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안의 청풍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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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안의 청풍향교
  • 충북인뉴스
  • 승인 2005.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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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시<4>

청풍향교는 현재 제천시 청풍면 교리 문화재단지에 있다. 고려 충숙왕(1332년∼1339년)때 물태리에 처음 지은 것을 정조 3년(1779)에 청풍면 교리로 옮겼다. 교리는 원래 목동골이라고 했는데 물태리에 있던 향교가 이 동네로 옮겨오면서 교리로 바뀌었다고 한다.

   
▲ 정면에서 본 청풍향교

전설에 따르면 물태리에 있던 향교를 옮기기 위해 장소를 물색하던 중 청풍의 개들이 한벽루에서 교리를 향해 큰소리로 짖어댔다고 한다. 그래서 교리 마을에 와보니 좋은 명당 자리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는 이미 인동 장씨 집안의 묘가 자리잡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군수의 명으로 묘를 이장하고 향교를 옮겼다고 한다.

고종 19년(1882)에 부사 윤제홍이 중수하고, 순종 원희 원년(1907) 7월에 의병대장 이강년이 왜군과 격전하는 바람에 모두 불에 타버렸는데, 1926년 직원(直員) 김진하, 면장 유재승이 다시 지었으며 1985년 말 충주댐 수몰을 피해 청풍문화재단지 남쪽 언덕 아래로 옮겨졌다.

   
▲ 솟을지붕의 내삼문
청풍향교의 건물구조는 지형의 지세에 따라 서남향으로 3단으로 되어 있다. 홍살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첫째 단에 소슬삼문의 외삼문이 있고, 이 외삼문을 들어서면 좌·우에 맞배지붕으로 된 동재·서재가 마주 보고 있다. 계속하여 자연석으로 된 계단을 오르면 명륜당이 한 단 높게 자리잡고 있다.

학생들이 기거하는 동·서재보다 스승이 계시는 명륜당을 한 단 높게 지은 것은 내려다보며 학생들을 지도하기 위함과 사제지간의 상하관계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좌측에는 제기고가 있다. 다시 명륜당이 있는 둘째 단에서 자연석으로 축조된 계단을 올라서면 내삼문이 있으며 마당을 지나면 대성전이 있고 좌우에 동무·서무가 위치하고 있다.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형식인 것이다.

   
▲ 측면에서 본 대성전 모습. 좌우에 동무와 서무가 있다. 제향공간이어서 그런지 명륜당과는 달리 약간의 단청을 입혔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4칸으로 내부는 통칸의 개방형 평면으로 우물마루를 깔았는데 정면 3칸에 모두 쌍여닫이 띠살문을 달았다. 비교적 큰 규모로 된 7량집으로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명륜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정면 4칸 중 양쪽 1칸씩은 온돌방이고, 중앙 2칸은 통문으로 처리하여 우물마루를 깔고 있다. 상부는 홑처마 팔작기와지붕을 이루고 있다. 동무와 서무는 각각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맛배집이고, 소슬삼문에 홍살문도 세워져 있다.

청풍향교에는 훈도(종9품)가 배치되고, 교생은 50명이었다. 공자 신위를 비롯하여 5성, 4현, 14선현을 향사하고 있는 청풍향교는 충북에서는 꽤나 규모있는 향교에 속한다. 이것은 예전 청풍의 위상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다른 향교에 비해 산간벽지에 위치해 재정이 부족하고 관리에 어려움이 많으나 금성면·청풍면·수산면·덕산면·한수면 등 5개면 유림들이 찬조금을 내어 향사를 이어오고 있다.

   
▲ 명륜당. 단청을 입히지 않아 고고한 맛이 절로 난다. 좌우에는 동재와 서재가 있다.

명륜당 강당에 걸려있는 문묘중수기(1964)·향교수집기(1949)·명륜당 중수기(1779)·청풍향교중수서·교궁수집기·교궁수집서·교궁제기완보기(校宮祭器完補記) 등 12개의 현판들이 옛고을 청풍향교의 연혁을 잘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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