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린대로 거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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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린대로 거두리라’
  • 권혁상 기자
  • 승인 2005.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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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상 충북인뉴스 대표
“어찌 악의 씨를 뿌리고 생명의 열매를 기다리느냐, 뿌린대로 거두리라”

출근길 라디오 방송을 타고 전해 온 금언이 느슨한 핸들을 조여잡게 했다. ‘콩심은 데 콩나고, 팥심은 데 팥난다’는 속담을 생각하면 당연지사일 뿐인데. 하지만 성경구절의 ‘뿌린대로 거두리라’는 가슴 한켠에 오금을 박는 듯 울림이 크다. 인과응보의 ‘심판의 날’을 기다리라는 경고로 들리기 때문인가.

18일 아침 사무실에서 지역신문을 펼쳐본다. 1면 톱기사는 ‘알맹이없는 고용안정계획서 반발’이란 제목의 하이닉스 하청노조 관련 내용이었다. 사회면으로 눈을 돌리자 ‘임광수 회장이 법정에 출두해야 하는 7가지 이유’란 제목의 김승환 교수 서한문을 보도한 박스기사가 자리잡고 있었다.

작년부터 10개월째 노사분규가 계속되고 있는 하이닉스&매그나칩 사태는 지난 7월 대전지방노동청이 회사측의 ‘불법파견 근로’ 사실을 인정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듯 했다. 하지만 노동부의 불법판정에 대한 회사측 입장을 밝힌 ‘고용안정계획서’는 상황을 다시 원점으로 돌렸다. 불법파견 여부는 법원에 재판을 청구해 최종 판단을 받겠다는 것이고, ‘적법한 도급운영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알맹이없는 결론을 내렸다.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노동자들에 대한 직접고용 문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고용안정계획서’라는 이름으로 ‘고용거부계획’을 명백하게 드러낸 것이었다. 하청노조원들의 실망은 분노로 바뀌었고 한동안 잠잠했던 하이닉스 정문앞 집회가 17일 밤늦게까지 진행됐다. 법원의 최종심까지 기다린다면 앞으로 하이닉스&매그나칩 사태는 2년이 갈지 3년이 갈지 기약할 수 없는 형편이다.

역시 혹독한 노사분규 과정을 겪은 충청일보 노조가 지난 15일 ‘새충청일보’라는 제호로 창간호를 발간했다. 진보적 지역신문을 표방한 새충청일보는 도민주 공모를 통해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전 사주인 임씨가 법인청산이라는 초강수로 노조를 압박했지만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새 회사를 만들고 재창간한 것이다.

특히 임씨는 최근 충청일보 전 간부직원 명의로 설립된 법인의 성격을 둘러싸고 의혹을 사고 있다. 충청일보 제호 인수자와 갈등설이 나도는 가운데 돌연 전 전무, 편집국장이 새로운 언론 법인체를 설립한 것이다. 사무실 주소도 전 충청일보 사옥 건물과 일치해 위장폐업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하이닉스는 지난해 순이익이 2조원에 육박해 워크아웃을 조기졸업했고, 올해는 임원들이 스톡옵션으로 수십억원의 차익을 남긴 회사다. 충청일보 전 사주인 임씨는 임광토건이라는 1군 건설업체를 운영하는 충북 최고의 재력가로 꼽히고 있다. 충북 최대 매출의 회사와 최고의 재력가가 한때 자신들이 고용했던 노동자들과 겪고 있는 분쟁의 양상은 착잡하기만 하다.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 전환을 원천봉쇄하고 있는 한 하이닉스는 스스로 노사문화 우수사업장이란 영예를 반납해야 한다. 58년 전통의 지역 신문사를 ‘가족 주주총회’를 통해 하루아침에 문닫은 임씨도 ‘충북협회 회장’의 영예는 ‘멍엷로 보일 뿐이다.

그때 그 시절, 자신의 부와 명예를 키워준 일꾼들이었던 그들이 왜,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변했을까. 그동안 사용주들은 열심히 콩밭을 일궜는데, 어떤 연유로 저렇게 팥이 무성하게 자라난 것일까. 정작 밭주인들은 그 원인을 나몰라라 하는 입장이다. 동네 사람들은 다 아는데 밭주인만 모른다니 답답할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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