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로’ ‘SK로’…인색할 이유 없어
상태바
‘LG로’ ‘SK로’…인색할 이유 없어
  • 오옥균 기자
  • 승인 2016.12.13 21: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북도, 2007년 ‘기업 명의 도로명 부여사업’ 시행으로 첫 등장
증평 두산로‧보은 한화길‧충주 새한사택길‧제천 아세아길 지정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그에게로 가서 나도/그의 꽃이 되고 싶다."
명명(命名·naming)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싯구절이다. 명명은 중요한 행위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불리는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명명하기까지 많은 것들이 고려돼야 한다. 특히 공공시설물에 대한 명명은 더욱 그렇다. 국민들이 낸 세금이 투입됐기 때문에 그렇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는 역사적 이름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최근 결정된 에스케이로 확정을 계기로 도내 공공시설물 명명에 대해 살펴보았다.

 

SK로가 탄생했다. 청주시는 지난달 29일 도로명주소위원회를 열고 서청주교-송절교차로 구간 3.17㎞를 ‘에스케이로(SK로)’로 결정했다. 해당도로는 향후 15조 5000억원 투자계획을 밝힌 SK하이닉스가 공장 신설을 약속한 청주테크노폴리스산업단지로 이어지는 도로다.

SK하이닉스가 청주권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지역경제에 기여한 데다, 빠른 투자약속 이행을 바라는 의미까지 더해 청주시가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앞서 청주시가 청주 최초의 기업명도로인 ‘엘지로(LG로)’를 확정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청주시는 엘지로 개통을 1년가량 앞둔 지난해 10월 도로명주소위원회를 열어 청주산업단지와 오창산업단지를 잇는 4.87㎞ 신설도로의 이름을 엘지로로 결정했다. 당시 청주시는 LG가 지역사회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청주시가 엘지로에 이어 에스케이로 명명을 확정하면서 기업명 도로에 대한 논의가 확대되고 있다. 학자들은 공공시설물에 사람이름이나 기업명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사진/육성준 기자

기업명 사용, 인색할 이유 없어

일자리창출 기여도나 수출 비중 등 청주지역경제에서 LG와 쌍벽을 이루고 있는 SK하이닉스로서는 서운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특히 해당도로가 SK하이닉스가 공장 신설을 추진하고 있는 청주테크노폴리스를 가로 지르고 있어,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SK로는 2015년 11월 착공한 도로로, 이미 2순환로라는 도로명주소가 확정됐던 곳이다. 2018년 4월 개통을 앞두고 있는 도로의 이름이 두 번째 바뀐 것이다. 청주시가 이미 명명된 도로를 SK로로 변경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기업명을 도로명(명예도로명)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지명이나 시설물에 사람의 이름을 쓰는 데도 인색한 편이다. 재계 서열 3위인 굴지의 대기업 SK도 이제야 도로명 주소에 이름을 올렸다.

이 같은 풍조에 대해 박병철 교수(서원대·청주시 지명위원·前 한국지명학회장)는 공공시설물 이름으로 기업이나 사람의 이름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처럼 사람 이름이나 기업 이름을 가져다 쓰는데 인색한 나라가 없다”고 지적하며 “로마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 프랑스의 샤를 드 골 공항, 미국의 J.F.K 공항 등 다른 나라의 경우 사람이름을 딴 공항이름이 꽤 많은데 우리는 한 곳도 없다. ‘김서방은 쓰면서 왜 우리는 안쓰냐’는 식의 정서가 작용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우리나라도 인천공항 건설 당시 공항이름 선정을 두고 세종대왕이 후보로 오르기도 했지만 지역명을 고집하는 사람들의 논리에 밀려 불발됐다.

 

오송역명 논란, 최치원역은 어때?

우리 지역에서는 오송역 명칭 논란이 대표적이다. 오송역이라는 이름이 지역의 대표성과 역의 중요성을 담지 못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대체 이름으로 ‘청주오송역’ ‘청주세종역’등이 거론됐지만, 지역을 대표하는 역사적 인물의 이름에서 따오자는 주장이 나오지는 않았다. 어떤 이는 신라말 학자 최치원 선생의 이름을 따는 건 어떠냐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가 이곳에 소나무 다섯 그루를 심은 것이 오송 지명의 유래가 됐다는 설 때문이다.

청주지역에서는 지난해 첫 기업도로명이 나왔지만 충북도로 확대하면 처음이 아니다. 2000년대 중반 충북도는 전략적으로 기업도로명 부여사업을 진행했다. 2007년 도로명주소 시범사업이 진행되는 것에 맞춰 충북도는 ‘기업(인) 명의의 도로명 부여사업’을 착수했다. 당시 충북도는 해당 사업을 통해 기업의 자긍심을 높이는 효과와 투자 유치 환경을 조성하는 효과를 기대했다.

그 첫 결과물이 2008년 지정된 새한미디어길과 아세아시멘트 길이다. 당시 충주시는 목행동 일대 4개 도로를 새한사택길, 새한사택 1길, 새한사택 2길, 새한사택 3길로 명명했다. 제천시도 아시아시멘트사 인근 8개 도로를 아세아길로 명명했다. 이후로도 해당 사업을 통해 보은군에는 한화길, 증평군에는 두산로(두산전자)가 생겼다.

박병철 교수는 “기업명을 도로명으로 사용하는 것은 확대돼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일자리 창출은 다른 무엇보다 가치가 있는 일이다. 일자리를 제공하고, 지역경제의 큰 축을 담당하는 기업의 이름을 도로명 등에 쓰는데 인색할 이유가 없다”며 “지역사회에서 해당기업의 역할이 쇠퇴하면 그때 주민들이 이의를 제기해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 기업이나 사람 이름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한편 다른 지역사례를 살펴보면 부산시는 르노삼성자동차 인근 도로를 ‘르노삼성로’로 명명했고, 광주시는 기아자동차 주변 도로에 ‘기아로’ 명칭을 부여했다.

기업인 명칭 도로로는 경기도 부천시에 유한양행 창업자의 이름을 붙인 ‘유일한로’가 있고, 울산시에는 정주영 회장의 호를 딴 ‘아산로’가 있다.

 

잠자는 지명위원회, 2010년 5월 열린 유일한 사례는?

내덕동 밤고개-반고개 논란, 심의에 부쳐…밤고개로 확정

 

충북도는 물론 도내 모든 시군이 ‘공간정보의 구축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지명위원회를 설치·운영하고 있지만 실제 지명위원회가 열려 관할구역 내 지명을 새롭게 짓거나 변경한 사례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로나 건축물 등 시설물은 각 개별사업에 따른 관련법에 의해 이름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도로명주소만 하더라도 별도의 위원회를 통해 도로명을 짓는다.

충북도 관계자는 “3년 임기마다 새롭게 위원을 임명하지만 2010년 이후로 지명위원회가 열리지 않았다”며 “그 전에도 열린 적이 없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청주시에서는 2010년 5월, 한차례 지명위원회가 열렸다. 당시에는 꽤 논란이 됐던 사건 때문이었다. 내덕동 한 주민이 잘못된 이름을 바꾸겠다고 수년간 수집한 관련 역사자료를 근거로 청주시에 반복적으로 항의하며, 마침내 십년 넘게 잠들어 있던 지명위원회를 깨운 것이다. 그 주인공은 김근태 씨로 ‘반고개’가 맞는 지명이라고 주장했다. 반고개는 고개가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다는 의미의 반(半)이다. 김 씨는 서울대 최명옥 교수가 제시한 근거를 들어 이를 주장했지만 지명위원회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지명위원으로 참여한 박병철 서원대 교수는 “시간이 오래돼 정확한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옛 지명이 율현리였고, 그곳이 밤나무와 관련돼 있다는 문헌기록도 뒷받침하고 있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관계자들은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고 기억한다. 이후로도 지명위원회는 서류 상에만 존재할 뿐 도내 지자체에서도 실제 운영된 사례가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