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년 전, 우린 이미 이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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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년 전, 우린 이미 이웃이었다”
  • 오옥균 기자
  • 승인 2016.06.08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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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가로 돌아온 전유오 대원텍스타일 법인장, 기획‧안무‧주연까지
고려에 정착한 베트남 왕자 이야기, 창작무용극으로 베트남 무대에

커튼콜이 시작되자, 500석 규모의 베트남 호치민시 오페라하우스는 박수갈채로 가득했다. 무용극이라는 생소한 형태의 공연이었지만 관객들은 열띤 환호를 보냈다. 그리고 박수는 주연 무용수인 한국인 전유오(54) 씨에게 향했다.

‘800년의 약속’이란 이름으로 무대에 올려 진 작품은 1226년 고려에 정착한 이용상(1174~미상·李龍祥·리롱뜨엉)이라는 인물의 이야기다.

베트남 최초의 세습 왕조인 리왕조(1010~1225)의 왕자인 이용상(6대왕 영종의 7남)은 왕조의 몰락과 함께 망명길에 오른다. 배를 타고 수십 일을 표류한 끝에 그가 도착한 곳이 황해도 화산(花山), 고려왕 고종은 안남국(베트남)의 왕자가 고려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그가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리고 그를 화산군(花山君)에 봉했다. 그렇게 화산 이씨는 시조가 된 그는 고려에 터를 잡았고, 그의 후손들은 우리나라 전역에 살고 있다.

한국-베트남, 문화교류 가교

무용가 전유오 씨는 이번 작품에서 주연으로 무대에 오른 것은 물론 안무까지 담당했다. 그는 베트남 땅에서 이용상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고 싶었다.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베트남 아가씨들이 얼마나 많이 한국에 가서 살고 있나. 그렇다보니 가끔 가슴 아픈 소식도 들린다. 이럴 때 ‘할아버지끼리 친구였다’ ‘굉장한 인연이 있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면 자부심도 생기고 위로가 되지 않겠나.”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과 우리나라가 수교를 맺은 것은 불과 24년 전이다. 하지만, 어느새 두 나라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외교적으로 중요한 국가가 됐다. 우리나라에 정착한 베트남 이주여성은 6만명, 베트남 노동자를 포함한 주한 베트남인은 14만명에 이른다. 이 이야기가 더욱 관심을 모으는 이유다.

호치민 지역의 많은 예술인들이 이번 공연을 기다려왔다. 지난해 12월 초연에서 호평을 받아 각계의 요청으로 다시 무대에 올린 것이다. 하지만 전 씨는 “초연에서 부족했던 점을 채우려 노력했다”며 “한국과 베트남 공동제작 차원에 중점을 뒀고, 베트남 전통음악가 등 다양한 예술가들과 교감해 국경과 장르를 초월하는 무대를 만들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예술을 사랑한 기업인의 딸

이제는 작품이 아닌 전 씨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선화예중·고를 거쳐 이화여대와 동대학원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한 전 씨는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무용가인 배정혜·박윤초·김병섭·이동안·김천흥·이매방·김용배 선생 문하에서 춤을 배웠다.

학문적인 연구도 병행했다. 英 서레이(Surrey) 대학에서 움직임 분석을 주제로 박사과정을 밟았다. 그리고 1991년 서원대 무용과 교수로 강단에 선 그는 2004년 학과 통폐합 때 사직서를 제출했다. 서원대 무용과는 체육교육과에 흡수됐다. 이를 계기로 그는 제2의 인생을 살게 된다.

교수직을 버리고 그가 택한 삶은 기업인이다. 충북을 대표하는 향토기업인 (주)대원 전영우 회장의 3녀인 그는 대원텍스타일베트남법인장으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대원텍스타일베트남법인은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 있는 일본에서도 인정받는 업체로 성장했다. 그의 예술적 자부심은 산업현장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OEM 생산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베트남에 온 후 처음 몇 년은 온전한 기업인으로 살았다. 하지만 기업에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가슴 속 허전함은 커졌다. 한국으로 돌아갈까도 생각했다. “이때까지 가져온 게 필요없는 게 돼 버릴까봐 두려웠다. 결국 다시 무용을 시작했다. 업무 시간 외에는 누구도 만나지 않고 연습을 했다”고 회상했다.

5년의 공백, 그리고 5년의 노력 끝에 무대에 올린 작품이 ‘사이공 아리랑(2014년作)’이다. 지난해에는 호치민시립발레단과 함께 미쩌우 공주의 전설을 소재로 한 ‘활’을 무대에 올렸다. 이 밖에도 에벤에셀 무용단과 물맷돌 무용단을 창단해 활동하기도 했었다.

앵콜 공연을 마친 그는 “내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만으로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의미가 있는 일이 됐다. 예술을 통해 양국의 교류에 도움이 된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앵콜공연은 7일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도 열렸다. ‘800년의 약속’에는 독일 음악가 겸 피아니스트 피터 쉰들러, 베트남 배우 부이 녀 라이와 베트남전통음악가, 발레 무용수 등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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