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꽃은 마음의 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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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꽃은 마음의 꽃이었다
  • 육정숙 시민기자
  • 승인 2004.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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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수필] 육정숙-우담바라

얼마 전 3000년에 한번씩 꽃을 피운다는 불교계 상상의 꽃인 우담바라가 음성 경찰서 남쪽 유리창에 15송이나 피었다고 해서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생각하기조차 싫은 사건들이 차고 넘치는 요즘, 경찰서에 그런 일이 있었으니 상서로운 징조가 아닐 수 없다. 소식을 접하는 사람들의 가슴마다 희망을 부여했다. 그것을 보고 경찰서 직원들은 부처님의 자비 광명으로 승진을 염원하기도 하고 주민들의 치안을 담당하는 그들로서 편안한 사회를 만들어 가고 싶은 바람들을 작은 가슴에 담았다.


뜨거운 불볕 같은 젊은 날이 지나가고 내 앞에 다가선 가을날은, 먼 길 떠났다가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가 깨끗이 닦아 놓은 툇마루에 걸터앉은 나그네의 마음 같다. 영원히 식을 줄 모를 것 같던 여름의 열정이 시간의 변화에 소리도 없이 저만큼 물러 설 줄 안다.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변하는 자연 환경에 따라 뭇 생명체는 자신의 생을 존속시키기 위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여름은 생명력이 넘치는 아름다움이 있고 가을은 풍성한 결실의 기쁨 속에 쓸쓸한 소멸을 품고 있다. 그러나 그 소멸의 내면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내일의 또 다른 생을 위한 생성의 원천이질 않은가!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은 이렇게 반복되는 길고 긴 여정 속에서 사라져주어야 새로 태어나는 성스러운 모습을 지니고 있다. 정적이든 동적이든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이렇게 수없이 반복 되는 생태원리를 한 치도 벗어 날 수 없다. 그런 생의 원리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양손에 가득 들고서도 허기를 느끼며 욕심의 자루를 한껏 부풀려 놓고 채워지지 않는다고 애를 쓴다.

 세상은 한쪽엔 모자라는데 다른 한쪽은 넘쳐 난다. 남아도는 사람이 나누고 살아가야 하는데 모자라는 데서 쪼개고 나눌 줄 안다.


지인 중에 남편을 병으로 잃고 힘들게 살아가는 이가 있다. 내가 좀 여유가 있어 도와 줄 수 있다면 좋으련만 옆에서 지켜보기가 너무나 안타깝다. 나 역시 사업에 실패하고 하루를 엮어가기가 힘들다 보니 지켜보는 마음만 아플 뿐이다. 그러나 어렵게 사는 사람들일지라도 나눌 줄을 알아, 시한부 인생을 살면서도 숨 붙어 있을 때 좋은 일 해야 한다고 쌀 포대를 그 집에 두고 가는 이를 보았다. 곁에서 바라보는 이들이 울컥 목이 메어온다.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꽃은 그 어느 꽃보다도 마음의 꽃이었다. 쌀 포대에 알알이 맺힌 하얀 마음들, 그것이 바로 우담바라가 아니던가!


불전에 따르면 우담바라는 우담화라 하며 우담바라의 꽃을 뜻하기도 한다. 불교 경전에 우담바라가 피면 석가여래나 정법으로써 세상을 다스리는 이상적인 왕, 지혜의 왕인 전륜성왕이 와서 이 세상을 용화 낙원의 세계로 만든다고 한다. 힘들고 어려운 삶 속에서 희망으로 다가온 우담바라! 어렵게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또 하나의 기다림으로 가슴을 설레게 한다. 우담바라가 핀다는 것은 상서로운 징조이기에 다복을 발원하고 그로인해 좋은 일들이 이루어지길 간절함으로 기다린다.


우리는 살기 편하고 물질이 풍부한 세상을 살면서도 늘 허덕이며 살아간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부를 축적하며 살아감은 당연하다. 허나 그로 인하여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잃어 가고 있다. 옆을 돌아 볼 줄 아는 마음의 여유가 없다. 봄에는 어떤 꽃이 피었다 지는지, 여름엔 비가 오는지 태풍이 부는지, 가을엔 어떤 열매가 익어 가는지, 겨울엔 눈이 내리는지 한파가 닥치는지조차 돌아 볼 겨를 없이 살아가고 있다. 악착같이 해야 살아남는다는 위기의식을 지니고 첨단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마저 모르고 살아간다. 내가 어릴 적, 먹고 입을 것이 부족했어도 옆 사람과 나눌 줄을 알았다. 말하지 않아도, 어디가 가렵고 아픈지를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까만 고무신을 신고 달려도 행복했던 적이 있었다. 사립문 밖을 나서면 들꽃이, 바람이, 하늘을 나는 새들에게서 자연의 섭리를 알았다. 느릿느릿 일러주는 삶의 지혜였지만 사랑의 실체가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인지 또 어떻게 지켜가야 하는지를 오랜 기다림 속에서 배웠다.


기다림의 세월,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비 내리고 바람 불어 견딘 날 들이 얼마였던가! 그러나 열매를 맺기 위한 또 하나의 아픔을 견뎌야 한다. 그렇게 오랜 기다림 끝에 맺힌 열매들이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시간의 변화, 보이지 않게 변화하는 질서 속에 조용히 순응 하는 모습들이 아름다운 거다. 말없이 지켜보며 기다리고 바라보는 마음, 그것이 사랑인거다. 그러나 무엇이든 빠르게 변화하는 요즘, 정신은 두고 몸만 앞서 가다보니 천륜이 깨지는 세상이 되었다. 부처의 자비로움으로 우담바라를 세상 사람들에게 기다리게 하심은 스스로 깨우치라 함인가!


우담바라의 기원은 선문에 ‘꽃을 집어 들고 미소 짓는다’ 는 말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석가모니가 영취산상에서 설법할 때 꽃 한그루 집어 들고 있었던 적이 있다. 그때 많은 제자와 신도들은 대단한 설법이 터져 나올 것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 군중 속에서 유일하게 수제자 가섭만이 꽃을 집어든 뜻을 알아차리고 미소 지었다. 이에 ‘그대만이 나의 마음을 터득 했느니라, 나의 법문을 그대에게 물리리로다’, 했다. 이 유명한 이심전심의 꽃이 연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고사의 출처인 불경에 보면 우담바라의 꽃으로 되어 있다.


근래에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우담바라라고 하는 것은 풀 잠자리의 알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나는 믿고 싶다. 우담바라가 피면 뭔지 상서로운 일들이 우리 모두에게 일어 날 것이라는 신비한 힘을 말이다. 사람들의 마음에 핀 우담바라는 희망의 부처요, 구원의 부처다. 그 꽃은 간절히 바라는 이의 눈에만 띄는 꽃이라 한다.


우리는 지금 고도로 발달한 문명의 혜택을 받으면서도 우리의 내면은 어떤 신비에 기대를 걸고 싶어 한다. 그것은 경기가 어려운 요즘 살아가기가 너무나 힘들기에 막연한 기대감이라도 지니고 싶은 마음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럴수록 침울해 하지 말고 더욱 더 힘을 내야 함이다. 오랜 기다림이 있어야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듯, 꽃이 피었다는 것은 곧 열매를 맺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담바라는 우리들의 마음속에 언제나 피어 있는 희망의 꽃이다. 우리 모두 자신 스스로가 우담바라가 된다면 이 세상이 바로 불경에서 일러 주는 용화의 낙원인 것이다.

어느새 살결에 닿는 햇살이 가볍다. 선선한 바람은 이미 가을을 부르고 성급한 도로가의 나뭇잎들은 쓸쓸한 소멸을 준비하고 있다. 저 높은 곳에 파란 하늘, 흰 구름의 입맞춤에 내 입술로 온기가 전해져 온다. 미움이 짙어 내 마음 한번 주지 못했던 친구에게 오늘은 안부 전화라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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