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영기자의 '무엇'>누구를 위한 ‘폴리스’인가
상태바
<박소영기자의 '무엇'>누구를 위한 ‘폴리스’인가
  • 박소영 기자
  • 승인 2019.02.13 11:01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엄마는 종종 말했다. 1976년 17전투비행장이 건설되면서 청주로 이사를 나왔다고 했다. 외갓집은 당시 땅이 많아 헐값에 보상을 받았어도 청주시 하복대에 건물 3채를 샀다. 그 중 두 채는 큰 외삼촌이 보증을 잘 못 섰다가 날려버렸다. 그 일로 외삼촌은 병을 얻었고, 일찍 돌아가셨다. 엄마의 고향에는 ‘민마루 12동네’가 있었다. 광해군 때부터 500년 넘게 민씨들이 모여 살았다. 비행장 건설로 조상의 묘가 파헤쳐 지던 날 그 날 그 자리에 있던 남자들은 모두 요절했다는 얘기도 떠돌았다.

민씨 집성촌은 그 후 자본의 논리를 따라 흩어진다. 전투비행장 조성으로 고향을 떠나 인근으로 쫓겨난 이들은 다시 91년 청주국제공항이 들어서면서 입동리로 이주했다. 두 번의 이주로 주민들은 겨우 집만 건졌다. 이주자 단지가 조성됐지만 마을 주민들은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해 새집을 얻기 위해 빚을 져야 했다. 가난한 살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또 충북도와 청주시는 입동리 주민들에게 에어로폴리스 항공산업단지 조성사업을 해야 하니 ‘세 번째’이삿짐을 싸야 한다고 통보했다. 이 기막힌 사연이 연일 보도되고 있지만 사업 주체에서는 달리 해법이 없다고 말한다.

1970년대 만들어진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법률을 들여다보면 주민은 철저한 ‘을’이다. 입동리 주민들은 감정평가에 따른 보상액 외에 이주정착금 1200만원, 이사비용 500만원, 농지경작피해보상금 정도를 받는다.

청주테크노폴리스 지구단위 개발로 강제 이주하는 내곡동, 외북동, 화계동, 송절동 주민들 또한 같은 처지다. 주민들의 재산권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이 동네들의 공시지가는 수십 년 째 오르지 않았다. 지자체는 헐값에 주민들의 땅을 수집하고 산단에 들어올 기업에 ‘저렴한 값’에 파는 땅 장사를 앞장서서 하고 있다. 그 이익이 어떻게 분배되고 있는지 시민들은 알 길 조차 없다.

민마루 12동네 사람들은 이제 입동리에 32가구가 남아 연일 대책회의를 하고 있다. 청주테크노폴리스 지구단위 개발로 인해 쫓겨날 위기에 처한 주민들도 현수막을 내걸고 “여기서 나가느니 차라리 죽어서 뼈를 묻겠다”라고 절규하고 있지만 사업시행자인 청주시와 충북도는 그들의 목소리를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

청주테크노폴리스가 들어서기 직전 외북동의 작은 농로를 취재차 거닌 적이 있었다. 지금은 베어졌을 마을에 심겨졌던 벚꽃 나무. 나무 아래서 터무니없는 보상금으론 차마 월세방도 구하지 못할 것 같다며 눈물을 떨구던 촌부의 얼굴을 잊지 못하겠다. 이 동네엔 종중 땅위에 대대로 집을 짓고 사는 이들이 많았다. 태어난 집에서 이웃들과 농사짓고 평화롭게 살았지만 그동안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산단 개발로 하루아침에 집을 잃게 됐다.

지자체가 나서서 지역민을 내쫓는 이 이상하고도 폭력적인 산단 개발 사업, 언제까지 우리는 지켜만 보고 있어야 하나. 마을의 공동체가 깨지고,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이들의 상실감을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을까. 청주테크노폴리스 지구단위 개발로 생명 연장을 한 청주시 공무원들에게 묻고 싶다. 진짜 누구를 위한 ‘폴리스’인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풍도 2019-02-18 00:03:51
간만에 기사 같은 기사를 접했습니다.
맞습니다!! 공존 없는 개발은 난개발입니다. 지금이 1970~80년대도 아니고~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