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공방 경로당 쟁탈전 허무한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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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공방 경로당 쟁탈전 허무한 결말
  • 오옥균 기자
  • 승인 2016.06.14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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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당 일부 용도 변경 요구한 입주자대표회의…4월 대법원서 패소
소송 당하면서도 노인 편들던 청주시…담당부서 바뀌자 돌연 허가

경로당 사용을 놓고 지난 2년간 지리한 법정공방을 벌였던 청주시 북문로 소재 한 아파트 사태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며 노인들이 반발하고 있다. 행정소송을 당하면서도 노인들 입장에 섰던 청주시가 최근 반대 쪽에 선 입주자대표회의의 요구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특히 해당 사건은 대법원에서 승소하며 노인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것으로 기대했던 터라 청주시의 변심(?)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북문로 소재 A아파트는 279세대로 조성된 소규모 아파트단지다. 주민들에 따르면 노인세대는 대략 60여 가구로 최소 60여명의 노인이 경로당을 이용한다. 하지만 이 아파트에 설치된 경로당은 2013년 6월 입주 후 지난 3년간 사실상 사용이 중단된 상태라는 게 노인들의 주장이다.

 

▲ 사진설명-경로당 사용을 놓고 입주자대표회의와 노인회가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청주지역 A아파트 경로당 내부. 입주자대표회의는 다목적실 사용 요구가 대법원 판결로 무산되자, 할머니방을 입주자대표회의실로 사용하겠다고 재차 변경 신청을 했다. 청주시는 법적 근거를 들어 입주자 대표회의의 변경신청을 허가해 주었다.

3년간 사용 못한 유명무실 경로당

이기언 노인회장은 “입주자대표회의와 갈등을 겪은 이후 관리사무소 측이 사용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지 않아 이용하지 못했다. 노인회 또한 이름만 있을 뿐 모일 장소가 없다보니 사실상 유명무실하다”고 말했다. 해당 경로당은 취사행위를 할 수 없도록 돼 있다. 또한 겨울철 난방을 중단한 것은 물론 한때는 문까지 걸어 잠갔다는 게 이 회장의 주장이다.

입주자대표회의와 노인들 간 갈등은 입주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입주자대표회장이 상근을 고집하며 상근 장소가 필요했고, 경로당의 다목적실을 입주자대표회의실로 지정하고 이곳에 머물렀다.

A아파트 경로당은 별도의 건축물이 아닌 아파트 1층 1세대 공간을 활용했다. 방 2개와 거실로 이뤄진 경로당은 할아버지방·할머니방·다목적실(거실)로 구분해 이용하도록 돼 있었지만 다목적실(거실)을 입주자대표회의실로 사용하면서 원래 용도가 지켜지지 않았다.

불편을 겪던 노인들은 청주시에 진정서를 제출했고, 청주시는 노인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2014년 12월 입주자대표회의실로 사용하던 다목적실을 원상회복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렇게 노인들의 불편이 해소되는 것으로 마무리 될 줄 알았던 ‘경로당 쟁탈전’은 입주자대표회의의 또 다른 요구로 2라운드에 접어들었다. 입주자대표회의가 경로당의 일부 공간을 용도 변경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당초 아파트를 건설하면서 경로당으로 조성한 면적은 96㎡다. 경로당 면적은 세대 수에 따라 법적 최소공간을 보장해야 한다. 이 아파트의 경우 최소면적은 53.60㎡였고, 39㎡가량의 여유공간을 입주자대표회의실로 만들겠다는 게 입주자대표회의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청주시는 이 조차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용도변경 신청을 불허한 것이다.

입주자대표회의는 곧바로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1심에서 승소했다. 하지만 청주시는 항소했고, 2심에서 판결은 뒤집혔다. 대법원까지 법정공방을 이어갔지만 법원은 최종적으로 청주시(노인)의 손을 들었다. 다목적실은 노인들이 사용할 공간이고, 입주자대표회의가 열리는 월 1회만 해당 공간을 빌려 사용해도 되기 때문에 용도변경의 필요성이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 판결은 지난 4월 28일 내려졌다. 당시 이기언 회장은 “이제 경로당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고 반겼지만 이후로도 경로당을 사용하지 못했다. 입주자대표회의·관리사무소와 대립각을 세운 탓에 아파트 분위기는 냉랭했고, 몇몇 입주 노인들이 새로운 노인회를 결성하면서 노인들 간 갈등으로 확대되는 모습까지 보였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까지 받은 마당에 경로당 사용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대법원 패소, 이번엔 할머니방

하지만 또 다시 3라운드가 시작했다. 다목적실을 입주자대표회의실로 쓸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을 받은 입주자대표회의가 이번엔 할머니방을 입주자대표회의실로 사용하겠다는 용도변경 신청을 청주시에 제출한 것이다. 논란이 된 것은 청주시의 대응이다. 그동안 노인들 편에 섰던 청주시가 입주자대표회의의 신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노인회는 담당부서가 바뀌면서 벌어진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노인회 관계자는 “기존 담당자는 행정소송까지 감내하며 노인들 편에 섰고, 결국 재판에서도 이겼다”며 “담당자가 바뀌었다고 대법원 판결까지 받았던 문제가 손바닥 뒤집듯 바뀔 수 있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청주시는 행정소송이 진행되자 일원화 차원에서 주택관리팀이 해당사안을 모두 맡았다. 다목적실을 입주자대표회의실로 만들겠다는 입주자대표회의의 계획은 대법원 판결로 무산됐다. 해당 건은 일단락됐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새로운 용도변경을 계획했고, 공동주택팀에 제출했다. 본래 용도변경 등 행위 인허가 소관부서는 공동주택팀이다. 공동주택팀은 입주자대표회의의 용도변경 신청을 허가했다. 담당 공무원은 “주택법령상 총량제 기준이 있는데 기존 용도변경 안은 총량제 기준 면적을 충족하지 못해서 불허됐던 것이다. 하지만 입주자대표회의가 새롭게 제출한 변경안은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했고, 법적으로 안 해줄 이유가 없다”고 말하며 “담당자가 바뀌어서 안 되던 것이 됐다는 식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이 같은 결론은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입주자대표회의의 저의가 드러난 만큼 또 다시 행정소송까지 가더라도 소신행정을 해야 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것이다. 이기언 노인회장은 “그동안은 청주시가 한편이라는 마음에 든든했다. 일부 노인들은 협박을 받기도 했고, 지난 3년간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래도 버틸 힘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청주시도 싸워야 할 대상이 됐다”고 푸념했다.

노인회는 14일 청주시에 용도변경 허가를 취소해 줄 것을 요구했다. 절차상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기언 노인회장은 “주택법에는 전유부분에 대해 용도변경 할 경우 입주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우리 아파트 관리규약에는 회의 개최 5일 전까지 동별 대표자에게 서면 통지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 같은 절차가 지켜지지 않았다”며 “지금이라도 잘못된 판단이 바로잡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입주자대표회의실 독서방‧탁구장으로 변신

“한 달에 한번 회의 때 쓰는 게 전부” 공유공간으로 활용

입주자대표회의가 노인들의 공간인 경로당을 사용하기 위해 소송도 불사하는 A아파트와 달리 서울의 한 아파트는 입주자대표회의실을 아이들의 독서방으로 사용해 화제가 되고 있다.

서울시 구로구 창동에 위치한 신창아파트는 3년전 입주자대표회의실을 독서방으로 꾸몄다. 입주자대표회의는 한달에 한 번 열리고, 그 외에는 사용할 일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독서방 전환을 제안한 오재형 입주자대표회장은 “입주민들이 더 많이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다 독서방을 만들기로 결정했다”며 “운영은 주민들이 직접하고, 재능기부를 통해 강좌도 열었다. 돈을 아끼기 위해 관리사무소 직원들과 주민들이 힘을 모아 직접 페인트칠도 하고, 주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입주자대표회의실이 회의 당일 외에는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다른 공동시설로 활용하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다. 부산시 서면 동일파크스위트1차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올 초 회의를 거쳐 입주자대표회의실을 탁구장으로 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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