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입구 옥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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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입구 옥순봉
  • 충북인뉴스
  • 승인 2005.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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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강 물길을 따라서<6>

   
▲ 도화리와 옥순봉
금수산 자락의 능강구곡을 지나자 청풍과 단양의 경계인 옥순봉이 눈앞에 나타났다. 금방이라도 와르르 쏟아져 내릴 것같은 절리된 바위들이 하늘을 떠받들며 첩첩이 쌓여있고, 그 아래는 수백척 깊이의 시퍼런 물이 옥순봉을 감아돈다.

물과 산과 하늘과 내가 일체되어 공(空)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퇴계 이황 선생이 단양군수로 재임할 때, 뱃놀이를 나갔다가 옥순봉의 절경에 반하여 그 길로 청풍부사에게 찾아가 옥순봉을 단양으로 넘겨달라고 청했다 한다.

이에 청풍부사가 “옥순봉이 작은 물건도 아닌데 가지고 갈 수 있겠소?” 하자 퇴계 선생은 돌아오는 길에 옥순봉에 당도하여 ‘단구동문(丹邱東門)’이란 네 글자를 바위에 새기니 이후 이곳이 단양의 관문이 되었다고 한다.

   
▲ 옥순봉의 모습
옥순봉은 소금강이라는 별칭도 함께 가지고 있는데 「동국여지승람」에는 연산군 때의 문신 김일손이 이곳의 비경을 즐기며 협곡의 절경을 극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옥순봉의 아름다움은 김삿갓이 친구 김남포의 집에 들렀다가 지었다는 한 수의 시에도 전하여 온다.

천하 명산은 옥순봉이요 세상 괴한은 김남포라 사각 송반 죽 한끼에 천광운영 공배회라.

   
▲ 단원 김홍도가 그린 옥순봉
하루는 김삿갓이 옥순봉 밑에 살고 있던 친구 김남포를 찾아왔는데 생활이 어찌나 빈곤한지 멀리서 찾아온 친구 김삿갓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을 지어주지 못하고 죽을 쑤어 주었다. 한데 그 죽이 얼마나 묽던지 하늘의 별과 달이 죽그릇에 비치었다. 이에 김삿갓이 수저를 들다 말고 시를 읊으니 두 사람이 마주 보며 웃음으로 회포를 풀었다는 이야기이다. 

 

 

1. 이황(1501-1570) :
조선시대의 대학자로 호는 퇴계요, 시호는 문순이다.최초의 사액인 ‘도산서원’을 지었으며, 주자의 이기이원론 계승 발전시켰다.「성학십도」 「사단칠정분리기서」 「무진육조소」 「도산십이곡」 외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2.「하늘과 땅의 交驩」의 시인 김기태   
 
옥순봉 근처의 수산면 다불리는 시집 「하늘과 땅의 交驩」를 낸 김기태 시인의 고향이자 유택이 있는 곳이다. ‘남한강문학’ 동인으로 신경림 등과 함께 활동하기도 했던 김기태 시인은 문단의 풍운아였던 김관식으로부터 ‘천성의 시인’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재능이 돋보였던 사람이다. 그는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창작에 열의를 보였으나 문우들과 타인을 위한 선심으로 늘어난 빚을 감당하지 못해 사표를 제출하고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하지만 직장과 사회생활에서 모두 실패하고 1975년 고향인 다불리로 돌아갔다. 2년뒤 충주에서 행려객사한 것을 친지들이 수습해 고향 앞산 흑구재가 있는 백봉에 안장했다.

3. 수산면 다불리 :
청풍군 근남면 다불산리라 불렸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합시 수산면에 편입되면서 다불리라 함. 99년 11월 현재 8가구 19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이장 : 김영철 / 0443-647-3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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