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의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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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의 증인
  • 이재표 기자
  • 승인 2005.07.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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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표 정치부 차장
   
‘지역사회의 증인’이라는 다소 거룩함(?) 마저 느끼게 하는 두 어절의 표현은 1946년 3월1일 ‘국민일보’라는 제호로 창간된 뒤 1954년 충북신보를 거쳐 1960년 8월15일부터 충청일보로 제호를 고친 충청일보사의 사시다.

1970년대에는 충청방송(주)를 모태로 한 청주문화방송(주)의 사장을 충청일보사장이 겸했으나 1981년 언론기본법에 따라 분리되기도 했다.

1950년대 초반 몇차례 오식(誤植)사건으로 폐간되기 했고 2004년 10월부터 시작된 직장폐쇄와 정리해고로 신문발행이 중단됐지만 마침내 환갑을 바라보는 충청일보의 역사를 간단히 정리해 보면 이와 같다.

그런데 충청일보의 신문발행이 중단되고 법인 청산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충청일보의 제호를 둘러싼 구설이 심상치 않다. 출향인사인 이규택씨가 운영하는 G7소프트가 제호를 비롯한 시설 전반을 15억원에 매입했다는 소식이 지역을 술렁케 하더니 결국 ‘충청인터미디어’라는 신설 법인의 대표이사인 임재업 전 편집국장 앞으로 발행인 변경등록을 마쳤다는 것이다.

당초 제호를 매수한 G7소프트나 ‘제호를 찾아오겠다’며 새 신문의 제호를 ‘새충청일보’로 결정한 충청일보 노조는 ‘닭 쫓던 개’의 형국이 됐고 상황에 따라서는 법적인 공방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충청인터미디어가 이중계약 시비를 불러일으키면서까지 발행인 변경등록을 마무리한 것은 58년의 역사가 빛나는 충청일보라는 제호를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개정된 신문법 시행령이 7월28일부터 제호 양도양수에 의한 발행인 변경을 허용치 않는다는 점에서 영 설득력이 없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누가 발행하든 충청일보는 나온다’는 식으로 제호지키기에 집착하는 양상은 언론의 수요자인 독자들을 설득시키기에 너무나 궁색하다. 충청일보라는 제호의 가치는 ‘코카콜라’의 제호가 지니는 상업적 가치와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58년의 역사성으로 인해 ‘지역사회의 증인’이라는 사시가 어색한 것은 아니지만 진정으로 증인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평가는 냉정할 수 있다. 오히려 증언자로 거듭나겠다는 미래의 다짐이 필요한 시점이다. 충청일보라는 제호를 쟁취했다고 해서 신문의 상업적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은 더욱 더 자명하다.

그래서 충청인터미디어 관계자가 최근 모 지방 일간지에 ‘충청일보라는 제호로 합병을 제안했다’는 뒷얘기는 표현할 수 없는 씁쓸함에 젖게 만든다. 단지 충청일보라는 제호를 살리기 위해 충청일보를 지키고 사시를 살리고자 했던 주체들과 영원히 등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분명 충청일보라는 제호 속에는 실존이 없다. 오히려 ‘지역사회의 증인’이라는 사시 속에 실존이 있고 ‘언론의 정신’이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지역사회의 증인으로 자리매김하고자는 기자들과 기자정신 속에 충청일보의 실존이 있다.

충청일보든 신충청일보든, 새충청일보든 간판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모두들 버려야 한다. 독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언론의 홍수 속에서 날카로운 눈빛을 빛내는 진정한 ‘지역사회의 증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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