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이론’으로 살펴본 충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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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이론’으로 살펴본 충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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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10.20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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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생각한다/ 이병관 충북·청주경실련 정책국장
▲ 이병관
충북·청주경실련 정책국장

올해 노벨경제학상은 ‘계약이론(contract theory)’을 연구한 올리버 하트 하버드대 교수와 벵트 홀름스트룀 메사추세츠공대 교수에게 수여되었다. 계약이론은 모든 경제관계가 결국 계약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그 과정이 투명하고 양측이 만족할 만한 수준일수록 사회 전체의 효용이 증가한다는 이론이다.

뭐 이런 당연한 것으로 노벨상까지 받느냐고 의아해할 수도 있지만, 노벨경제학상은 오래 전 발표된 경제이론이 수십 년에 걸쳐 글로벌 경제 속에서 실천되고 증명되었을 때 수여되는 경향이 있다. 두 교수가 계약이론 논문을 공동 집필한 것은 30여년 전인 1985년이었다.

소위 글로벌 경제 환경에 통용되는 이론을 충북이란 지역에 한정해서 적용하기엔 무리가 따를 수도 있다. 그러나 계약이론을 통해 충북을 살펴보면 우리 지역이 왜 발전하지 못하는가 힌트 정도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낙하산 인사가 가능한 이유도 단순히 단체장이 측근을 산하기관에 꽂아 넣어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이 해당 기관에서 이룩해야 할 성과와 그것을 입증할 능력이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산하기관의 장이 행사 다니면서 얼굴이나 비치는 것 정도의 능력만 갖춰도 된다면 낙하산 인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낙하산 인사를 없애고 싶다면, 단체장의 부도덕성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산하기관의 장이 갖춰야 할 능력과 성과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단체장 본인에게도 적용되는 원리이다. 유권자와 단체장의 계약(!)이 명확하면 능력 없는 사람이 당선될 가능성도 없고, 설령 당선되더라도 ‘힘이 부쳐서’ 그 자리에 버티고 있을 재간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단체장을 뽑고, 또 단체장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던가? 선거기간 단체장이 내세우는 공약(公約)은 일종의 계약서임에도 이를 근거로 투표하는 유권자는 많지 않아 보인다.

노벨상 수상자들은 계약이론의 한계인 불완전성에 대해서도 연구를 많이 했다. 즉, 모든 내용을 계약서에 기입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뜻이다. 단체장의 공약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 세세한 내용을 모두 적을 수는 없다. 어떤 것은 추진하면서 주변 환경에 맞게 시의적절하게 변경해야 하고, 또 어떤 것은 공약으로 미리 제시하지 못했지만 환경이 바뀌어 매우 중요한 이슈로 새롭게 부각될 수도 있다. 따라서 공약이니까 무조건 지키라거나 공약이 아니니까 신경을 덜 써도 된다고 할 수는 없다.

노벨상 발표 전에도 우리나라에선 계약이론이 주목을 받은 적이 있는데, 바로 성과급 논란 때문이다. 계약이론은 성과급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제대로 설계되지 못한 성과급의 폐단도 함께 지적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학생의 성적에 따라 선생님의 급여가 달라지도록 하면 확실히 학생의 성적은 올릴 수 있을지 몰라도, 인성교육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계약이론에서는 성과를 정확히 측정해야 하고, 인성과 같이 측정하기 어려운 점을 고려해야 할 경우에는 성적처럼 측정 가능한 분야만 강조하는 성과급 도입은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단체장의 성과 역시 다르지 않다. 만약 단체장에게 측정 가능한 분야만 강조한다면 측정이 어려운 분야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측정이 쉬운(그만큼 부풀리기도 쉬운) 대표적인 분야가 투자유치와 SOC(사회간접자본)이고, 측정이 어려운 분야가 바로 복지나 삶의 질이다. 그래서 우리는 매번 사상 최대의 투자유치와 경제성장을 이룩한다는 단체장의 성과를 듣고, 목소리 큰 지역에 건물과 다리는 많이 지어지지만, 삶의 질 자체는 별반 나아지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계약을 배제하면 남는 것은 소위 말하는 학연·지연·혈연 밖에 없다. 하지만 ‘형님아우’ 하는 정(情)으로 가득한 사회가 좋은 것이라면, 지금쯤 충북은 세계 제일의 경제성장을 이룩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들 정서 밑바닥에 자리잡은 ‘끼리끼리’ 문화가 결과적으로 단체장의 ‘내 사람 챙기기’로 연결되는 것이고, 좋은 기업이 충북에 오는 것을 막는다.

무엇이 충북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인지 노벨상 수상자의 이론을 계기로 되돌아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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