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서보다는 망서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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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서보다는 망서가 어떨까
  • 충북인뉴스
  • 승인 2005.07.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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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진(관음사 주지)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면서 계곡과 바다는 연일 피서객들로 북적이고 있다고 한다. 유명 피서지로 향하는 도로는 정체현상을 보이고, 국제적인 휴양지로 떠나는 사람들로 인해 공항 또한 발 디딜 틈이 없다는 소식이다.

어디 그 뿐인가. 도심의 무더위를 피해 시민들은 강변으로 몰리고 열대야 현상으로 잠 못 드는 밤이 이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폭염대란’이다. 온 국민이 너나 할 것 없이 더위를 피해 어디론가 떠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산천 어디에 간들 더위가 없을 것인가? 다만 산과 바다가 더위를 식혀 줄 뿐이다. 그곳을 벗어나면 다시 폭염의 현장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더위는 피해 다닌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차라리 피서(避暑)보다는 망서(忘暑)가 어떨까. 폭염을 피해서 도망 다니기 보다는 더위의 중심에 서 있으면 오히려 더위를 잊을 수 있을 것이다.

알고 보면 더위의 실체는 주관적 개념이 우선하기도 한다. 부채질을 하는 손보다 먼저 덥다는 인식이 마음속에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더 힘들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땀 흘리는 무더운 여름을 달갑지 않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만약 여름이 무덥지 않다고 생각해보자. 인체의 면역기능은 약화될 것이고, 농작물은 각종 병충해에 시달리지 않겠는가. 한편으론, 이런 무더위 때문에 곡식은 알차게 영글고 우리의 건강 또한 튼튼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누구나 더위의 순기능보다는 역기능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피하고 도망치려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즉 더위는 피할 대상이 아니라 수용해야 할 현상이라는 것을 인식할 때 비로소 더위를 이길 수 있다. 여름날이니까 더울 수밖에 없다는 기본적 인식의 무장이 필요하다.

그리고 현재의 상황을 절대적 개념으로 대입하는 방법도 무더위를 이겨 낼 수 있는 지혜이다. 예를 들면, 땀이 줄줄 흐를 때 시원한 에어컨을 떠올리지 말고 더 뜨거운 용광로를 생각한다면 현재의 더위는 별 것 아닐 것이다.

중국의 동산스님에게 어느 사람이 ‘어떻게 하면 무더위를 이길 수 있습니까?’하고 물었단다. 그 때 동산스님의 가르침은 ‘그대 자신과 더위가 하나가 되어라’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가장 완벽한 피서법을 제시한 셈이다. 나 자신과 더위가 두 개의 일로 떨어져 있으면 더위는 언제나 외부의 조건이 되어 그 일에 끌려 다니게 마련이다. 그래서 더위와 나 자신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상대적 개념을 떠나라는 가르침이다.

더위를 인정하는 사람은 짜증이 덜 난다. 그렇지만 더위를 거부하고 피해 다니는 사람은 여름 언제나 무덥고 괴롭다. 나의 경우, 더울 땐 등산을 택하는 쪽이다. 흠뻑 땀에 젖고 나면 무덥다는 생각은 사라지고 오히려 시원한 기분이 든다. 땀을 흘리지 않으려고 하면 상대적으로 더운 마음이 일어나고, 땀을 흘리려고 작정하면 더위는 마음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래서 온도계의 기온은 수치일 뿐 마음의 기준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여름나기는 더위를 잊고 지내는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더위를 이기는 방법으로 피서를 택하고 있지만 옛 선사들은 이처럼 망서의 방법을 실천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위를 피하는 것은 자신의 몸과 마음이 주체가 아닌 환경의 힘을 빌리는 수동적 입장이지만, 더위를 잊는 것은 몸과 마음이 주체가 되어 환경의 힘을 이끌어 가는 능동적인 방법을 말한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현대문명이 개발한 선풍기나 에어컨이 오히려 부채질보다 못하다는 사실이다. 한쪽의 더위를 식히기 위해 다른 한쪽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고, 또한 열을 식히려고 다른 열을 사용하는 것은 전체적으로 볼 때 자원의 낭비이다.

더위를 이기는 데도 조화와 균형이 필요하다. 우리 자신이 더위와 하나가 된다면 더위는 더 이상 기승을 부리지 못할 것 아니겠는가. 그대는 지금 더위와 하나가 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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