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지들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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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지들의 마음
  • 충북인뉴스
  • 승인 2004.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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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국 신부 (천주교 청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총무)
   

 이 땅에 하늘이 열린 이래 우리 민족이 간직했던 정신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이다. 널리 인간을 복되게 하자는 게 우리의 오랜 마음이었다. 착하기만 했던 겨레의 마음에 큰 영향을 끼친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식민지 체험이고, 둘째는 분단 그리고 6.25 전쟁체험이다. 이 두 가지 고통스런 체험은 교육이라는 공적인 장치를 통해 국민들의 마음을 깊게 넓게 망가뜨렸다. 나의 아버지는 식민지 교육을 받으셨고 나는 분단 교육을 받았다. 아버지는 황국신민서사를 외우며 자랐고 아들은 국기에 대한 맹세를 반복하며 컸다.

 일제 식민지교육의 목표는 서로 무시하는 마음을 조선인들에게 키워 식민통치를 용이하게 하는 것이었다. 일제의 교사들은 조선 사람들을 열등감에 빠뜨리고 서로 무시하는 마음을 갖도록 만들었다. 어릴 적 나는 학교에서 “조선 놈은 안돼!”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일본사람들이야 쫓겨나고 없지만 식민교육의 혼만큼은 살아남아서 겨레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었던 것이다.

 또 전쟁 후 분단교육의 목표는 남쪽이나 북쪽이나 똑 같았다. 유신체제의 박정희나 유일신체제의 김일성이나 국민들 마음속에 형제에 대한 증오심을 배양시켜 자신들의 독재통치를 쉽게 만드는 것이었다. 학교는 어린이와 학생들에게 제 형제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마음을 장려하였다. 우리가 어린 시절 노래 부르던 ‘무찌르자’느니 ‘쳐부수자’느니 하는 험한 말들이 다 잔인무도의 오랑캐들에게 한 말이 아니고 혈육을 향해서 한 말이었다. 험한 시절이었고 무서운 교육이었다.

 일본인들이 뿌리고 간 식민교육의 씨앗은 분단의 교실에서 그 열매를 맺었다고 하겠다. 서로 무시하도록 가르치는 교육과 서로 원망하고 미워하도록 가르치는 교육이 본래 하얀 옷 입기를 즐겨하던 한겨레의 착하고 착한 품성을 아주 못되게 망가뜨렸다.

 그러나 이백여년 전 우리나라를 찾아 온 천주교 선교사들이 한결같이 했던 말이 있다. “한국 사람은 날 때부터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의 뜻을 전하러 왔으나 이미 한국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었다고 할 만큼 착한 심성을 갖고 있더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 마음이 우리에게 남아 있는가? 지난 세월 식민지 36년, 분단 59년 어언 백년의 모진 세월을 겪으면서 그 따뜻하고 겸손한 마음이 얼마나 남아있는가?

 최근 이라크 추가 파병과 신행정수도 건설계획에 대하여 엇갈리는 여론에서 불행한 체험들이 빚어낸 거친 마음을 본다.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미국 스스로 추악하고 부당한 전쟁임을 고백했는데도 파병이 가져다 줄 떡은 과연 크다 하며 남의 불행에 기대어 이득을 탐하는 소인배 주제에 동맹국의 의리와 국익을 찬양 고무하는 신문지들의 마음은 어느 교실에서 생겼을까?
 
  행정수도 이전하면 나라 망한다고 설레발치며 벌떼의 우국충정으로 징징 울어대는 신문지들은 어려서 어떤 이야기가 담긴 책으로 공부한 마음들일까? 차라리 내 밥그릇 무너진다고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저 수줍음을 어떤 말로 다스려 부끄럽게 할까? 화내지 않고 바보들을 야단치는 방법은 없을까? 어떻게 해야 착했던 그 마음 되찾아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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