감과 확신을 회복하는 언어의 힘, 기록을 통한 다짐이었다고 본다. 자신의 결의를 재확인하는 날마다의 작은 결심들이다.

이순신이 규정한 ‘자연死’

충무공은 두 번이나 백의종군을 하고 다스릴 수군도 없었다. 막강한 왜군을 상대로 단지 12척으로 싸워야 하는 수군통제사가 되었을 때 이순신은 이렇게 장계를 올린다. ‘수군이 비록 외롭다 하나 이제 신에게 오히려 전선 열두척이 있사온즉 신의 몸이 죽지 않고 살아있는 한에는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힘은 과연 어디에서 나올 수 있을까. 두려운 전쟁에서 적에 비해 확실한 열세로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순신은 무인으로서의 운명을 자각한다.

무감각한 순응에 맞서는 유일하고 적절한 방어는 자신만의 특별한 길을 찾는 것이다. 이순신은 남이 쓴 인생의 각본을 깨끗이 걷어치웠다. 자신의 가치와 소명을 깨닫는 사람은 비난으로부터 자유롭고, 어떠한 도전도 두렵지 않으며, 어떤 환경에서도 가능성을 찾아내는 존재가 된다. 그리하여 일반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생각지도 못했던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 저녁에도 나는 적에 의해 규정되는 나의 위치를 무의미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힘든 일이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은 결국 어쩔 수 없다. 그러므로 내가 지는 어느 날, 내 몸이 적의 창검에 베이지더라고 나의 죽음은 결국은 자연사일 것이었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지는 풍경처럼, 애도될 일이 아닐 것이었다.”

충무공 역시 여느 사람과 마찬가지로 희망과 기쁨, 좌절과 죽음을 마주하여 살았다. 그럼에도 그를 다르게 만든 것은 자신의 전사를 자연사로 규정하는 화강암처럼 단단한 무인으로서의 자각이다. 진정한 힘은 내면에서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죽음조차 자연사로 규정하므로서 삶과 죽음을 초월하였다.

“갑자기 왼쪽 가슴이 무거웠다…군관 송희립이 방패로 내 앞을 가렸다. 지금 싸움이 한창이다. 너는 내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말라. 내 갑옷을 벗기면서 송희립은 울었다. 나으리. 총알은 깊지 않사옵니다. 나는 안다. 총알은 깊다. 오랜만에 갑옷을 벗은 몸에 서늘한 한기가 느껴졌다. 서늘함은 눈물겨웠다…밀물이 썰물로 바뀌는 와류 속에서 적병들의 시체가 소용돌이쳤다. 내 시체를 이 쓰레기의 바다에 던지라고 말하고 싶었다. 졸음이 입을 막아 입은 열리지 않았다. 나는 내 자연사에 안도했다.”

다만 적의 적으로서 살아지고 죽어지기를 바랐던, 적의 적으로서 죽는 죽음의 자리에서 그의 무와 충이 소멸해 주기를 바랐던 이순신은 전장에서 그가 규정한 ‘자연사’로 죽었다. 그리하여 그는 이기고 죽었으며 죽고 이겼다. 아직도 우리 마음속에 충무공이 살아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