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위헌결정 ‘인터넷실명제’ 지방선거에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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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위헌결정 ‘인터넷실명제’ 지방선거에 적용(?)
  • 권혁상 기자
  • 승인 2014.05.15 1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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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공직선거법상 인터넷실명제 폐지법안 처리 지연시켜 대선 이어 악법 적용
   
▲ 선관위가 언론사에 보낸 “자신들의 법개정 요청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외면해 어쩔 수 없다”는 하소연의 공문.
최근 청주시 상당구선거관리위원회는 본사에 인터넷실명제 시행안내 공문을 보내왔다. 공직선거법상 선거운동기간에는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토록 한 규정을 근거로 한 것이었다.

공직선거법 제82조의6(인터넷언론사 게시판·대화방 등의 실명확인)은 ‘인터넷언론사는 선거운동기간 인터넷홈페이지의 게시판·대화방 등에 정당·후보자에 대한 지지·반대의 문자·음성·화상 또는 동영상 등의 정보를 게시할 수 있도록 하는 경우에는 실명인증방법으로 실명을 확인받도록 하는 기술적 조치를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특정 정당, 후보자에 대한 근거없는 비방, 명예훼손 등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지난 2008년 제정된 조항이다. 하지만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 헌법상 권리를 침해한다는 반대여론이 만만치 않았다.

결국 헌법재판소는 2012년 8월 정보통신망법상의 ‘인터넷실명제(제한적 본인확인제)’에 대한 위헌결정을 내렸다. 인터넷 실명제가 국민의 표현의 자유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따라서 이 판단은 공직선거법상 인터넷 실명제에도 적용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공직선거법 인터넷 본인확인제(인터넷실명제) 폐지 법안 처리를 지연시키면서 6월 지방선거에서도 실명제를 강요받게 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상당구 선관위는 공문에서 “주지하는 바와 같이…헌법재판소 위헌 결정 이후 우리 위원회는 공직선거법상 실명확인제 폐지 의견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지방선거를 앞둔 현재까지 개정없이 존속하고 있는 바, 법집행기관인 우리 위원회로서는 법이 존재하는 한 해당 내용을 집행할 수밖에 없음을 널리 혜량하여 주시기 바라오…”라고 협조를 당부했다.

쉽게 말해 ‘위헌 심판을 받은 내용으로 법집행하기가 곤란하지만, 국회에서 제때 처리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악역을 하게 됐다’는 하소연인 셈이다. 국회에서는 위헌 결정 한달만인 2012년 9월 당시 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폐지법안을 대표발의했다. 하지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연말 대선때까지 법안을 심의조차 하지 않아 여야 국회의원 모두 직무유기로 비판받았다. 또한 지난해 안행위 소속 일부 국회의원들이 “선거 시기가 되면 지역신문 인터넷 대화방에서 악성 글들이 올라온다” 법안처리를 반대하기도 했다. 결국 6.4 지방선거까지 위헌 판결받은 인터넷실명제 족좨를 찬채 치르게 됐다.

최근엔 세월호 참사 이후 일부 네티즌들의 악플이 문제가 되면서 ‘인터넷 실명제’ 필요성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방송통신위원회가 다음, 머니투데이, 디시인사이드의 게시판 댓글을 수집·분석한 ‘2008년도 본인확인제 효과분석 보고서’는 다른 결론을 도출했다. 2007년 8월 전체 댓글 1만3472개 중 악성댓글이 13.9%를 차지했는데 이듬해인 2008년 8월에도 전체 댓글 8380개 중 13%가 악성댓글이었다. 이 1년 사이 본인확인제(인터넷실명제)가 시행됐지만 악성댓글 감소효과는 미미했던 것이다.

오히려 인터넷실명제 시행으로 위축된 것은 악플이 아닌 인터넷 게시판이었다. 2007년 8월 1만3472개에서 2008년 8월 8380개로 급감한 댓글 수가 이를 방증한다. 본인 확인절차를 거쳐야만 인터넷 게시판을 이용할 수 있는 환경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이 증명된 것이다.

결국 인터넷의 역기능인 악성댓글 차단용으로 도입한 제도가 필수 기능인 참여와 표현 의지까지 침해한다는 게 분명해진 셈이다. 말그대로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최근 2년간 포털사이트, 금융사 등을 통해 3천만건에 이르는 개인정보 유출사고가 벌어졌다. 결국 법이 (인터넷 이용자의) 신상정보 축적을 강제하면서 벌어진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진보네트워크센터측은“헌재는 인터넷실명제가 실효성은 없으면서 개인정보가 유출될 위험에 놓이게 하고 모든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와 같이 취급한다는 등의 문제를 지적했다. 더구나 거의 모든 국민의 주민등록번호가 유출된 상황에서 본인확인제를 통해 가해자를 특정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후보자에 대한 악성댓글을 ‘인터넷실명제’로 막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악성 댓글을 막기 위해서는 ‘제5의 권력’으로 커진 포털이 책임감을 갖고 피해예방을 위한 장치를 정교화하는 데 적극 투자해야 한다. 성동규 교수(중앙대 신문방송학과)는 “3년전이나 지금이나 포털의 악플 대응전략은 크게 진보한 것이 없다”며 “내부 직원들을 중심으로 댓글을 스크린하고 위원회를 구성해 모니터링하는 기존 시스템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네티즌과 시민 등 외부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한 감시시스템을 만들고 이를 상시 운용할 필요가 있다”며 “결국 문제는 돈이다. 거액의 수익을 내는 포털이 이 부분에 좀 더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헌재가 위헌결정하고 선관위도 법개정을 요청한 공직선거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국회가 처리하지 못하고 대통령 선거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치르는 현실, 대한민국의 후진성은 아래로 부터가 아닌 위로 부터가 심각하다는 현실을 반증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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