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풍요롭게 해주는 보물, 심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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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풍요롭게 해주는 보물, 심미안
  • 충북인뉴스
  • 승인 2014.06.12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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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곡 최순우 선생 전집에서 고른 글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
   
오미경 동화작가

몇 년 전 봄비가 아침부터 촉촉이 내리던 날, 간송 미술관에 갔다가 돌아오던 길에 들른 한옥 한 채는 내 기억 속에 한 폭의 그림처럼 오롯이 남아 있다. 트인 미음자 형의 아담한 한옥은 그 규모며 치장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딱 마침맞은 정취를 뿜어내고 있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책 한 권으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 앞에 서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그 아름다움에 새삼 눈뜨게 했던 혜곡, 최순우가 살던 집. ‘내셔널 트러스트’에서 구입해 관리하고 있는 그 집은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심미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살던 집답게 소란스럽지 않으면서도 꽤 안목 있게 꾸며져 있었다.

뒤뜰에 친구들끼리 담소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둥그런 탁자랑 돌로 된 몇 개의 의자,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듯 없는 듯 놓인 백자는 지금까지도 내게 깊숙이 박혀 있다. 나중에 집을 짓는다면 나도 마당 한 켠에 꼭 그렇게 꾸며 놓고 싶단 생각과 함께. 혜곡의 집을 보면서 아름다움을 볼 줄 알고 느낄 줄 아는 사람이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기도 하는구나 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아름다운 보석이 있어도 볼 줄 알아야

   
▲ 제목: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
지은이: 최순우
출판사: 학고재
책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는 <혜곡 최순우 전집>에서 고른 글들을 모아 엮은 것이다. 아름다움을 가려내는 눈, 아름다운 인연, 아름다운 그림, 그림 속의 아름다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보물처럼 담겨 있다.

살아가는 데 있어 심미안은 얼마나 중요한가! ‘눈이 보배’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귀하고 아름다운 보석이 널려 있다 한들 그를 볼 줄 아는 눈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세상에 가득 차 있는 아름다움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안목에 따라 가늠할 수 있는 깊이가 다르다.

아름다움에 대한 안목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다. 좋은 책을 읽고, 좋은 그림을 보고,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 유적지를 돌아보며 자연스럽게 싹 트는 게 심미안이다.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접하다 보면 추한 것을 가려내는 안목 또한 생겨날 것이다.

최순우도 책 속에서 얘기하고 있듯이, 남다른 심미안을 가지게 되면 남의 눈에 안 보이는 추한 것을 느껴야만 되는 괴로움 또한 뒤따르게 된다. 왜 안 그렇겠는가? 어울리지 않는 색의 배합, 어수선한 공간 배치, 조화롭지 못하게 섞인 조합들……, 설령 그런 것들이 간혹 눈살을 찌푸리게 하더라도 세상에 널려 있는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그것을 깊이 느낄 수 있는 눈을 갖는다면 인생이 얼마나 풍요롭고 행복해지겠는가.

중국의 자금성을 가본 사람은 느끼겠지만, 우리나라 경복궁은 그에 비하면 너무도 작고 소박하다. 그렇지만 경복궁이 가지고 있는 아담하고 고아한 멋이 있다. 중국의 도자기는 크고 화려하지만 우리나라 백자는 또 얼마나 무심하고 넉넉한 아름다움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가.

최순우의 눈길을 빼앗는 것들도 참 소박한 것들이다. 달그림자 노니는 영창, 추녀 끝의 소 방울, 먼 산 바라보는 굴뚝, 서리 찬 밤의 화로……. 그가 사랑한 사람들은 예술가이거나 예술에 대해 조예가 깊은, 진정한 멋쟁이들이었다.

혜곡 선생이 아낀 사람들

김환기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는 ‘멋이 죽었구나, 멋쟁이가 갔구나’ 라며 탄식했고, 전쟁 때 만나 12년 동안 서로 도타운 정을 나누며 ‘삶과 예술’에 대해 온전히 ‘공감’했던 간송 전형필이 작고했을 땐 ‘나는 나를 알아주는 가장 귀한 분을 잃었다’며 공감의 반려를 잃은 것을 슬퍼했다. 그는 또한 간절하고도 맑은 시심으로 오로지 예술만을 위해서 한눈팔지 않고 외로운 길을 심신을 불사르듯 살아간 화가 장욱진을 사랑했다.

마음속에 아름다운 추억이 하나라도 남아 있는 사람은 악에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인간관계에서의 추억은 물론이거니와 아름다운 자연이나 예술품과의 교감에서 생겨나는 추억 또한 우리를 얼마나 선하게 하고, 정신을 고양시키고, 행복하게 하는가! 평생 아름다움을 찾고 키우고 퍼뜨린 사람의 ‘안목’을 통해 우리 것의 아름다움에 눈뜰 수 있다는 건 퍽 고맙고도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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