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이 깨어 있어야 내 집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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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이 깨어 있어야 내 집 지킨다”
  • 홍강희 기자
  • 승인 2019.10.30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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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우암1 재개발 정비구역 해제 이끈 숨은 손 김광복 씨
“재개발조합에서 달콤한 말로 속여…주민들이 실상 알고 반대”

 

“우암1구역 재개발과 운천주공 재건축사업의 정비구역을 해제한다.” 청주시 도시계획위원회는 지난 9월 6일 이같이 결정했다. 우암1구역은 지난 2008년 8월 재개발 정비구역을 지정 받았으나 사업 추진이 지지부진했다. 10여년이 지난 올해 3월 토지 등 소유주 1019명 중 44.9%에 달하는 458명은 해제 절차를 밟았다. 그리고 마침내 이 날 재개발을 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운천주공 재건축사업은 2015년 12월 9일부터 추진됐지만 찬반이 엇갈렸다. 지난해 12월 토지 등 소유주 278명의 25.8%가 정비구역 해제를 신청했다. 이에 따라 주민투표를 진행했다. 투표 결과 주민 926명 중 53.7%에 달하는 497명이 해제를 찬성했다.

법적으로는 우암1구역처럼 40% 이상이 구역 해제 동의서를 제출하면 다른 절차없이 정비구역이 해제된다. 다만 25% 이상이 제출하면 주민 투표를 해서 50% 이상 사업 반대시 해제된다. 운천주공이 여기 해당된다.

이로써 두 군데는 재개발·재건축사업 이전으로 돌아가게 됐다. 이 사업을 추진하는 곳을 보면 대부분 주민들이 찬반으로 갈려 서로 원수가 되거나 싸움을 하는 등 반목이 심하다. 사업 추진을 위해 설립한 조합이 돈을 얼마 썼다느니, 누가 돈을 먹고 입장이 바뀌었다느니 하는 소문이 양산되며 동네가 두 개로 쪼개진다. 이 곳들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주민들은 말했다.

우암1구역이 있는 청주시 우암동과 운천주공아파트가 위치한 운천동은 오래된 동네다. 과거에는 인구가 꽤 많던 곳이었으나 사람들이 신주거지로 이주하면서 계속 감소하고 있다. 빈 집은 늘고 있다.

청주시의 재개발·재건축사업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자. 청주시는 지난 2006년 시내 전역에 38개 재개발·재건축 정비 예정구역을 지정했다. 이 때 청주시내 웬만한 구도심은 모두 포함됐다. 구역명은 동네명과는 달리 정비구역에 붙인 이름. 2006년 당시 시장은 남상우였다. 전국 도시마다 많은 예정구역을 무리하게 지정해 비판여론이 많았다.

그러나 현재까지 정비사업이 완공된 곳은 탑동1구역, 단 한 군데다. 정비 예정구역으로 지정된지 10년이 넘었으나 결실을 맺은 곳은 여기밖에 없다. 이 곳에는 지난 2014년 LH아파트가 들어섰다.

나머지 동네는 어떻게 됐을까? 먼저 추진위가 구성되지 않은 12개 구역이 해제됐고, 주민들의 반대로 12개 구역이 정비구역에서 빠져나갔다. 현재는 13개 구역에서 사업이 추진 중이다.

이 구역에서는 여전히 찬반논쟁이 일고 있다. 특히 사직3·사모2구역 등은 찬반갈등이 심하다. 사직3구역은 지난 7월 31일 토지 등 소유주 646명 중 170명, 26.3%가 재개발을 반대해 해제를 신청했다. 이 곳은 향후 주민투표를 거쳐 재개발 여부가 결정된다. 재개발 반대파들은 우암1구역을 모델로 삼고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청주시는 “노후·불량주택이 밀집된 지역을 정비해 도시환경을 개선하고 주거생활의 질을 높이기 위해 재개발·재건축사업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시내 구도심지역의 주거환경이 열악한 것은 맞는 말이다.

오래된 주택들은 손을 보지 않아서 자연재해에 취약하다. 이런 지역일수록 노인층들이 많이 사니 집을 수리하거나 부수고 다시 짓는 일이 희박하다. 그럼에도 재개발·재건축을 추진하는 조합 임원외에 일반 주민들 중에는 이 사업을 원치 않는 사람들이 많다.

청주시 우암동에 사는 김광복(54) 씨는 우암1구역 재개발반대대책위에서 대외협력 담당으로 활동했다. 이 대책위에서 큰 직책은 맡지 않았으나 재개발지역에서 벗어나는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이 후 같은 입장에 처한 동네에서 방법을 문의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다음은 김광복 씨와의 일문일답이다.

우암1구역 전경
우암1구역 전경

- 우암동에 오래 살았나?

“우암동 토박이었다. 청도극장 뒷 편에서 오래 살았다. 결혼하고 운천동 아파트에서 살다 2017년 다시 우암동으로 이주했다. 전에는 살림집과 가게가 따로 따로 있어 일하다 늦으면 가게에서 자곤 했다. 우암동으로 이사한 뒤에는 둘을 합쳐 일하기가 좋다. 올 1월초 어느 날 조합에서 회의를 한다고 해 가본 뒤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 재개발을 추진할 때 동네 분위기는 어떠했나?

“누구는 찬성파, 누구는 반대파 하면서 민심이 흉흉했다. 서로 감정이 상해 말을 안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재개발 찬성파는 조직적으로 움직이는데 반대파는 10명도 안돼 처음에는 반대파가 수세에 몰렸다. 통장들이 중립을 지켜야 함에도 재개발 찬반을 묻는 설문조사원을 데리고 다니며 조사를 했다. 한 통장은 재개발을 추진하는 재개발주택정비조합 이사를 맡아 말들이 많았다. 어떤 사람은 조합에서 돈을 받았다는 소문도 도는 등 동네 분위기가 아주 좋지 않았다.”

- 재개발 사업을 반대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

“내 집에 대해 정상적인 보상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요즘 아파트 평당 분양가가 700~800만원이다. 그런데 청주시내 다른 재개발 구역을 보니 집은 평당 300만원대 밖에 못 받더라. 이 돈으로 어디를 갈 수 있겠나. 내 집에 살던 사람이 웬만한 아파트로 가려면 1억이상 대출을 받아야 한다. 재개발지역으로 묶이면 건물 증·개축이 안되고 도시가스 안 들어오고 도로포장도 안돼 얼마나 불편한지 모른다. 이 동네 사람들은 10여년 동안 그렇게 살았다. 주민은 불편하고, 건설업자만 좋은 사업이 재개발이다. 당시 민선4기 남상우 시장 때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시작됐다. 주민들이 시장한테 속았다는 말을 많이 했다.”

- 주민들이 처음에는 꽤 좋은 조건으로 보상을 받는줄 알았다고 하던데..

“그렇다. 2009년에 주민 144명이 진술서를 써서 검찰에 진정을 한 바 있다. 진술서의 내용은 재개발추진위가 주민들을 속이고 인감 3통과 인장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추진위 직원이 현재 50평 주택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30평 아파트를 보장해주고 20평은 150일 이내에 현금 보상한다고 했다. 아파트를 원치 않으면 평당 600만원씩 보상해준다고 해서 인감과 도장을 내줬다. 그러나 후에 시청에 알아보니 감정평가해서 보상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적혀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재개발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실상을 알고 난 후 반대파가 늘었다. 이 덕분에 해제를 하게 된 것이다. 주민들이 깨어 있어야 손해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재개발추진위는 재개발조합을 의미한다. 류근준 재개발반대대책위원장은 조합 측이 조합설립 당시 인감 위조, 위조를 은폐하기 위해 문서 손괴, 공문서 유출, 허위사실 유포, 주민공람의견서 날조 등을 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 재개발 해제 결정이 난 뒤 동네 분위기는 어떤가?

"해제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우암1구역은 60%가 65세 이상 어르신들이다. 이제 재개발을 추진하면서 조합에서 쓴 비용이 문제가 되고 있다. 38억+알파를 썼다는 말이 있는데 얼마인지는 정확히 모른다. 이에 대한 자료도 없이 소문만 떠돈다. 매몰비용의 40%는 청주시, 나머지 60%는 조합에서 해결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시행사에서 조합장, 부조합장, 감사의 재산을 가압류했다고 한다.”

- 재개발 사업의 목적은 노후주택을 보수해 주거환경을 개선한다는 것이다. 그럼 우암1구역의 낙후된 환경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노인층들이 많아 집을 부수고 새로 짓는 사람도 드물지 않나?

“재개발 사업이 백지화된 뒤인 10월 23일 주민화합잔치를 열었다. 여기서 재개발반대대책위를 행복마을만들기추진위로 전환했다. 우선 도시가스 설치를 추진하고 정화조, 오폐수 처리시설, 가로등, CCTV 설치와 도로포장 등을 지자체와 국토부 도움을 받아 하기로 했다. 환경이 열악하기는 하지만 주민들이 필요한 것을 하나씩 해결하기로 했다. 건설업자들에게 우리 집을 내주고 대규모 재개발을 하는 것보다 이런 방법이 낫다.”

올해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청주시 외곽을 병풍처럼 둘러싸면서 아파트 과잉공급 논란이 일었다. 시민들은 이런 상황에 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구도심까지 아파트로 빽빽하게 채울 것이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들은 옛 주택가에 공원이나 주민편의시설 등을 설치해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는 구도심을 만들어 주기를 원하고 있다. 실제 구도심의 아파트는 특별한 매력이 없다. 아파트 말고 다른 방법으로 구도심을 살리는 정책이 필요하다.

충북청주경실련도 지난 4월 주민이 반대하는 재개발·재건축 구역을 해제하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2006년부터 추진된 청주시 도시재정비사업은 실패했다. 주민이 반대하고 아파트 공급 과잉도 우려되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무리한 재개발·재건축을 계속할 것이냐. 청주시는 전향적인 자세로 임하라”고 강조했다.

한편 김광복 씨는 하이닉스매그나칩 하청업체에서 10년 정도 일하다 지난 2005년 ‘행복계란’을 차렸다. 1톤 트럭을 몰고 다니며 청주시내 전역에 계란을 배달한다.

이 곳 계란을 정기적으로 받아먹는 일반 가정이 3000가구, 식당은 50곳이나 된다. 발품을 팔며 열심히 배달해온 덕이다. 그는 충북재활원 등 시설과 상당공원 무료급식, 다문화가족 자녀 공부방, 각종 행사 등에는 선뜻 기증도 한다. 그는 “너도 나도 같이 보람있게 사는 삶을 추구한다”고 한마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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