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집 주인이 말하는 썩을 놈의 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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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집 주인이 말하는 썩을 놈의 돈 이야기
  • 충북인뉴스
  • 승인 2014.10.02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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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 이타루의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이종수
청주 흥덕문화의 집 관장

그동안 가장으로 꾸려온 가계를 헤아려 보니 신용회복위원회에 몇 번이나 불려갔어야 할 지질한 삶을 살았다 싶다. 도서관 한다고 번 돈 책 사는 데 다 쓰고, 쥐꼬리만한 돈을 가져다 주는 가장으로서 호기는 얼마나 부렸던지. 당당히 詩에도 에누리 없이 줄 거 다 주고 사자거나 그 지역에 가면 돈을 쓰고 오자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으니 내가 날 봐도 짠하고 식구들에게 미안하다.

늘 그런 마음으로 산다. 그렇다고 불편한 것만은 아니다. 오래 전 詩 원고료로 4kg짜리 햅쌀을 받았을 때 식구들에게 자본주의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질량보존의 법칙 비슷한 따뜻한 시선을 안주머니에 넣어두고 꺼내먹는 맛이란! 예술가 동지들, 문학가 동지들이나 공감할 이야기지만 또 이렇게 지질하게 털어놓고 만다.

아무튼 잔잔한 음악을 깔아놓고 오늘은 썩을놈의 돈 이야기를 하고 싶다. 천연균과 마르크스에서 찾은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를 담았다는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에서 아주 재미있는 발상의 전환을 보았기 때문이다. ‘부패와 순환이 일어나지 않는 돈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낳았다’고 주장하는 일본 오카야마현 마니와 시 가쓰야마 다루마리 빵집 주인 이야기다. 혁명은 변두리에서 시작된다는 프롤로그로 시작하는 이 책에서 빵집 주인인 와타나베 이타루는 천연균으로 발효시킨 빵을 만드는 외곬수다.

   
▲ 제목: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지은이: 와타나베 이타루
옮긴이: 정문주
출판사: 더숲
이 빵집의 경영이념은 이윤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 먹고 살아야 한다는 이념에 매여 나라까지 말아먹는 이 시대에 이윤을 남기지 않는 장사가 어디 있을까 싶지만 이타루는 천연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이윤을 남기지 않고 경제도 썩어야만 제대로 돌아간다는 희한한 논리를 펴고 있다.

‘썩는다’,‘부패한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라는 것이다. 태어나서 끝내는 죽는 삶이니 잘 죽기 위해서 철학을 해야 한다는 말과 같다. 돈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가 절대 부패하지 않고 확대재생산을 무한반복하고 있으니 사람들의 삶이 먼저 무너지는 악순환이 거듭 된다는 것인데 이는 철저히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시킨 시골 변두리의 혁명인 것이다.

제대로 만들어 정당한 가격을 받는다

이타루는 친환경이니 뭐니 해가며 동네 빵집을 넘겨뜨리던 빵집에서 기술을 배우면서 이윤 추구로 자본가만 배불리는 가혹한 노동의 현실을 맞본다. 천연균을 얻기 위해 과감히 자본의 이윤 구조를 벗어나 시골 고택으로 이사한 후 천연균 하나 하나를 맛보고 빵을 살리면서 사회를 발효시키는 소상인들의 유대를 통해 기술과 정신을 물려주는 빵을 만들게 된다. 거꾸로 말하면 제대로 만들어 정당한 가격을 받고 팔자는 단순한 논리에서 시작하는 것인데 불편을 감수하고 해야 일이 많다.

그러려면 이타루처럼 사람들이 길 들인 이스트로 만든 생명 없는 빵을 먹을 것이 아니라 천연균이 하는 방식으로 자리 잡고 발효하여 결국 균과 작물의 생명이 조화롭게 공존하며 만들어내는 지구와 먹을거리 전체로 이어지는 생명철학의 문제와 맞닿는다.

돈을 쓰는 방식이 사회를 만든다는 말처럼 자본주의는 곪은 데를 그대로 두고 돈이라는 썩지 않는 비인간적인 경제로 연명되어서는 안된다. 효율을 넘어 올바르지 않은 방식으로 배를 불려온 기업들이 도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는 것이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들은 어찌 어찌 돼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허투루 지껄이는 것이 되지 않으려면 돈이면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작아도 진정한 자기 일’에서 시작하는 조용한 혁명이 필요함을 이야기하는 이타루가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는 까닭이다.

날마다 쓰는 돈이 현실을 움직이고 미래를 선택하는 투표권이라고 이타루는 강조한다. 선거 때만 애국하고 진보하는 투표권이 아니라 함께 잘 살아갈 환경을 만들고 건강한 순환구조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고. 돈이 썩어서 흙으로 돌아가지 않고 투자라는 명목으로 이윤과 고리대금을 통해 악순환을 만들어내는 현실을 냉철하게 들여다보면 보일 것이다. 즐거운 불편을 받아들여야만 가능한 일이다. 진정 대안을 실천하지 않는 삶은 굴욕의 연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 땅에서 이타루처럼 자본론을 굽는 빵집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 빵을 먹고 싶다. 돈 모아 멀리 오카야마현에 있는 다루마리 빵집에도 가서 호밀빵과 흑빵으로 부풀어오른 진정한 발효와 부패의 힘을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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