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길로 빠진 현상설계공모
상태바
샛길로 빠진 현상설계공모
  • 오옥균 기자
  • 승인 2017.06.30 09: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4년 관련법 첫 시행…건축가 창의성‧경쟁력 향상 기대
상위 업체,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진입장벽 오히려 높여

건축가의 창의력과 경쟁력을 높이고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도입된 공공건축물에 대한 현상설계공모가 취지와 달리 대기업 쏠림현상을 심화시키고 있어 발주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014년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 시행으로 건축설계업계에 전기가 마련됐다. 건축설계가 상품이 아닌 작품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의 주요 골자는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건축물 중 설계용역비 2억 1000만원 이상 사업은 의무적으로 ‘설계공모’를 진행하도록 한 것이다. 법 제정 이전에는 PQ(사전입찰심사)제도를 적용한 입찰방식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최저가 낙찰제를 적용했다. 다시 말해 설계의 완성도보다 책정가격이 우선됐고, 건축가 개인의 능력보다는 회사의 재무구조나 규모(실적·기술자보유수)에 의해 당락이 결정됐다. 이런 구조가 건축설계의 국제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국내 주요건물의 설계를 외국기업의 손에 맡기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자각에서부터 법이 만들어졌다. 설계공모가 창의력과 기술력을 높이는 수단으로 활용된 것이다.

정부가 참신한 건축가의 등단을 위해 도입된 설계공모 제도가 오히려 진입장벽을 높였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관련 없음.

설계공모 참여비용만 6000만원

법 시행 3년이 지난 현재, 업계는 오히려 진입장벽만 높였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일반적으로 전체 공사비의 5% 정도가 설계비다. 총공사비가 50억원이라면 설계비는 2억 5000만원 선에서 책정된다는 것이다. 이를 관련법에 적용하면 총공사비 42억원(설계용역비 2억 1000만원) 이상의 공공건축물은 반드시 설계공모를 해야 한다. 개인건축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A씨는 “작은 업체는 참여가 불가능하다. 흥덕구청사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인력이나 금전적 부담을 감당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청주시는 흥덕구청사 설계공모를 진행하면서 A1(594mmx841mm) 설계도 판넬 4장과 설계설명서 및 도면 20부(A3), 작품내용을 담은 CD 1장 등을 요구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 정도 규모에 참여하려면 5명이상의 건축사가 2개월동안 협업을 해야 한다”며 “요구하는 제출물을 만드는데 총 6000만원 정도 비용이 든다”고 설명했다.

소규모 설계업체가 감당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공공건축물의 경우 당선작 외에도 우수작과 가작을 뽑아 상금을 통해 약간의 비용을 지원하지만 순위 안에 뽑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흥덕구청사의 경우 공모 당시 우수작(1개)에 상금 3000만원, 가작(2개)에 상금 100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했지만 출품작이 적다는(4개) 이유로 가작은 선정하지 않았다.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 시행 후 충북도·도교육청·청주시 등 도내 공공기관이 발주한 공공건축물 설계용역은 상위업체 서너 곳이 독점하는 구도로 흘러가고 있다. 대부분의 중소업체는 참여를 포기했다. 도내 업체 가운데 한번이라도 설계공모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업체 수도 손에 꼽을 정도다.

 

상위 5개 업체가 일감 싹쓸이

상위업체에 일감이 집중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지역가점’ 때문이다. 도내에서 발주하는 모든 설계공모에 지역가점이 반영된다. 타지역업체가 도내업체와 공동 참여할 경우 참여비중에 따라 최대 5점의 가점을 준다. 1·2점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기 때문에 타지역업체라면 도내업체와 손잡는 것은 필수조건이다. 한 건축사는 “당선될 가능성이 높은 업체와 손잡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공동참여업체 또한 상위 5개 업체들”이라고 말했다. 이래저래 상위업체들만 참여하는 구조로 굳어진 것이다.

윤승현 새건축사협의회장은 “설계공모는 최저가입찰 등 이전 방식과 비교하면 분명히 개선된 제도”라며 “소규모 건축사무실도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심사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도 하나의 장치다. 윤 회장은 본지와 전화인터뷰에서 3년전 설계공모에 참여한 일화를 소개했다. “우리 회사도 작은 업체다. 3년전 15억원 규모의 설계공모가 있었는데 당시 80군데가 참여했다”며 “공모 취지를 만족시킬 자신이 있었다. 또한 발주처가 공정하게 심사할 것이라는 신뢰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업체들도 참여했을 것이다. 결국 우리가 당선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나라 건축시장은 연간 150조원이다. 그중 20%가 공공프로젝트다. 20%만이라도 주민들에게 환영받을 수 있는 시설이 들어선다면 삶이 달라질 것”이라며 “근본적인 해결책은 발주시스템이다. 발주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흥덕구청사 로비 의혹 어디서 터졌나?

뒤늦은 문제 제기, 인사 앞둔 청주시에 쏠린 시선

 

한 지역 건축사는 본보와 인터뷰에서 “10년 전 일”이라고 전제하며 “당시에는 여러 형태로 횡행했다. 직접 봉투를 건네기도 하고 심사위원에게 연구용역을 주는 것으로 사례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관행처럼 행해지던 설계업계 로비가 현재진행형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업계가 이번 경찰 내사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업계의 또 다른 궁금증은 누가 경찰에 의혹을 제기했느냐는 것이다. 한 건축사는 “경쟁업체가 문제 삼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는 “경쟁업체라면 해당 공모에서 2등이나 3등으로 떨어진 업체일 텐데 그렇다면 당시에 문제를 제기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는 첫째, 시기의 문제와 둘째, 업체를 특정 지을 수 있다는 점에서 경쟁업체 가능성을 낮게 점치고 있다.

누구로부터 시작됐는지 궁금증이 커지면서 발원지로 청주시를 지목하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경찰이 내사를 시작한 시기가 6월이라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6월은 7월 정기인사를 앞두고 인사평가를 진행하는 기간이다. 경찰 내사가 인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지난 27일 청주시는 서기관 11명, 사무관 51명 등 62명에 대한 전보인사를 단행했다. 청주시는 오는 7월 10일까지 정기인사를 마무리 짓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