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안길을 걸으면서 ‘상전벽해’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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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안길을 걸으면서 ‘상전벽해’를 느낀다
  • 충청리뷰
  • 승인 2017.08.10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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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서점과 문방구는 다 어디로 갔을까
쟝글제과·청원제과·영재서림·호수그릴 사라져

청주길 사용설명서(5)

윤석위 시인, 청주흥덕문화의집관장

청주 성안길 입구라 하면 1914년 쯤에 헐린 청주성 북쪽을 말한다. 성안길 입구엔 오래 전 히아신스예식장과 쟝글제과, 영재서림이 있었다. 지금은 그 이름과 건물도 사라져 잊히고 우리 모임이 세운 ‘청주읍성 북문터'비가 세워져 남았다. 여기서부터 남쪽으로 청주약국까지 약 800m가 성안길이다.

일본 점령자들은 저희들 입맛대로 4~5m 높이의 성과 성문을 헐고 길을 냈다. 남북을 이어 본정통(혼마치도리)이라 하고 남문 쪽에 남문로1가, 남문로2가를 洞으로 만들고 북문 쪽에 북문로1가, 북문로2가와 성문 밖에 북문로3가를 나누고 洞으로 만들었다. 북문로3가동의 끝이 오정목(五町目-고초메)이다. 지금은 성 안쪽과 바깥 동 몇 군데를 합해 성안동으로 묶었다. 시내의 거주자가 대폭으로 줄어든 탓이다. 읍성 안쪽에 사는 인구는 거의 없고 그저 상업지역으로 기능할 뿐이다.

청주읍성도를 새겨놓은 돌.

성안길 안에는 80년대까지 그래도 몇 채의 주거용 주택들이 남아 있었다. 좁다란 골목길 안에 누구네 집(크고 작은 내 동무들의 집)들이 숨어 있었는데 어느 때인지 시나브로 헐리고 새 집들이 지어졌다. 거기에 살던 동무들은 새들이 자라 집을 떠나듯 서울로 또는 머나먼 외국으로 떠나갔다. 지금도 성안길에 접한 작은 골목에는 옛 시골 마을 길처럼 굽잇길이 여럿 남아 있다. 한 발 안쪽으로 발을 딛기만 해도 정겨운 길이다.

그 중 천일목욕탕 골목은 지금도 좁고 굽은 길이다. 천일탕은 1973년 입영전날 기념목욕을 했던 곳이다. 그 천일목욕탕은 여관과 음식점으로 변했고 골목 안쪽으로 안면도칼국수집이 구부러지는 길 한 가운데서 오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언제였던가. 내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는 이 골목 담벼락 곳곳에 여러 컷의 연속 만화가 그려져 남아있는데 누군가 재미로 이야기를 만화로 그린 것이리라. 골목에 들어서면 슬그머니 웃음 짓게 하던 그 만화가 있던 이 골목을 기억한다.

백년 전통의 맛집이 없다.

이 거리엔 청주에서 제일 큰 빵집 두 곳이 있었다. 청원제과점과 쟝글제과점이다. 청원제과는 오래된 내 동무집 가게였고 70년쯤 생긴 쟝글제과는 이십년을 넘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두 곳 모두 내부가 고급스러워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기에 뭇 남학생들이 여학생들의 꽁무니를 좇아 부지런히 들락거리던 곳 이었다. 이들 빵집의 소멸은 전국적으로 유명브랜드의 제과점이 점령군처럼 들어서 토종 브랜드들을 밀어낸 시류 탓이다.

규모가 큰 대형서점이던 영재서림은 일선문고로 이름을 바꾸더니 어느결에 사라졌는데 그 규모도 컸고 책을 사는 것보다 새 책 구경이 그저 즐겁던 어린 시절의 즐겨찾던 내 휴식처였다. 지금 그나마 옛 한국은행 자리에 새로 지어진 건물의 지하에 커다란 중고서점이 새로 생겨 청주가 교육도시라는 체면을 지켜주고 있다.

산업은행쪽 길가 벽면에 청주읍성도와 청주 성안길 유래를 돌에 새겨놓았는데 나는 몇년 전 청주시로부터 성안길 유래에 대한 안내문안을 지어달라는 부탁을 받았었다. 돌에 새긴 유래가 거니는 사람들의 뇌에 새겨졌으면 싶다.

성안길 번화가에서 문구점들이 사라진 것도 아쉬운 일이다. 오래전 부총리를 지낸 분 집의 문구점이던 홍문당과 한국은행쪽 문화 유씨네 문화당도 이 거리에서 밀려 사라진 문구점이다. 서점과 문구점의 소멸은 문화의 쇠락과 관계가 깊다.

철당간 인근에 있던 상업은행건물 옆 경양식집 ‘호수그릴’이 청주 유일의 양식당이었는데 언제인지 문을 닫았다. 그 곳을 운영하던 이가 봉명동에 큰 중식당을 열었다. 청마루 중식당이라던가? 성안길 뒷길에 성업하던 몇몇 중국음식점들이 교통 좋은 변두리로 크게 지어 옮기는 것도 한때 유행이어서 그러려니 하다가도 백년 전통의 맛집을 바라는 마음에는 여간 서운함이 큰 게 아니다.

그 동안 청주에 없던 대형백화점이 서청주 공업지역인근에 영업을 시작하고서 성안길은 큰 홍수가 지난 듯 큰 변화가 있었다. 우체국옆 에이피엠과 산업은행앞 흥업백화점이 연달아 문을 닫았고 오래전 현대극장을 헐고 세워진 영플라자도 주인이 바뀌는 등 격변기를 건너왔던 것이다. 그러는 세월을 지나며 나도 내 동무들도 철당간처럼 늙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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