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질 저하 부르는 새벽 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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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질 저하 부르는 새벽 배송
  • 충청리뷰
  • 승인 2019.08.29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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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배송은 포장재가 더 많고 외식은 서비스 비용 커
사회 급성장 하면서 장례문화도 바뀌어, 일회용품이 장악일회용
신 동 혁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신 동 혁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왜 우리는 일회용품을 사용하는가? 보통은 의식하지 못한 채 곁에 있으니 사용한다. 특별히 내가 환경과 삶, 생명체 간 연관된 문제를 의식하고 해결하려 노력하지 않으면 일회용품이 끊임없이 삶 속으로 들어온다. 식당에 가면 물수건이 거의 자동으로 나온다. 대개는 일회용 물티슈다. 식당 주인 입장에서 보자면 일회용품은 일상이 되어버려서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는 자구책이란 측면이 있고, 비용 절감을 위한 경제적 측면도 있다.

여기에 환경 측면은 끼어들 여지가 없어 보인다. 즉 손님의 요구는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차원이고, 주인이 일회용품을 제공하는 노력은 치열하게 경쟁하는 경제구조 속에서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생존권 차원이어서 ‘네 문제도 아니고, 내 문제도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다. 즉 누구의 책임도 아니지만 현실에 심각하게 존재하는 보편적 문제인 일회용품 사용은 한 개인의 노력을 쉽게 무력화 한다. 이때 제도적, 법적으로 일회용품 사용 금지라는 새로운 경쟁조건을 만든다면 같은 생존경쟁을 해도 최소한의 사회적·환경적 기본권 위에서 더욱 나은 격조 있는 경쟁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시민들의 정치·사회의식이 환경문제 해결에서 중요한 열쇠가 된다. 대의민주주의 정치에서는.

새벽배송으로 위협받는 생존권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내가 선택하는 경우인데, 그 선택 또한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이뤄지는 측면이 존재한다. 풍요롭고 과학기술이 발전해서 개인의 선택이 존중받고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자본이 사회 발전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상태에서 선택은 본질적으로 ‘강요된 것이며 획일적인’것일 수밖에 없다.

또 생산력과 사회의 발전은 풍요와 더불어 삶의 속도와 경쟁의 심화를 낳아 어쩔 수 없이 외식하게 되고, 새벽 배송을 클릭하게 만든다. 새벽 배송, 외식은 삶을 우회하는 것으로 경제적으론 성장으로 귀결되지만 사회적, 환경적으로는 비용 증가와 삶의 질 저하로 이어진다. 빠른 삶의 속도와 경쟁의 압박으로 인해 너무 피곤해 새벽 배송을 시킬 수밖에 없지만, 내용물보다 포장재가 더 많다. 외식은 내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물 값보다 그 외 서비스, 건물임대료, 설거지 비용 등이 더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발전과 성장을 추구하는가? 근본적으로 풍요롭고 행복한 사회, 그 속에서 각자가 추구하는 다양한 가치가 구현되는 삶을 위해서 아닌가? 즉 경제 성장은 목적이 아니라 삶을 위한 수단이다. 그런데 성장과 경제적 가치가 다른 사회적 가치들을 압도하고 성장만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사고하는 지금, ‘경제성장’이란 수단이 궁극의 목적인 ‘삶’을 질식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발전과 성장은 반드시 삶과 환경의 질 악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가? 지금과 같은 시장 자유주의적 방식을 내버려 두는 한 벗어나기 힘든 필연적 결과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균등하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따라 불균등하게 배분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시장에 맡겨두는 것이 아니라 안전과 생명, 환경 등 사회적 기본권을 위해선 시장을 규제하는 사회의 민주주의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나와 환경, 생명을 위해 일회용품과 새벽 배송을 하지 않으면 거기서 일하는 사람의 생존이 위협받는다. 즉 나의 선의가 의도치 않게 타인의 생존을 위협한다면 이것은 문제다. 새벽 배송을 예로 들면 폐기물도 많이 나오지만, 새벽에 배송하기 위해 심야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이 그들이다. 그들은 생존 때문에 가족과도 함께 자지 못하고 건강에도 나쁘고 환경에도 바람직하지 않은 심야노동을 수행한다.

국가는 국민이 생존 때문에 기본권조차 보장되지 않는 노동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 나와 가족을 보호하고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기본권을 보장해줘야만 하고, 또 다른 나인 타인의 기본권도 같은 국민이기에 보장받아야만 한다. 즉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시장을 규제하고 제한해야 한다. 심야에는 모든 국민이 가족과 같이 잘 수 있어야 한다. 나의 권리와 타인의 기본권이 배타적으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전제가 되는 사회라야 환경문제도 삶의 문제도 해결 가능해질 수 있다.

삶이 이렇게 일회용품, 쓰레기 더미와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삶의 결과이자 연장인 죽음의 모습 또한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굳이 통계를 들먹이지 않아도 장례식장도 이미 일회용품이 장악했다.

조문 끝나고 남는 건 일회용품
우리 사회가 급성장하면서 장례문화도 바뀔 수밖에 없었다. 마을에서 모든 것을 준비하고 문상객을 접대하고 고인의 명복을 빌고, 고인은 장례 동안 그동안 신세졌던 이웃과 지인들에게 음식 대접으로 감사 인사를 한다. 보통 그렇게 치러지는 3일간의 장례는 고인의 덕행이기도 하고 고인의 명복을 비는 유족의 뜻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장례는 삶과 죽음, 사자와 산자 모두를 풍요롭게 했다.

 

그러나 지금의 장례는 어떤가? 유족을 조문하고 부의금을 내고 나서 상조회사에서 차려주는 음식을 먹고 내일 출근을 위해 서둘러 돌아가야 한다. 시장 중심의 자본주의사회에선 유족의 슬픔을 위로하고 고인의 뜻을 새기고 명복을 길게 빌 여유가 없다. 모든 것은 말 그대로 형식과 의례가 되어 버렸다. 사회가 변동하면서 이전 사회의 문화들은 껍데기만 남고 알맹이는 자본과 시장이 이윤으로 바꿔치기 하였다.

그래서 모든 것은 상조회사가 주관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장례를 치를 줄 아는 사람도 없다. 그렇게 조문이 끝나고 나면 남은 음식과 그것을 담았던 일회용 용기들만 남는다. 이제 배고픈 시절은 지나갔고, 지나친 풍요가 문제인 시대이다. 고인이 마지막으로 베풀 덕행은 이 세상에 더 뭔가를 남기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유족도 고인을 추모하고 명복을 비는 시간을 더 가지기 위해서는 장례를 간소하게 할 필요가 있다. 고인을 추모할 수 있는 사람들끼리.
이제 때가 되었고, 조건이 마련된 것 같다. 그래서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은 충북한겨레두레협동조합(상조협동조합)과 함께 고인을 추모하면서 일회용품을 안 쓰는 소박하면서도 격조 있는 장례를 치르고 시대에 맞는 장례문화를 만들어 가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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