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묘(省墓)’ 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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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묘(省墓)’ 고은
  • 충북인뉴스
  • 승인 2015.02.26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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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장무 글·이은정 그림>

아버지, 아직 남북통일이 되지 않았습니다.
일제 강점기 소금장수로
이 땅을 떠도신 아버지.
아무리 아버지의 두만강 압록강을 생각해도
눈 안에 선지가 생길 따름입니다.
아버지의 젊은 시절
두만강의 회령 수양버들을 보셨지요.
국경 수비대의 칼날에 비친
저문 압록강의 붉은 물빛을 보셨지요.
그리고 아버지는
모든 남북의 마을을 다니시면서
하얀 소금을 한 되씩 팔았습니다.
때로는 서도(西道) 노래도 흥얼거리고
꽃피는 남쪽에서는 남쪽이라
밀양 아리랑도 흥얼거리셨지요.
한마디로, 세월은 흘러서
멈추지 않는 물인지라
젊은 아버지의 추억은
이 땅에 남지도 않고
아버지는 하얀 소금이 떨어져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 남북통일이 되면
또다시 이 땅에 태어나서
남북을 떠도는 청정한 소금장수가 되십시오.
“소금이여”, “소금이여”
그 소리, 멀어져 가는 그 소리를 듣게 하십시오.

‘성묘(省墓)’ 고은. 시집 ‘문의 마을에 가서’ (1974)

   
 

설 명절, 차례 올리고 성묘는 잘 다녀오셨는지요. 잔설 히끗히끗한 앞산, 양지 바른 산소 앞에 빙 둘러서서, 옛날처럼 성묘하는 모습을 보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명절이면 일가친척 모두 모여 그렇게나 흥성스럽던 축제 분위기도 사라진 지 오래고요. 이제는 잃어버린, 참 좋은 우리의 미풍양속입니다.

고은 선생은 남북의 마을을 떠돌며 소금을 팔던 아버지의 묘 앞에서 통한의 ‘성묘’를 올립니다. “아버지 아직 남북통일이 되지 않았습니다.” 찬 술 한 잔 부어 놓고 조국의 현실 앞에 목이 메입니다. 우리의 남과 북이 하마 오랜 세월 어찌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요. 둥굴둘굴하니 착한 얼굴을 한, 넉넉한 가슴으로 동포와 이웃을 사랑하던, 우리의 천성대로 살아갈 수는 없는가요.

아버지가 모든 남북강산을 다니며 팔던 ‘소금’은 영원히 썩지 않는 민족의 정신, 계례의 청정한 영혼이지요. 그것은 아버지의 식민시대를 살아가게 했던 힘이며, 지금 세대가 처한 분단의 시련을 극복하는 정신의 표상입니다. 소금은 그 자신도 부패하지 않을뿐더러 다른 것이 썩지 않도록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소금이 떨어져서 돌아가셨지만, 우리는 아버지들이 남긴 ‘소금’의 힘으로 기필코 ‘통일’의 대역사를 이루어내야 합니다.

수상한 세월은 어느덧 길게 흘러 다른 사람들도 안쓰러워하는 70년 이산의 땅이 되었습니다. 우리 경제가 장기침체로 접어들지 않고 다시 한 번 크게 도약할 수 있는 길은 통일밖에 없다고 하지요. 북쪽의 뛰어난 노동력과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통과하는 저렴한 물류비용의 결과랍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서둘러야 합니다. 우리 한반도만한 크기의 땅을 가진 영국이 한 세기를 넘게 세계를 호령했는데, 우리라고 그렇게 번성하지 말란 법도 없지요.

서울 출신 지아비와 평양댁 지어미가 이마를 마주하고 따뜻한 밥 한술 떠먹이는, 처마 밑의 저녁 불빛이 그리움으로 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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