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넘는 박달재’ 작사자 친일 논란에 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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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넘는 박달재’ 작사자 친일 논란에 울다
  • 권혁상 기자
  • 승인 2014.03.06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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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시, 친일인명사전 오른 ‘반야월 선생 기념관’ 건립사업 반대여론에 두손 들어
   
▲ 반야월 씨
“천등산(천둥산으로 잘못 알려짐) 박달재를 울고넘는 우리 님아…”1948년 박재홍이 부른 ‘울고넘는 박달재’의 첫 구절이다. 노래가 나온 지 반세기가 더 지났지만 국민 애창곡 조사에서 늘 10위권에 오를 만큼 사랑을 받고 있다. 이 곡의 노랫말은 2년전 작고한 반야월씨(작고당시 95세)가 지은 것이다. 반씨는 해방 전후 혼란기에 ‘단장의 미아리 고개’ ‘산장의 여인’ 등 심금을 울리는 5000여곡에 달하는 작품을 발표해 ‘가요계의 거성’이란 명성을 얻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울고 넘는 박달재’를 품고 있는 제천시가 반야월씨에게 관심을 쏟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90년대 중반 충주-제천간 터널 관통으로 박달재 고갯길은 폐도가 됐고 제천시는 명소화 사업에 관심을 기울였다. 2년전 반씨가 작고하자 ‘반야월 기념관’ 건립사업이 제안됐고 43억원을 들여 한국 가요사를 총정리한 기념관을 계획했다. 하지만 추진과정에서 사업비는 10억원으로 축소됐고 박달재 정상에 ‘반야월 선생 기념관’이란 명칭으로 짓기로 했다.

하지만 반씨는 지난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오른 대표적인 친일 인물이었다. 일제 당시 노랫말 속에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내용이 다수 포함됐기 때문이다. 결국 지역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반야월’ 명칭 반대 여론에 부딪치게 됐다. 반씨의 친일행적은 뚜렷한 것으로 평가된다. 일제 징병을 찬양한 <결전 태평양>(1942년) <일억 총진군>(1942년) <조국의 아들-지원병의 노래>(1942년) 등을 작사했다.

반씨는 생전인 지난 2010년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일제시대에 내가 만든 군국가요 등으로 많은 국민들이 잘못된 길로 내몰아졌다면 그분들에게 유감을 표한다”며 대국민 사과 입장을 밝혔다. 아울러 “당시 군사의 총칼 앞에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탄광으로 끌어간다고 했다. 예술가들이 양심적으로 일제에 협력한 경우는 없었고 마지못해 협력했다고 본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본명이 박창오인 반씨는 71년간 작사가와 가수로 활동하면서 한국 가요사상 가장 많은 7000여곡을 만든 1세대 대중예술인이다. 이같은 활동으로 정부로부터 화관문화훈장을 수여 받기도 했다. 2012년 사망직후 출생지인 창원시는 ‘산장의 여인’ 노래비 건립 및 공원조성사업을 시도했다. 하지만 ‘친일음악가 반야월 기념사업 반대 창원시민대책위원회’(대책위)가 결성돼 대대적인 반대운동이 벌어졌다.

   
▲ 2012년 9월 창원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친일음악가 반야월 기념사업 반대 창원시민대책위원회’를 결성해 ‘산장의 여인’ 노래비 건립을 중단시켰다.

대책위는 “독도영유권을 둘러싸고 일본과의 외교적 분쟁이 심화되고,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망언으로 전 국민적 분노가 거세게 일고 있는 시점에서 국민과 시민정서에 반하는 친일음악가 반야월의 작품인 ‘산장의 여인’ 노래비를 시민의 혈세로 조성하는 것에 대해 창원시와 박완수 시장의 역사관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결국 창원시는 재검토 의사를 밝힌뒤 사실상 사업을 취소했다.

그로부터 2년뒤 제천시가 ‘반야월 선생 기념관’ 건립을 추진한 것은 창원시 사례를 도외시 했거나 지역주민의 역사의식을 과소평가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도내에서 벌어진 문화예술인 친일논쟁 사례로 운보 김기창 화백을 꼽을 수 있다. 군국주의를 찬양한 그림을 그린 것이 문제가 됐고 아들이 언론을 통해 간접적인 사과표명을 했다. 하지만 현재 청원군 ‘운보의 집’은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져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친일잔재는 정치·경제·사회를 비롯해 문화·예술에도 많이 남아있다. 특히 문화·예술인들이 친일은 그들의 작품이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데다 친일은 했어도 뛰어난 재능으로 예술 발전에 공헌했다는 재능론이 겹치며 객관적인 평가를 어렵게 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조사한 ‘친일파 상훈 현황’을 보면, 현제명, 윤극영, 유치진, 김기창 등 친일행적이 뚜렷한 예술인 55명은 박정희 정권이 들어선 이듬해인 1962년 3.1문화상, 5.16민족상 등 각종 상을 124개나 휩쓴 것으로 나타난다.

더욱이 현제명과 홍난파는 분명 한국이 낳은 훌륭한 음악가이기는 하지만 그들의 친일행적이 속속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부 중학교 음악 교과서에서는 민족음악의 영웅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고등학교 교과서에서는 다시 친일파로 둔갑되는 아이러니가 연출되고 있다. 친일 문화예술인들의 모든 작품을 백안시할 수는 없지만 문제의 당사자를 선양하는 사업은 자라나는 세대의 역사관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높다.

한편 제천시는 반씨에 대한 친일논란이 확산되자 8일로 예정됐던 2주기 반야월 추모음악회 및 기공식을 모두 취소했다. 또한 시측은 기념관 명칭과 관련해서도 “한국 가요사에서 ‘울고넘는 박달재’ 노래가 갖는 비중과 박달재의 문화적 가치를 잘 드러낼 수 있는 명칭과 내용으로 변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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