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이전’만 11만번 독파, 김득신 문학관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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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이전’만 11만번 독파, 김득신 문학관 건립
  • 김남균 기자
  • 승인 2016.09.06 2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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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평군, 47억원 들여 건립…스토리텔링으로 명소화
10살에 글 깨치고 59세에 과거급제…노력파의 상징
▲ 증평읍 율리 삼기저수지 둘레길에 조성된 김득신 독서상.

중국에 ‘우공이산’이 있다면 한국엔 김득신이 있다. 모르면 알 때 까지 읽고 읽고 또 읽었다. 백이전을 11만번이나 읽었다. 주인공은 바로 조선시대 문인 김득신.

증평군이 조선시대 독서왕 백곡 김득신 ( 1604 ~ 1684 ) 문학관 건립에 나섰다. 지난 6일 증평군은 군청 대회의실에서 홍성열 군수를 비롯해 지역문화예술단체, 안동김씨 종친회, 지역주민 등 8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김득신 문학관 건립’ 타당성 및 기본계획 용역 중간보고회를 개최했다.

증평군은 용역 결과를 토대로 국비 47억원을 들여 지하1층, 지상 3층으로 김득신 문화관 건립을 시작한다.

이날 보고회에서 참석자들은 문학관 1층에는 김득신의 정신과 문학적 업적을 보여주는 역사 자료 전시관으로 2‧3층은 지역주민을 위한 전시, 교육, 문화관광형 복합테마 공간으로 조성하자는 의견을 냈다.

문학관 건립 후보 대상지로는 김득신 묘소와 인접한 율리 별천지 공원과 주민의 활용도 및 운영 지속성이 높은 지역인 증평군립도서관 인근 부지가 제시 됐다.

군은 지난해 김득신 문학관 건립을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했으며, 2월에는 충북도 지방재정투자심사를 통과했다.

군은 지난 6월부터 김득신 유물 조사, 사례분석, 문학관 기본방향, 대상지 검토, 사업추진방향 등을 내용으로 하는 김득신 문학관 건립 타당성 및 기본계획 수립을 위해 한국산업관계연구원에 용역을 의뢰했다.

군 관계자는“이번 용역 결과와 보고회에서 나온 의견을 종합해 김득신문학관 건립 타당성 용역 및 기본계획을 마무리하는 한편 향후 문학관 건립 대상지를 확정하고 정부예산을 확보해 2017년도부터 문학관 건립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 취재 김남균 기자

 

억만재(億萬齋)의 전설…김득신은 누구?

김득신은 어릴 때 천연두를 앓아 머리가 둔했다고 전해진다. 10살이 돼서야 글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읽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수준이니 도무지 진척이 없었다. 주위에서 저런 둔재가 있느냐고 혀를 찼지만 그의 아버지는 대기만성을 믿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부친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고 김득신은 엄청난 열정으로 책읽기에 몰두했다. 그는 그칠 줄 모르고 읽고 또 읽었다.

김득신은 취묵당에 독수기를 걸어놓고 책 읽은 횟수를 적어 놓았다. 독수기에 따르면 ‘백이전’은 무려 1억 1만 3000번을 읽었고 ‘노자전’, ‘용설’등은 2만 번을 읽었다. 여기서 ‘1억’은 10만을 가리킨다.

김득신이 책을 읽은 취묵당은 그의 독서열을 기려 억만재(億萬齋)라고 불린다. 김득신은 인고의 노력 끝에 글을 한 편 지어 부친에게 올리게 된 것이 그의 나이 20세 때였다.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에 나아간 것이 59세 때였다.

김득신은 식사할 때도 책을 놓지 않고 밤에는 늘 책을 머리맡에 두고 잤다. 김득신의 일화도 많다.

한번은 하인에게 말을 잡히고 어느 집 앞을 지나다가 글 읽는 소리가 들리기에 말을 멈추고 한참 동안 듣더니 “글이 아주 익숙한데, 무슨 글인지 생각이 안 나는구나” 하니 하인이 올려다보며 “부학자 재적극박 어쩌고 저쩌고, 그건 나으리가 만날 읽으셔서 쇤네도 알겠는데 나으리가 모르신단 말씀입니까?” 그제야 김득신은 책이 닳도록 읽은 ‘백이전’인 것을 알았다. 하인도 지겹게 들어 줄줄 외우고 있었던 것이다.

또 그가 친구들과 시를 짓고 논 적이 있었는데, 종일 시상을 가다듬다가 저물녘에 훌륭한 시구를 얻었다며 읊은 것이 “삼산은 푸른 하늘 밖에 반쯤 떨어지고, 이수는 백로주에서 둘로 나뉘었네.” 하는 이백의 시 봉황대‘여서 친구들을 아연케 했다. 김득신이 풀이 죽어 “천년 전 적선이 나보다 먼저 얻었으니 석양에 붓 던지고 서루를 내려오네”라고 탄식했다. 김득신은 이 시를 하도 많이 읽어서 자신이 지은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김득신은 스스로 지은 묘비명에서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겠지만 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 모든 것은 힘쓰는데 달렸을 따름”이라 했다. 스스로 둔재임을 인식하고 초인적 노력을 쏟는 열정으로 문장을 이루었던 김득신의 이야기는 분명 세월을 넘어 가르치는 바가 적지 않다. (글 류정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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