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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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 충북인뉴스
  • 승인 2015.02.12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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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연희 설치미술가

   
▲ 감연희 설치미술가
“아버지, 우리의 결혼을 허락해 주세요.” “안 된다. 걔는 네 동생이야.” 그 말을 들은 엄마가 옆에서 한마디 거든다. “괜찮다. 아들아. 결혼해라. 넌 네 아빠의 아들이 아니란다.” 이렇게 꼬여 있는 출생의 비밀, 끝이 없는 불륜, 얽히고설킨 극중 인물의 관계, 비윤리적인 등장인물들과 그 속에서 일어나는 비정상적인 갈등… 차마 공중파에서 방송되는 장면이라 믿겨지지 않는 내용의 화면들이 시청자들의 얼굴을 찌푸리게 만든다. 우리사회에 언제부턴가 막장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드라마가 양산되기 시작했다.

오전 시간대에 주부들을 대상으로 한 일명 솝 오페라(비누제조회사가 스폰서를 많이 해서 붙여진 별칭)에서 시작된, 도를 넘는 불륜과 악행으로 뒤범벅된 막장 드라마는 이제 거의 모든 드라마의 생존 공식처럼 되어 버렸다.

막장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캐릭터가 과장되어 있다. 나빠도 그냥 나쁜 정도로는 시선을 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의 탈을 쓴 악마처럼 악랄해야 하고, 착한 역을 맡은 인물도 그냥 착해서는 안 되고 미련할 정도로 착해서 지켜보는 시청자의 속이 타 들어갈 정도가 되어야 한다. 특이한 현상은 과거에는 악역을 맡은 배우는 이미지가 나빠지고 인기도 추락한다고 해서 기피대상이었는데, 요즘은 선한 역할의 주인공보다 더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시청자가 드라마와 현실을 구분 짓기 시작하고 연기를 연기 자체로 감상하기 시작했다는 좋은 신호로 볼 수도 있지만, 선과 악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세상의 풍토가 한몫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막장 드라마를 무조건 비하하고 막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류의 드라마를 좋아하는 시청자들이 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시청률만 안 나오면 막장드라마가 설 자리가 없는 건 분명하다. 문제는 시청자들이 막장이라고 욕하면서도 결국 본다는 거다.

인기가 있으니 스타 작가가 되고, 그 스타 작가가 극단적인 설정의 드마라를 계속 써내는 악순환이 계속 된다는 것. 막장드라마의 인기는 과연 어떤 관점에서 봐야 할까. 사실 드라마는 직접적으로 세상에 대해 어떤 주장을 펴지는 않는다.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메시지를 전달하게 되는데 이러한 전달 방법이 너무나 교묘하고 자연스러워 시청자들이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사람들의 태도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TV를 통한 학습효과는 이미 오래 전에 확인된 바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막장드라마의 인기몰이로 인한 사회적인 부작용에 대해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드라마에서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면서도 방송 심의를 통해 적절한 견제를 하는 이유는 표현의 자유가 대중의 정서에 반하거나 공공의 이익에 악영향을 줄 경우 이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다. 지난해 대표적인 막장 드라마에서 국민 악녀라는 호칭을 얻은 이유리 씨가 연말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은 것은 큰 변화이면서 동시에 우리 사회가 마주하게 된 작은 도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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