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꾸면 잘 되려나”…10년간 150만명 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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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꾸면 잘 되려나”…10년간 150만명 개명
  • 오옥균 기자
  • 승인 2016.11.23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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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명소, 청주지역 30여 곳 성업…작명비 30만원 안팎
명리학자 이규태 씨 “좋은 이름 좋지만 개명은 불필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여기서 말하는 이름이 ‘좋은 이름’ ‘예쁜 이름’은 아니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름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것만큼은 사실인 듯하다.

개명이 손쉬워지면서 개명 인구가 크게 늘었다. 대법원 발표에 의하면 지난 10년(2006~2015)간 151만 9524명이 개명을 신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 34명 중 1명 꼴로 개명을 신청한 것이다. 법원의 개명 허가율도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에는 신청자의 95% 가량이 법원의 허가를 받았다.

▲ 사진설명-좋은 이름을 갖기 위해 작명소를 찾는 발길이 많아졌다. 특히 개명이 자유로워지면서 지난 10년간 전국적으로 150만명이 개명을 신청하는 등 이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개명이 일반화되면서 작명소나 철학관을 찾아가는 발걸음도 잦아졌다. 황금성 한국역술인협회 충북회장은 “예전보다 개명을 문의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이름을 바꾼다는 것이 작지 않은 결심이다 보니 평소에는 사주팔자를 믿지 않는 사람도 개명을 할 때는 작명소를 찾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작명가 인지도 따라 천차만별

청주에는 30여곳 정도의 작명소가 성업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작명소는 비단 사람의 이름 뿐 아니라 기업이나 단체의 이름까지 다양하게 활용되지만 사람의 이름은 30만원 안팎의 작명비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작명소 운영자는 “정해진 가격은 없다.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며 “신생아 작명이 30만원 선이고, 개명은 그보다 조금 저렴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청주에서는 30만원 선이지만 서울에서는 더 비싸다. 작명가의 인지도에 따라 천차만별이며 신생아 작명은 100만원 선에 형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명리학자 이규태(청주대평생교육원·하원정 명리학회 학술위원) 씨는 “부모는 좋은 이름이나 예쁜 이름을 원한다”며 “예쁜 이름을 원하면 직접 짓는 것이 맞고, 아이에게 좋은 이름을 지어주려면 작명소에 문의하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작명소에서 말하는 좋은 이름은 사주에 부합하는 이름, 사주의 부족한 면을 채워주는 이름으로 정의한다. 이름이 같아도 삶의 양상이 다른 이유를 작명가들은 사주의 차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동일한 사주일 때 모든 작명가가 같은 이름을 그 사주에 따른 가장 적합한 이름으로 제시할까?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작명소마다 작명의 방식에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44년간 작명을 해왔다는 황금성 씨는 “사주와 음양오행, 수리, 쾌상, 주역, 파자 등 다양한 원리를 적용해 작명한다”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작명소가 명리학을 기본으로 전통적 작명법을 따르지만 작명소마다 중시하는 분야가 달라 음(音)오행에 중점을 두느냐, 수리(한자의 획수)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들 ‘민준’ 딸 ‘서윤’ 가장 많아

개명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작명가마다 온도차가 있다. 어떤 작명가는 “이름이 운명을 바꾼다”며 작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반면 이규태 위원은 “개명은 불필요하다”고 잘라 말했다.

이 위원은 “언론에 소개될 정도로 개명이 꼭 필요한 이름이라면 모를까, 점을 보러갔다가 권유를 받았거나 일이 잘 안 풀린다는 이유로 이름을 바꿀 생각이라면 바꾸지 않는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이름이 약간의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인생을 좌우하지는 않는다”며 “정 지금의 이름이 싫으면 별도의 아호(雅號)를 만들어 사용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신생아 이름으로 가장 인기 있던 이름은 ‘민준’이었다. 지난 한 해 동안 출생신고된 남자아이는 모두 22만 2854명, 그 중 3741명의 이름이 민준이다. 그 뒤는 서준(3422) 하준(3007) 도윤(2782) 순이다. 여자아이 이름으로는 ‘서윤’이가 가장 많았다. 지난해 출생신고한 21만 1403명 가운데 3048명의 이름이 서윤이었다. 특히 서윤이라는 이름은 2014년에 이어 2년 연속 가장 선호하는 이름에 올랐다. 그 뒤는 서연(2936) 지우(2668) 지유(2468) 순이다.

올해 성년을 맞은 남자 이름 중에는 ‘지훈’이 가장 많았고, ‘동현’과 ‘현우’가 뒤를 이었다. 여자는 ‘유진’이 1위를 차지했고, ‘민지’와 ‘지은’이 뒤를 이었다.

 

쉬워진 개명의 부작용...부동산·금융사기

 

개명허가율이 95%에 이르면서 개명을 범죄에 악용하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 22일에도 토지주 이름으로 개명해 주인행세를 하며 12억원을 가로챈 일당이 서울에서 붙잡혔다.

이들은 제주도 연동에 있는 임야 소유주 A씨로 개명한 뒤 자신의 것인양 속여 매매하는 수법으로 7명으로부터 12억 4000만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총책인 황씨는 해당 임야가 부동산 등기부등본상 주민등록번호없이 A씨의 이름만 등재돼 있는 것을 이용해 범행을 계획했다.

개명을 악용한 범죄는 대부분 부동산과 금융사기다. 앞선 사례처럼 부동산에 이름만 등재돼 있거나 서류를 위조해 당사자인 척 행세하는 수법이다.

지난해 천안에서도 개명을 이용한 사기 사건이 발생했다. 땅주인으로 이름을 바꿔 150억원 상당의 토지를 속여 뺏고, 37억원을 대출받아 편취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천안경찰서에 따르면이들은 지난해 5월 70대의 토지주와 같은 이름으로 개명한 후 공문서위조 등으로 천안시 동남구 신방동 지역 9900여㎡의 땅을 법인에 매각해 제2금융권에서 37억원을 대출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150억원 상당의 땅이 1984년 7월 이전까지 부동산 등기신청 시 주민등록번호 입력이 의무화가 아닌 것을 이용해 이름을 바꾼 후 자신 명의로 토지를 둔갑시켜 공모관계인 법인에 매각했고, 이 법인은 다시 토지를 담보로 제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았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경찰조사 결과 이들은 범행대상인 토지 물색과 개명에 필요한 개명허가결정문, 주민등록초본 등의 공문서를 위조하는 일명 '토지작업단'과 정상적으로 부동산을 매수하는 것처럼 위장해 대출을 진행하는 '대출 작업단'으로 구성된 것으로 드러났다.

2년 전에는 경기도에서 40억원대 대출사기가 발생하기도 했다. 시가 160억원대 토지 소유주 이름으로 개명한 뒤 대출을 시도하다 덜미가 잡혀 미수에 그친 사건이다.

지난 4월에는 부동산 거래 중이던 B씨에게 접근한 60대 남성이 계약금 4억원을 받아 가로채는 사건이 발생했다. 땅주인을 직접 본 적이 없던 B씨에게 자신이 주인인 것처럼 접근해 계약금만 가로챈 것이다.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위해 개명을 폭넓게 허용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 이후 이름에 대한 고민은 해소됐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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