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라 행복한 은여울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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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라 행복한 은여울의 하루
  • 오옥균 기자
  • 승인 2017.05.31 15:1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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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교 80일, 사건사고 줄고 학생·학부모 관계도 회복
“저녁이후에도 책 보겠다” 요구에 도서관 야간 개관

3월 6일 입학식을 시작으로 40명의 학생들과 30여명 교사의 동거생활이 시작됐다. 개교 초기에는 절반 이상의 교사가 밤새 학교에 남아 노심초사했지만 이제는 정해진 교사만 있어도 될만큼 자리 잡아 가고 있다. 도교육청 대안학교 설립TF팀장으로 은여울중 산파이기도 한 박창호 교장은 지난 80여일의 크고 작은 기록을 자신의 휴대전화 영상으로 담아두었다. 박 교장의 휴대폰을 통해 은여울중의 지난 80일을 들여다보았다.

은여울중의 지난 80일은 한마디로 다사다난했다. 어렵고 힘든 일도 많았지만 교사들은 ‘희망을 보았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육성준 기자.

입학식, 그리고 1년 같았던 한 달

입학식부터 남달랐다. 3월 6일 입학식에서 선생님들이 반짝이 옷을 맞춰 입고 입학생들 앞에서 귀여운(?) 율동을 선보였다. 권위를 내려놓고 학생들에게 다가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학생들도 “욕도 안하고, 싸움도 안하겠다”며 학교생활에 의욕을 보였다.

3월 20일, 난장판이 된 교무실.

하지만 희망찬 기대는 얼마 가지 못했다. 선생님과 전교생이 함께하는 아침모임에서 학생끼리 싸움을 벌이기도 하고(3월 15일), 화를 참지 못한 학생이 화분을 쓰러뜨려 교무실이 엉망이 되기도 했다(3월 20일). 다음날은 119구급차가 학교로 출동했다. 다친 학생은 머리를 몇 바늘이나 꿰매는 부상을 입었다(3월 21일). 그래도 교사들은 아이들을 꾸짖지 않았다. 잘못한 일이지만 그 원인이 그 학생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데 초점을 맞췄다.

구급차가 출동하던 날, 제과제빵수업에 참여한 3학년 학생이 그럴듯한 쿠키를 만들었다. 배운지 얼마 안됐는데 꽤 잘 만들었다(3월 21일). 수업을 듣는 태도도 몇 주 만에 제법 진지해졌다. 선생님의 강의에 귀 기울이던 그 시간은 다름 아닌 영어시간이었다(3월 23일).

3월의 마지막날 아침모임 시간, ‘칭찬하기’의 주인공은 1학년 담임 김강혜 교사였다. 희망을 느끼게 해준 1학년 학생들을 칭찬하던 김 교사는 결국 아이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교사들에게 은여울에서 첫 한 달은 1년과 같았다.
 

3월 21일, 학교로 출동한 119구급차.

4월, 봄이 시작됐다

4월 3일, 학생들이 소나무 아래 잔디밭을 라이터로 태웠다. 바로 참도움집단이 소집됐다.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참도움집단이 열린다. 참도움집단은 관계 선생님과 학생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발생한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이다. 잘못을 질책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방법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열렸다.

4월 5일 학생 2명이 금연을 결심했다. 결심한 이유를 묻는 선생님께 아이들은 당당하게 말했다. “미래의 아들을 위해 끊겠다.” 선생님은 두 학생을 데리고 읍내 보건소로 향했다.

은여울에도 봄이 시작됐다. 화를 참지 못하고 자주 소란을 피웠던 학생이 아침모임에서 친구를 이야기한다(4월 14일). 닫았던 가슴을 열고 누군가를 맞을 준비가 된 것이다. 4월 17일, 한 교실에서 3학년 선배가 후배에게 ‘공동체철학’을 알려준다. 은여울에서는 공동체철학을 숙지해야 ‘새로미’를 벗어나 6개의 지위 중 두 번째인 ‘배우미’가 될 수 있다.

4월 28일, 낙오없이 전원 지리산 등반.

4월 28일, 지리산 등반길에 올랐다. 학생들을 믿었지만 교사들은 어느 때보다 긴장했다. 첫날 백무동에서 장터목까지 오르고, 이튿날 천왕봉을 향하는 2박 3일 코스였다. 학교 밖에서 3일을 지내는 일정이라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가 컸다. 교사들은 1차 인솔자, 2차 인솔자, 3차 인솔자 등을 정하고 상황에 대처할 계획을 세웠다. 낙오자가 발생할 때를 대비해서다.

결과적으로 기우였다. 2박 3일 산행은 한명의 낙오자 없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5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지난 3월, 박 교장은 교사들에게 부탁의 말을 전했다. “아이들이 변하기까지 2개월 반이 걸릴 것이다. 그 기간동안 아이들은 수없이 선생님들을 시험에 들게 할 것이다. 선생님에게 욕을 하기도 하고, 폭력도 빈번하게 벌어질 것이다. 그래도 믿어야 한다.”
 

5월 11일, 휴대전화 사용 토론 모습.

약속의 5월이 왔다. 교장선생님의 예언(?)대로 아이들은 변했을까? 어린이날, 어버이날, 대통령 선거 등 분주한 첫 주가 지났다. 5월 11일 아침모임에서 중대사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학교 내 휴대전화 사용 건이다. 지금까지는 월요일 입교 때 회수했다가 금요일 퇴교 때 나눠줬다. 이에 대해 학생들이 문제를 제기했고, 휴대전화 사용의 장단점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됐다. 결국 지위에 따라 주중에도 일정 시간 사용하는데 합의했다. 합의과정은 어느 집단보다도 민주적이었다. 학생들의 주장도 논리적이었다. 3월 아침모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졌다.

5월 19일 가족성장캠프가 열렸다. 모처럼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사연 없는 집이 있겠냐만 이들이 학교라는 울타리 속에서 한자리에 모인 것은 모두에게 특별한 경험이었다. 2개월 만에 부쩍 밝아진 아이의 모습에 부모는 미안한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는다. 한 학부모는 “아이들이 잘 자라려면 부모들을 가르쳐야 한다”며 학부모교육으로 달라진 자신의 모습에 내심 뿌듯해 했다.

이번 주부터 야간에도 도서관을 개방한다. 학생들의 요구 때문이다. “고등학교에 가려면 공부해야죠.” 아이들에게 목표가 생긴 것이다.

개교 76일째 되던 날, 한 학생이 자신의 SNS에 글을 올렸다. “이렇게 좋은 학교가 있을 수 있나. 잘못 많은 나도 받아주는 학교, 나를 용서하고 변화시켜주고 기다려주는 은여울, 하나뿐인 인생 은여울에서 행복하게 보내자.”

은여울 학생들은 여전히 사고뭉치다. 약속하고 결심했지만 지키지 못하는 게 더 많다. 그렇다고 은여울의 지난 80일을 부정할 수 있을까. 진심으로 잘못을 깨닫고, 변하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은여울중 학생들은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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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아름 2017-06-13 11:59:01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관점의 기자님 굿~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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