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인 사랑, 종교를 초월하는
상태바
치명적인 사랑, 종교를 초월하는
  • 충청리뷰
  • 승인 2020.02.12 09: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 무대를 찾아서

 

퐁네프를 건너 시테(센 강 가운데 있는 섬)에 들어가면 거기에 그 유명한 노트르담 성당이 있다.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의 꼽추』란 소설의 무대가 된 곳이다. 이후로 영화와 뮤지컬 등으로 제작되어 우리에게는 매우 친숙한 이름이다. 성당 자체의 역사적 명성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노트르담 성당은 빅토르 위고가 있어 그 존재 가치가 더욱 빛난다. 적어도 글을 쓰는 나에게는 그러했다. 늦은 밤에 도착해서 성당 내부를 구경할 수는 없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유감스럽게도 4개월 뒤에 이 성당에서 불이 났다.)

<노트르담의 꼽추>는 아름답고도 슬픈 사랑의 이야기이다. 여주인공 에스메랄다는 염소를 끌고 다니며 춤추고 노래하는 매혹적인 집시 여인으로 모든 사건의 정점에 있다. 한마디로 그녀는 치명적인 유혹이다. 가는 곳마다 장미가 피었고 가시가 돋았다. 영화에서 에스메랄다 역을 맡은 배우는 지나 롤로브로지다. 그녀의 관능적 매력은 지금도 뇌리에 선하다. 콰지모도 역을 맡은 배우는 안소니 퀸, 역시 명불허전, 설명이 필요 없는 명연기였다.

프랑스 노트르담 성당
프랑스 노트르담 성당

 

어디였을까? 에스메랄다가 춤추고 노래하던 곳은, 크리스마스트리가 반짝이는 연말의 성당 앞 광장을 이리저리 거닐어 본다. 또한 어디였을까? 에스메랄다를 향한 남모를 연모로 가슴의 종을 치던 콰지모도의 종탑은, 올려다보고 또 올려다본다.

영화 캡처
영화 캡처

 

사랑은 논리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다. 그 어떤 신분이나 미추를 떠나 성직자든 꼽추든 사랑에는 경계가 없다. 옳고 그름이 없다. 높고 낮음이 없다. 그 궁극은 같은 것이다. 경비대장 피버스가 선택한 사랑도 부주교 프롤로가 몰래한 사랑도 종지기 콰지모도가 죽음으로 완성한 사랑도 그 궁극은 같은 것이다. 너를 내 안에 들이고 싶다는 것이다. 네 속으로 내가 들어가고 싶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하나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욕망의 크기가 서로 다른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곧잘 비극의 씨앗을 잉태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그런 가슴 아픈 사랑의 이야기를 성당을 무대로 펼쳐 놓은 것일까? 그런 것일까? 사랑은 때로 종교를 초월하는.

사랑經
-노트르담 성당

결론은 의외로 간단했다
에스메랄다,
그녀는 마녀였다는 것
염소를 끌고 다니며
춤추고 노래하는
치명적인 아름다움이었다는 것
그 아름다움에는 언제나
염소의 피가 묻어 있어
누구든 닿기만 하면
마법에 걸린다는 것
그 누구도 헤어나지 못하는
사랑에 빠진다는 것
매혹적인, 너무나 매혹적인
그리하여 감히 죄를 물을 수 없는
주여, 사랑 앞엔 언제나
당신도 뒷전입니다

장문석 시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