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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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에 대하여
  • 충북인뉴스
  • 승인 2014.10.30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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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사랑을 일깨워주는 팀 윈튼의 환경동화 <블루백>
   
이종수
청주 흥덕문화의집 관장

“아벨과 어머니는 다시 물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그 물고기를 보았다. 그곳에서 어슬렁거리던 물고기는 두 사람이 다가가자 몸을 틀어 조심스럽게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 물고기는 근육을 약간 실룩거리면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앞으로 조금 다가왔다.

커다란 아가미가 부채 모양으로 펼쳐졌다. 갑옷을 두른 듯한 비늘이 잔물결을 일으키고 있었는데, 초록색과 까만색 비늘 띠들이 나란히 뻗어나가면서 황홀한 푸른색으로 한데 어우러지고 있었다. 그루퍼는 전혀 힘들이지 않고 움직였다. 그 물고기는 굉장히 멋졌으며, 아벨이 지금까지 본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책 <블루백>은 아이들과 문학 교실을 할 때 자주 권하고 함께 읽던 책이다. 우리가 흔히 고독을 즐기러 가는 바다(바다가 아니라 바닷가일 뿐이지만)를 터전으로 사는 아벨과 도라 잭슨 모자의 이야기다. 앞선 대목은 아벨이 바다 속에 들어가 블루백이란 신비로운 고기를 만나는 장면이다. 소설의 재미가 그렇듯이 눈으로 보이지 않고, 직접 겪어보지 못한 상상의 몫을 진짜인 듯 헤엄치는 것이듯 검푸른 바닷물 속에서 만난 블루백은 외경스럽기까지 하다.

“두껍지만 이거(갈피끈) 넘겨가면서 읽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그때 문학교실을 함께했던 아이들의 반응은 천차만별이었지만 몇 번이나 망설이고 게으름 피우다가 빠져든 두껍고 난해한 공간 속의 재미가 있다고나 할까. 그래서 지금도 권하는 책이다.

   
▲ 제목: 블루백
지은이: 팀 윈튼
옮긴이: 이동옥
출판사: 눌와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 말하는 법>이란 책도 있듯이 작가가 펼쳐놓은 이야기 논의 알곡들을 소중하게 줍는 것 또한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자신의 이야기도 그에 못지않게 재미있고 진진하다는 것을 알텐데, 하며 자꾸 숲과 바다의 긴밀한 공간 속으로 밀어 넣었던 기억.

“아벨과 어머니는 이 바다와 이 땅에서 살아왔다. 잭슨네 집안은 백 년이 넘는 동안 여기서 이렇게 살아온 것이다. 롱보트 만의 땅은 고래잡이를 하던 시절 이래로 그들의 것이었고, 주위의 땅은 모두 국립공원이었다. 과수원 너머 관목지와 숲이 시작되는 곳에는 자그마한 가족 공동묘지가 있었다. (줄임) 아벨과 어머니는 그들 나름대로 고기를 잡고 과일과 야채를 가꿨다. 오리와 닭을 쳐서 고기와 알을 마련했고, 염소 한두 마리를 키우면서 그 젖으로 우유를 대신했다. 롱보트 만으로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빗물 말고는 물이라곤 없었으며, 텔레비전도 없었다. 그들처럼 사는 것은 때때로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었지만, 아벨은 그와 다른 방식의 삶을 전혀 몰랐다. 아벨은 날마다 국립공원 숲 속을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바다에서 헤엄쳤다. 가끔 외롭기도 했지만 어머니와 함께 있는 것이 좋았다.”

끝내 바다를 지켜내는 아벨

모자가 살고 있는 곳은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고 있는 터전과 다름없다. 개발이라는 허울좋은 미끼로 낚여서 길이 뚫리고 유원지가 되어가서는 안 되는 곳이다. 갯벌을 끼고 조개와 낙지를 잡고 살던 시화호 사람들이 겪었던 환란처럼 본 얼굴로 지켜내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곳.

“하루 종일 아벨은 블루백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그 물고기는 얼마나 나이를 먹었길래 그렇게 클까? 내가 여태껏 보아왔던 것들을 몽땅 떠올려볼까? 그 동안 나를 스쳐 지나간 모든 물고기와 동물들, 보트들, 사람들, 로버스헤드 곶 언저리에서 보낸 시간들. 어쩌면 바닷속 암초도 그 정도 시간이라면 변할 텐데. 카리 나무를 베면 둥치의 나이테로 나무의 나이를 알 수 있다는 사실을 아벨은 알고 있었다.

나이테를 보면 계절의 변화도 구분해낼 수 있고, 그 곳에 새겨진 가뭄과 풍년의 흔적까지도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화를 한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주고받고 그것들을 기억한다. 하지만 물고기는 달랐다. 물고기의 모든 세월은 비밀이었고, 신비였다. 아벨은 물고기가 기억을 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물고기 한 마리가 죽으면 그 물고기 한 마리의 모든 세월이 사라져 버리는 것일까?”

아벨은 개발론자들과의 싸움 끝에 바다를 지켜낸다. 해양학자로 전세계 바다를 돌며 바다를 구하는 방법을 찾았다지만 단 한 곳도 지켜내지 못한 자책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지막 대목,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바닷물에 씻기는 의식을 치르면서 어머니의 바다에서 다시 삶을 시작하는 부분에서는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벨과 도라 잭슨의 삶에서 묻어나는 문장의 힘도 우리가 눈으로 보지 못하는 곳에서 피어오르는 모든 생명체들의 아름다움에 연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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