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 상권과 또다른 금속활자 인쇄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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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 상권과 또다른 금속활자 인쇄본이 있다?
  • 권혁상 기자
  • 승인 2015.03.11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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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도굴 1인자 서상복씨 2007년부터 주장, 검찰·국가정보원 나서기도
▲ 2007년 수감중이던 서상복씨가 한국일보 강철원기자에게 보낸 서신<한국일보 사진 인용>

지난 2월 직지보다 제작연도가 앞선 금속활자를 대학 연구팀에서 입증했다는 보도가 나와 충북도가 들썩했다. 직지의 고장 청주의 브랜드 가치를 위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북대 산학협력단은 ‘증도가자(證道歌字)’를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라고 발표했다. 증도가자 활자에 묻은 먹이 1033~1155년의 것이라는 탄소연대 측정결과를 근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인쇄본이 없는 상태에서 진위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문화재청은 직접 조사과정을 거쳐 증도가자에 대한 문화재 지정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경북대 연구팀의 좌장인 남권희 교수(문헌정보학과)는 지난 2010년 증도가자의 실물을 첫 공개해 학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려 금속활자 진위여부에 대한 학계의 논란이 계속되자 문화재청은 4년만인 2014년 경북대 산학협력단에 연구용역을 맡겼던 것. 1차 판정은 받았으나 최종적으로 문화재청의 직접 조사를 거쳐 역사적인 '발견'인 지 '사기극'인 지 판명될 것이다.

직지 2권 도굴 사찰 2곳 공개

흥미로운 점은 2010년 남 교수의 공개보다 3년 앞서 직지보다 앞선 금속활자 인쇄본을 발견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는 사실이다. 국내 문화재 도굴의 ‘큰손’으로 알려진 서상복씨(?)가 교도소 수감중 신문기자에게 서신을 보내 주장한 것. 2007년 6월 대구교도소에 수감중이던 서씨는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1998~2000년 직지 상권 2권을 서울 봉원사와 경북 안동 광흥사에서, 직지보다 50년 앞선 불경은 경주 기림사에서 도굴했다”며 그 출처지 3곳을 처음 공개했다. 현재 프랑스에 남아있는 직지 하권이 아닌 상권 2권과 그보다 앞선 불경까지 발견했다는 놀라운 주장이었다.

실제로 서씨는 2001년 검찰 조사 때부터 직지와 불경을 도굴했다고 진술했고 문화재 전문가들은 촉각을 곧두세웠다. 일단 서씨가 출처지로 밝힌 3개 사찰은 절도 피해 사실을 인정했다. 다만 복장유물(불상 등의 내부에 안치한 유물)의 경우 열어보지 않기 때문에 무엇을 도둑맞았는 지 파악할 수 없었다. 서씨는 직지 상권에 대해 “하나는 파손되지 않은 완질본으로 99년 6~8월 서울 서대문구 봉원사(奉元寺)에서 훔쳤고 다른 하나는 일부가 파손된 직지로 2000년 3,4월께 경북 안동시 광흥사(廣興寺)에서 도굴했다”고 말했다.

서씨는 직지보다 앞선 불경을 1999년 1월께 경북 경주시 기림사(祇林寺)에서 꺼내왔다고 말했다. 책의 발행 연대를 알리는 ‘간기’가 적혀 있어 직지보다 50년 앞섰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국일보 기사에 따르면 서씨는 훔친 물건이 직지가 맞는지에 대해 “금속활자본인지, 간기가 언제인지 수 차례 확인했고 다른 전문가들도 인정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처분 과정 등 행방에 대해선 “불경은 팔았으며 파손된 직지는 중국에, 나머지는 국내에 있을 것”이라고 애매하게 답변했다. 누가 직지와 불경을 소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주장이었다.

이에대해 당시 강신태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장은 “서씨의 도움을 받기 위해 여러 차례 면담한 적이 있는데 주장의 신빙성이 매우 높다. 상식적으로 인쇄를 한 번만 했을 리는 없고 최소 100번은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추정했다. 그렇다면 직지와 직지보다 앞선 불경은 왜 7년간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까. 강 반장은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훔친 물건이라 공개했다가는 소유권 분쟁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뒤늦게 출처지를 밝힌 서씨는 “공소시효 7년이 지났기 때문에 과거를 참회하며 출처지를 공개했다. 소장자가 선의 취득을 주장하며 국내에 유통시키거나 해외로 빼돌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형기가 4년이 남은 서씨가 신문기자에게 보낸 서신이 기사화되자 청주시는 직지 상권의 존재 가능성에 관심을 집중했다. 당시 청주시는 대대적인 ‘범시민 직지찾기 운동’을 벌이던 때라서 서씨의 진술에 대해 촉각을 곧두세웠다.

특히 검찰과 국가정보원이 서씨의 주장을 근거로 주변인물들을 추적하며 직지 찾기에 나섰다. 한국일보 2011년 1월 보도에 따르면 검찰은 2008년 4월부터 수차례 수감중인 서씨를 대검찰청 청사로 데려와 직지와 불경의 행방을 수사했다는 것. 검찰은 신문보도 직후부터 서씨의 진술을 토대로 직지와 불경이 건너 갔을 만한 불법유통 경로를 몇 가지로 좁히고 이 과정에 관여한 중간책과 최종 종착지로 추정되는 인물들에 대해서도 광범위한 자료 조사를 했다는 것.

▲ 직지심체요절 하권

2012년 사진 공개 약속후 침묵

또한 국가정보원 직원도 2007년 말~2008년초 수감 중인 서씨를 수 차례 찾아와 직지와 불경의 행방에 대해 물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직원은 서씨가 보관 중인 자료 제공과 직지의 최종 향방에 결정적 진술을 요청했다고 한다. 검찰의 소환조사와 국정원 직원의 요청에 대해 서씨는 “직지 한 권은 중국에, 나머지 한 권은 국내에 있을 것이다. 누가 직지와 불경을 소장하고 있는지는 정확히 모른다”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2011년 4월 서씨는 만기출소했고 몇개월이 지난 11월 직지에 대해 돌출발언을 했다. 당시는 ‘직지 대모’로 불리던 박병선 박사 별세 직후라서 직지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았던 때다. 서씨는 일부 언론을 통해 직지 보관 장소와 유통 경로를 전격적으로 공개했다. 당시 ‘서울신문’은 “도굴한 두 권 중 한 권은 중국 연변에, 다른 한 권은 일본 도쿄에 있다”고 전했다. 이전까지는 “한 권은 중국, 다른 한 권은 국내에 있을 것”이라고 얘기했었다.

서씨는 구체적으로 “봉원사에서 훔친 직지는 지인 H(일본 거주)씨를 통해 일본으로 옮겨 보관 중이며, 2000년 경북 안동 광흥사에서 훔친 직지는 역시 지인인 조선족 K(중국 거주)씨를 통해 중국에서 보관 중”이라며 “두 권 가운데 광흥사 직지는 국가에 기증할 의사가 있으며, 봉원사 직지는 직지 찾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청주시와 협의해 적절한 보상을 받으면 넘기고 싶다”고 말했다. 아울러 “내년(2012년) 1월쯤 일본에 보관 중인 직지 사진을 공개하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직지 사진 공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다시 4년이 지난 현재까지 묵묵부답인 상태다. 이에대해 청주시 관계자는 “박물관 학예사 등 시 직원들도 수감중인 서씨를 면회해 직지 찾기에 협조를 당부했었다. 출소후 4년이 지났지만 아직 사진 한장 내놓지 않은 상태라서 더이상 신뢰를 하지 않고 있다. 직지보다 50년이 앞선 금속활자 불경을 발견했다는 주장도 의문이다. 간기를 보면 인쇄시점을 알 순 있지만 목판본과 금속활자본은 전문가 쉽게 구별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증도가자’에 대한 객관적인 의문점
활자 자체 연대 규명 못해, 인쇄본도 없어

70년대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발견된 ‘직지심체요절’은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된 금속활자 책이다. 1377년 찍은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 인쇄본으로 세계 학계에서 공인받았다. 하지만 문제의 금속활자 실물이 없다. 그런데 2010년 경북대 남권희 교수가 직지보다 100년 이상 앞선다는 ‘증도가자’를 공개했다. 무려 100개에 달하는 고려제 추정 금속활자가 쏟아져 나왔다.

경북대 산학협력단의 조사결과에 대해 몇가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먹이나 서체를 분석한 간접 증거가 대부분이고 활자 자체 연대를 규명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또한 증도가자로 찍은 책도 없는 상태라서 결정적인 ‘팩트’가 부족한 상태다. 진위 판별의 또다른 관건인 출처와 전래경위도 명확하지 않다. 일제강점기 개성에서 일본에 건너간 뒤 90년대 다시 들어왔다는 얘기만 전할 뿐이다.

2013년 소장자가 증도가자가 담긴 고려 유물이라며 공개했던 초두와 수반 등 청동용기의 연대 분석도 연구에서 빠졌다. 무엇보다도 증도가자를 세계 최고 금속활자라고 주장해온 남 교수가 이 검증 용역을 맡은 경북대 산학협력단 책임자라는 사실도 논란이다. 이런저런 의문 때문에 일부에서는 고려 먹을 조작된 활자에 붙였을 가능성도 제시했다. 또한 만월대 도굴품이라거나 중국에서 유출됐다는 등 여러가지 반증설을 제기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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