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마음은 지배하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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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마음은 지배하지 못해
  • 충북인뉴스
  • 승인 2014.03.27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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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에게 많은 걸 시사하는 조지오웰의 <1984년>
   
손은성
충북대 대학원 사회학과 재학

2년전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특별한 일이 없을 때는 거의 대학원실에서 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근로 학생이 컴퓨터를 점검한다고 대학원실에 왔다. 학교에서 정기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무 생각없이 지켜보는데 어떤 단계에서인지 열어본 사이트 목록 등 내 작업내역이 모두 점검되고 있었다. ‘아!!! 학교에서 이 모든 것을 감시하고 있었구나.’ 왜 몰랐을까? 왜 의식하지 못했을까? 우리사회에서 당연한, 너무나 당연한 감시네트워크를.

책 <1984년>은 <동물농장>으로 잘 알려진 작가 조지오웰(George Orwell)의 1949년 작품이다. 조지오웰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35년 뒤의 전체주의 사회를 극화하고 있다. 이 소설은 <디스토피아(dystopia)>라고도 불리는 반유토피아 소설로 알려져 있다.

상상의 섬, 유토피아는 완벽한 사회·정치·법률 제도 속에서 인간이 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이상 사회로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비현실적이고 실현 불가능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유토피아가 인간이 꿈꿀 수 있는 최고의 이상향이라면, 반유토피아는 인간이 예견해 볼 수 있는 최악의 미래 상황이 된다.

철학자 강신주는 <감정수업>에서 이 소설 주인공들의 사랑을 대담함이라고 정의하면서 ‘사랑만큼 살아가는 힘과 기쁨을 증폭시키는 경험’은 없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 윈스턴은 자신이 선택한 사랑 때문에 압도적 국가권력, 빅브라더에 의해 파멸될 것을 예감하고 있지만 주인공들은 체제에 도전하는 대담함을 키운다. 그러나 이 소설은 비극으로 끝난다. 주인공 윈스턴과 줄리아는 끝내 빅브라더의 감시망에 걸리고, 두 사람의 사랑의 대가는 모진 고문과 권력에의 완전한 투항으로 끝을 맺게 된다.

   
▲ 제목: 1984년
지은이: 조지 오웰
옮긴이: 김병익
출판사: 문예출판사
이 소설은 물론 사랑에의 순수한 감정만을 그리고 있는 연애소설은 아니다. 소설의 줄거리는 억압적인 상황 속에서도 주인공 윈스턴이 국가권력으로 상징되는 빅브라더를 전복시키겠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벌이는 정치적인 투쟁과 좌절에 대한 것이다.

윈스턴은 전체주의 상황을 뼈저리게 인식하며 자유와 개인성이 살아 숨 쉬는 인간으로서의 삶의 희망과 체념을 보여주고 있다. 윈스턴을 통제하고 자유와 개인성을 말살하는 수단으로 등장하는 것이 텔레스크린과 마이크이다. 이것은 윈스턴을 둘러싼 모든 공간에 위치하고 있으며 언제 어디서 감시 당하는 줄도 모르는 채, 단 한 줄의 일기도 쓸 수 없을 정도의 통제를 받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고도의 기술이라는 자본주의와 교묘하게 맞닿아 있다.

최악의 상황이 현실로 나타나

<1984년>은 조지오웰이 38년 뒤의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며 쓴 소설이다. 독자라면 누구나 이런 세계를 바라지도 않을 것이며, 닥쳐 올 거라고 믿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은 이미 우리를 통제하며 자유와 행복을 위협하고 있다. 정보통신의 발전으로 우리들의 사생활은 점점 좁아져만 간다.

최근의 국가권력의 무차별적 민간인 사찰, 대규모 은행거래 개인정보유출 및 도용 사건으로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의 삶의 모습은 어항 속의 금붕어, 전시되어 있는 마네킹, 팔릴 때만 기다리는 봉제인형처럼 훤히 노출되어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나의 일상의 감시를 한번 보자. 누구라도 나의 동선을 파악하기란 이젠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우선 내가 사는 아파트의 CCTV로 집에서 나오는 시간을 파악하고 학교까지 걸어오는 동안에 수 많은 CCTV가 나의 동선을 촬영하고 있을 것이다. 학교로 진입하면 여기부터는 일분일초도 나의 동선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정교한 감시망에 놓이게 된다. 또 어떤 자료에 접근하는지를 파악하게 된다면 나의 사고와 생각도 감시당하는 것이 분명하다.

3월 24일 한 포털사이트의 기사에는 ‘손 안의 파놉티콘 모바일 메신저’를 소개하고 있다. 스마트폰의 사용 확대로 회사 업무용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메신저를 사용하다 보니 휴일에도 업무관련 대화가 스마트폰으로 이루어지고, 새벽에도 출장보고를 메신저로 받는 등 회사업무 시간의 경계가 없어졌다.

정보통신의 발전은 우리를 감시 뿐만 아니라, 직장과 가정,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심지어 이러한 업무전달과 공유 방식으로 ‘스마트폰을 안 쓸 자유’도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은 조지오웰이 자본주의와 과학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미래의 어느 시대, 어느 국가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한 반유토피아적 세계이다. 이 세계는 인간의 연대와 유대를 끊어야지만 유지될 수 있다. 그래서 사랑, 자유, 사고를 통제하고 억압한다.

그러나 여기의 또 다른 주인공 줄리아를 통해 거대한 파놉티콘 안에 갇혀 살면서도 ‘인간’이라는 희망을 시사하고 있다. 줄리아는 단호하게 말한다. “그들(빅브라더)이 할 수 없는 한 가지는 당신의 속마음을 지배하는 것이지. 만약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게 가치 있는 일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면, 비록 대단한 성과를 얻지는 못하더라도 그들을 패배시키는 셈이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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